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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2악장 : 음악 그리고 국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

by 오록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하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

지난주에는 책 한 권, 또는 한 곡의 가사를 가지고 국어, 그중 문학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조선의 제4대 국왕인 세종과 왕자들이 직접 창제하고 1443년에 완성,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 기본자음 14자와 기본모음 10자로 구성된 우리의 모국어는 어느 곳에도 기원을 두지 않고 창제된 특이한 글자 중 하나입니다.

한글은 문자적 쓰임 이외에도 예술적 용도,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우리의 글자이기도 합니다. 다른 문자에 비해 모더니즘스럽게 보이는 단순한 형태의 모아쓰기는 외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서울이나 부산의 네온사인을 내뿜는 간판들이 가득한 도시의 풍경을 목격한 외국인들은 '사이버펑크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그리고 오늘은 이 한글이 음악에서 주는 다양한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듣는 재미, 해석하는 재미, 혹은 우리의 언어로 제작된 음악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한글과 음악의 연결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3개의 목적지를 향해 떠나보시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세종대왕과 종묘제례악

https://youtu.be/aKQzy0d_BC4?si=2nq8OMjULHwD0bT7&t=1470

세상에는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다면 우리에겐 백성을 사랑해 나랏말을 만들고 음악마저 백성을 위해 정비하신,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세종대왕이 계십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가져온 음악은 세종대왕께서 창제하고 세조 때 완성된 종묘제례악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 음악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에서 거행됩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조의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된 음악과 춤입니다. 음악(악), 노래(가), 춤(무)이 조화를 이루며 장엄하게 펼쳐지는 종합 예술입니다. 이 음악은 보태평, 정대업, 그리고 진찬악으로 구성됩니다. 보태평은 임금의 문덕(文德)을,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칭송하며, 진찬악은 종묘제례악에 사용하기 위해 세조 때 추가되어 연주됩니다. 선율은 같지만 가사에 따라 풍안지악, 옹안지악, 흥안지악으로 나뉩니다.

이 음악에는 춤도 함께합니다. 무용수 64명이 가로 8줄, 세로 8줄로 늘어서서 각기 문덕과 무공에 따라 왼손에 약, 오른손에 적을 들고 문무를, 목검이나 목창을 들고 무무를 춥니다.

제사는 크게 다섯 절차로 나뉘며, 신을 맞이하고(영신례), 예를 갖추고(전폐례), 음식을 대접하고(진찬례), 술을 올리고(초헌·아헌·종헌례), 마지막으로 신을 보내는(송신례)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의 아악과 당악, 그리고 일부 향악을 혼용하여 제례악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세종 7년(1425년), 종묘 제향을 마치고 돌아온 임금이 이조판서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향악을 익혀 왔는데 종묘에 먼저 당악을 연주하고 종헌에 이르러 향악을 연주하니 조상들이 평소에 듣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떠한가?’ ‘아악은 본래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니 평소에 익히 듣던 음악으로 제사 음악을 쓰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전에는 향악을 듣고 죽으면 아악을 연주하니 어찌 된 일인가?’ 하며 못마땅해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세종은 세종 12년(1430년) 이후부터는 정비한 아악을 종묘제례악으로 사용하였으며 세종은 기존에 창제되어 사용한 음악은 태조나 태종의 개인적 공덕을 찬양하는 것이고, 역대 조종의 공덕을 노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대 임금 전체의 업적과 건국을 기리기 위해 세종 17년(1435년), 우리의 향악을 바탕으로 정대업과 보태평을 새로 창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조는 이를 계승하여 세조 9년(1463년), 곡 수를 보태평 11곡, 정대업 11곡으로 정리하고 가사를 정비, 곡의 순서와 곡명을 바꾸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묘제례악을 완성합니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드렸지만,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단지 글자만이 아니라, 음악 또한 백성을 위해 창조하셨다는 사실을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며, 다음엔 더 흥미로운 이야기와 음악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https://youtu.be/pbxfdhd57FQ

오늘 국어와 연계해서 소개해드릴 곡은 김수영의 ’ 사람‘이라는 곡입니다. “어디선가 우린 걷고 있겠죠”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옵니다. 이때의 ‘우리‘는 쉽게 연인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그 ‘우리’는 연인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종종, 나를 가장 잘 안다고 믿지만 실은 나 자신에게 가장 무심했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무심함이 쌓이면, 결국 ‘잃어버린 나’와 마주하는 일이 생기죠.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문학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이상의 ‘날개’입니다.

작품 속 화자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 말하며,
자기 자신조차 낯설어하는 상태를 고백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말하자면, 내가 나인 줄 알면서도 그 ‘나’라는 존재를 어딘가 멀찍이서 바라보고만 있는 느낌. 살고는 있는데, 정말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는 상태. 어딘가 떠밀려가듯 존재만 유지하고 있을 때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잃게 됩니다.

김수영의 노래 ’ 사람‘은 그렇게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 속 ’ 보고 싶은 사람‘은분명 누군가일 수 있지만, 그 누군가가 결국 ‘나 자신’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한때의 나, 웃음이 많았던 나, 혹은 세상에 지지 않고 꿈을 꾸던 그때의 나.

‘날개‘의 화자가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조차도 어려웠다 “ 고 고백했듯이, ‘사람’ 속의 화자 역시 자신조차 모르게 멀어진 무언가를 뒤늦게 깨닫고 되찾고 싶어 하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잃어버림의 슬픔을 말하면서도 그 안에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차분하지만, 절망적이진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자기 자신을 잃어봤고, 또 언젠가는 되찾기 위해 이렇게 노래 한 곡에 기대앉은 적이 있었겠지요.

저는 ‘사람’을 그럴 때 찾아 듣게 됩니다.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떠올리게 해주는, 그리고 그 ‘나’를 다시 부드럽게 불러주는 멜로디입니다.

그래서 ’ 사람‘은 그저 듣는 노래가 아니라, 읽히는 노래이자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 같은 곡입니다. 노래를 듣고 난 뒤 그 감정이 오래 남는다면 그건 아마도 잃어버린 ‘나’가 이 노래를 타고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락, 설화, 그리고 한글의 맛

https://youtu.be/DnfGa7wZUJY

오늘은 불교 설화 속 귀자모신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귀자모신은 아이들을 훔쳐먹고 인육을 즐기던 잔인한 야차였죠. 동시에 수많은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도 했고요. 석가는 그녀가 가장 아끼는 막내를 데려가고, 그를 찾아 헤매던 귀자모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도 많은 네가, 왜 남의 아이를 빼앗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귀자모신은 그제야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불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이후 아이들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석가는 인육이 먹고 싶을 때 대신 먹으라고 그녀에게 석류를 건넵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바로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쏜애플의 '석류의 맛'입니다.

쏜애플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하나만 꼽자면 '한글'을 가사로 쓴다는 점이에요. 한글 특유의 의성어, 의태어, 그리고 소리의 질감을 이렇게 잘 살리는 밴드가 또 있을까요. 이들은 결핍과 집착, 외로움 같은 감정을 한글로 표현하면서도 해석은 청자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이 있어요.

'석류의 맛'은 약 8분에 달하는 긴 곡이지만 끝없이 변주하며 단단하게 전개됩니다. 불교의 윤회사상부터 인간의 결핍, 한국적인 펜타토닉 스케일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가능한 곡이죠.

하지만 오늘은 '한글'이라는 테마에 집중해서, 이 곡의 킬링파트 두 가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는, "오도독 오도독 혀를 씹을 만큼 삼켜도."에요. '오도독'이라는 소리의 질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마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인 뿐일 겁니다. 석류를 씹을 때의 소리,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파괴와 욕망의 감각까지 한글이 아니었다면 감지가 불가능한 표현이죠.

두 번째는, "끝이 없는 끝이 없는... 끝을 내게 줘."입니다. 이 문장은 의미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화자는‘끝이 없는 끝’이라는 상황 자체를 원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끝이 없는 상황의 끝’을 바라고 있는 걸까요? 문장의 구조 하나에도 깊은 해석이 갈리고 각자의 관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한글 가사의 묘미 아닐까요?

이 노래를 듣는 동안,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동안 여러분도 한글 가사 속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결핍과, 그 결핍을 채우고 싶은 마음을 마주했길 바랍니다. 이 짧지 않은 여정이 조금이나마 귀를, 마음을, 그리고 언어를 즐겁게 했기를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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