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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악장 : 음악 그리고 문학

기억의 서랍을 여는 2개의 열쇠

by 오록

우연히 이곳에 도착하신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어릴 적 읽은 책 한 권이, 오랜 시간이 지나 음악 한 곡으로 다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문득 흘러나온 노래가 잊고 지냈던 문장의 조각을 다시 꺼내 보게 하기도 하죠. 문학과 음악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주, 귄록루역의 네 명의 작가는 ‘문학과 음악’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기억 속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난 음악들을 꺼내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어릴 적 위로가 되었던 동화를 다시 읽었고, 누군가는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 고민하게 만들었던 고전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가사 속 시처럼 녹아든 래퍼의 언어를 곱씹었습니다.

이번 연재는 문학에 대한 감상이라기보다, 문학이 음악으로 다시 피어난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낡은 책갈피처럼 오래된 마음을 조심스레 펼쳐 보기도 하고, 익숙한 가사 속에 숨은 문학적 문장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글들을 읽으며 마음속 어딘가에 꽂아둔 책갈피 하나쯤 꺼내보시길 바랍니다. 잊고 있었던 구절 하나가 음악처럼 흐르고, 오래된 멜로디가 한 편의 소설처럼 다가오길 바라며 우리의 이야기들을 펼쳐보려 합니다.


어린 왕자 #이야기의 전달, 감정의 전이

https://youtu.be/Js_Tf4nPilc

오늘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가져와봤습니다. 오늘 가져온 문학작품 '어린 왕자'는 프랑스의 공군 비행사이자 작가인 생택쥐베리가 1943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동시에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작품이기도 하죠. 어린 시절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어려운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시 읽어보니 많은 위로를 주는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뜻밖의 힐링을 받았달까요?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음악은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음악입니다. 바로 슈퍼주니어의 멤버 려욱의 미니 1집의 타이틀곡, '어린 왕자'입니다. 2악장까지 오면서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다뤄보려고 노력했는데 의외로 발라드는 처음 다루는 것 같더라고요. 많고 많은 장르 중 '이야기의 전달'과 '감정의 전이' 2가지에 초점을 맞추는 발라드만큼 문학 작품과 잘 어울리는 장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노래에 대한 사견을 밝히자면 소설을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꽉 채워서 전달한다는 느낌을 주는 잘 만들어진 발라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을 들을 때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뮤직비디오보다는 음원을, 음원보다는 라이브 영상이나 콘서트를 선호하죠. 하지만 이 노래만큼은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면서 들어보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작 소설에 대한 존중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뮤직비디오입니다. 갈대밭, 장미꽃, 상자 등 원작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원작의 구절이 불탔다가 다시 되살아나는 연출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원작에 대한 존중은 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원작의 전개방식처럼 화자와 어린 왕자가 대화를 했구나 싶은 느낌을 주죠. 그리고 화자는 어린 왕자에게 위로를 받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를 내보는 듯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일부러 좀 두루뭉술하게 전개해 봤어요. 소설을 읽고 발라드를 듣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관점에서 읽고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공감을, 누군가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투영하며 작품을 감상하겠죠. 최대한 즐거운 감상을 돕기 위해 소개 정도만 해보려고 했는데 얼마나 의도가 통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사람의 마음을 얻을 일이 어렵다면, 누군가를 길들이는 것에 지쳤다면 잠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쉬어가세요. 잠시 각자의 사막이 감춘 오아시스를 가꾸고 그 오아시스에서 쉬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에 목숨을 걸만큼 아름답던 시절

https://youtu.be/7qqrIusxVAI?si=doo6VFXZw8ZaY06o

사랑이란 단어가 어쩐지 조금은 낡아 보이는 요즘,
문득 아주 오래전, 사랑 하나로 세상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섰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학창 시절, 학교 도서관 한편에 있던 책장에서 꺼내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땐 솔직히 말해 너무도 극단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만난 지 며칠 만에 목숨을 거는 사랑이라니,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랑이란 걸 해보고, 그 안에서 흔들리고 부서져보니 그 무모함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그 시절엔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던 거라고요. 너무 어리고, 너무 뜨거워서.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은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흘러나오던 음악 속에서, 저는 갑자기 줄리엣의 발코니를 떠올렸습니다.
낮은 첼로 소리 위로 점점 격렬해지는 관악기의 울림은, 마치 두 집안의 갈등이 밀려오는 파도 같았고,
그 사이에서 피어난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도 조용해서, 그래서 더 눈부셨습니다.

특히 'Montagues and Capulets'라는 곡을 들을 때면 무게감 있는 리듬 사이로 느껴지는 긴장감이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외부의 벽들과 겹쳐 보이곤 했습니다. 그 속에서 감정을 지키는 것,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면서도 왜 그토록 누군가를 향해 뛰어들게 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로미오였고, 줄리엣이었던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요. 누군가를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가던,
결과보다 진심 하나만을 붙들고 버티던 그런 날들 말이에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남기엔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품었던 모든 무모함, 순수함, 그리고 두려움까지.
프로코피예프는 그런 마음을 소리로 남겼고,
우리는 그 음악을 통해 잊었던 감정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죽지 않아도 충분한 사랑

https://youtu.be/oHH1JWRavmM?si=uH95B8bV7N7HpUiT

음악과 문학이 만날 때 생기는 묘한 떨림이 있습니다. 그 떨림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이 노래와 글을 바칩니다. 오늘 함께 나눌 곡은 클래지콰이의 Romeo n Juliet이라는 곡입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이 노래는 피비린내 나는 비극 대신 장난스럽고 유쾌한 사랑의 실험을 펼쳐냅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의 권유로 원작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길고 복잡한 문장과 수많은 수식어구에 눌려 길을 헤매기 바빴습니다. ‘사랑이 뭐길래 왜 이렇게 거창하게 써놓았나’ 하는 의문도 들었죠.

그러다 어느 날 클래지콰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었습니다. 과하지 않은 목소리로 사랑을 말하는 방법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신나는 보사노바 리듬과 재즈풍 코드, 그리고 클래지콰이스러운 대부분의 쨍한 곡들과는 달리, 부드럽게 흘러가는 악기와 가사의 플로우가 특징적인 곡입니다.

이 곡은 남녀가 대화하듯 노래를 부릅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같이 도망치자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아있었다면 ’ 사랑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충분히 아릅답구나‘ 하고 놀랐을 겁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대화는 끝났지만 마음은 아직 거기 서 있던 밤. 답장을 기다리는 것도, 먼저 말을 건네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휴대폰 화면만 몇 번이고 켜고 끄던 그 시간 말이죠. 이 노래는 바로 그 마음에 닿습니다.

이 곡은 단순한 러브송이 아닙니다.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직감, 그리고 그 직감을 나누고 싶다는 용기입니다. 오늘 밤, 누군가의 이름을 조용히 고민하고 있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세요. 당신 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다시 말을 걸어올지도 모릅니다.


독 #가사(歌詞),가사(佳詞)

https://youtu.be/oSuMY1xYepM?si=m-Y-3ElC05bnfGxX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좋은 노래의 기준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가사보다는 멜로디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근본적으로 청각적 만족을 주는 예술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랩이라는 장르에서만큼은 꼭 가사를 주의 깊게 감상하는 편입니다.


저는 랩을 즐겨 듣기만 하지 깊게 연구한 사람은 아니라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합니다만, 랩의 매력은 운율을 이용한 라임 형성, 이를 통한 자전적 메시지의 전달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좋은 가사를 가진 랩을 보면, 정말 하나의 완성된 문학 작품을 귀로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중 제가 소개하고 싶은 곡은 이센스의 ‘독’입니다.


이센스는 한국에서 랩을 누가 제일 잘하냐 하면 꼭 손에 꼽는 래퍼인데요. 단순히 랩이 빠르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정말 깊이가 있는 시적인 가사와 그 가사에 걸맞은 전달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센스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 ‘독’이라는 노래도 정말 유명한 시인의 시를 청각화한 것 같은 문학성을 보여줍니다.

버거운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담담한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는, 담백하지만 깊은 힙합 노래예요.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검색하면, 여러 댓글에서 자신의 힘든 처지에 대한 넋두리와 이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과 여자 자랑, 단순히 자신을 뽐내는 싸구려 가사가 판을 치는 이 힙합 장르에서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을 거예요. 저는 남들처럼 너무 어두웠던, 세상이 버린 것 같은 암울한 과거는 없었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제가 갖고 있던 크고 작은 걱정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센스는 마약과 여러 구설수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제가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래퍼는 아니지만 이런 시와 같은 깊은 가사를 보면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아, 위로는 고고한 위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구나.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구나!’ 이상으로 제가 좋아하는 독의 가사 일부를 발췌하며 줄일게요. 여러분 모두는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요!

”비겁함이 약이 되는 세상이지만, 난 너 대신 흉터를 가진 모두에게 존경을 이겨낸 이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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