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크리스탈이 되지 못한
오늘도 이곳에 우연히 당도하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 오늘은 과학 상식을 좀 늘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원소기호 Al, 원자번호 13번. 격자 구조는 면심입방결정, 공간군은 Fm3m.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알루미늄을 뜻하는 것들입니다. 강한 충격은 버텨내기 힘들지라도 가볍게 제품을 만들거나 싼 맛에 제품을 찍어내야 하는 경우에는 제조업계의 필수요소일만큼 많은 곳에서 알루미늄을 찾아볼 수 있죠.
그리고 저희에게 알루미늄은 굉장히 뜻깊은 추억을 상징합니다. 뜬금없이 알루미늄 이야기를 한 이유, 오늘은 브로큰 발렌타인의 '알루미늄'이라는 곡에 담긴 저희의 추억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3주간 음악으로 과학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과학적 지식을 음악적 감성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알루미늄'이라는 곡은 저희의 추억이 담긴 곡 중 아마 1악장의 큰 주제와 가장 적합한 곡인 것 같아서 오늘은 이 한 곡만 가지고 각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우연히 들어간 포장마차나 술집 옆자리에 특이한 녀석들이 특이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잘 들린다!라는 느낌을 가지고 이 곡을 읽어주신다면 재밌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은 저희와 대화하는 느낌을 이 글을 읽으면서 받으셨으면 해서 오늘 글은 문어체로 써보려고 해요. 저희도 몇 개의 화두를 던진 후 대화 하듯이 오늘 이야기를 전개해 볼까 합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하는 이야기에 푹 빠져보시죠.
#이 노래랑 언제 처음 만났어요?
-록 : 어쨌든 이 노래를 다 그때 공연 때문에 처음 들은 건 아니었잖아요? 저는 고등학생 때 이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귄 : 에이 이 노래는 밴드 하는 사람이면 다 알고 있어야죠 아무래도? 제 얘기는 따로 뺄 것 같지만 저도 고등학생 때 알았어요.
-루 : 저는 이 녀석들 때문에 처음 들었죠. 저 녀석들이 뜬금없이 좀 큰 곳에서 공연한다고 저희 집에 있는 신디사이저랑 우퍼를 떼서 가져갔었는데, 그때 저 녀석들이 '이거이거 해요 들어보고 공연 보러 오십시오.' 해서 오? 들어봐야지? 하고 첨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아무래도 저는 그 당시에는 락 쪽이랑 안 친했기도 하고 밴드부를 한 적도 없으니까 이 노래를 듣고 나름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역 : 저도 공연 준비하면서 처음 들은 게 맞죠? 근데 노래가 좋아서 금방 연주한 게 맞아요. 저도 밴드를 한건 물론 대학교에 입학해서 동아리를 짧게 했지만 본격적으로 이런 장르를 연주한건 귄이랑 록 덕분이라서 이 노래도 그때 처음 접했죠. 저는 오아시스는 정말 좋아하지만 한국 밴드 노래는 찾아 듣던 시절은 아니라.. 덕분에 요새 플레이리스트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록 : 저는 아무래도 밴드를 고등학생 때부터 했었으니까 상대적으로 이 노래를 일찍 접했네요. 고등학생 때 도에서 각 시의 밴드를 모아서 달마다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어떤 밴드가 알루미늄을 공연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처음 안 노래죠. 남자 보컬이랑 리드기타 2명의 피지컬만 받쳐준다면 무대를 박살 내버릴 수 있는 간지 나는 곡이라고 생각했고 귄이 이걸로 틀죠?라고 제안했을 때 그 당시 우리 밴드 상태랑 딱 맞다고 생각해서 듣기만 하던 노래를 처음 공연했네요.
-루 : 귄은 언제 처음 이 노래를 알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때 듣기로는 귄이 이 노래로 바꿔서 공연을 하자고 공연 3일 전인가 제안해서 올라간 거라고 하던데, 나름 사연이 깊은 노래일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번 주 테마도 귄이 제안해서 다른 형식의 글이 되어버리기도 했고요.
-귄 : 제 얘기는 좀 길거 같으니.. 함 들어주십시오.
#귄의 이야기-제 인생곡 중 하나입니다.
-저에게 알루미늄이라는 곡은 기타를 시작하게 해 주고 기타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해 준 인생곡 중 하나죠.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매주 수요일 6, 7교시는 동아리 시간이었어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봉사 동아리나 진로와 관련된 동아리를 선택했지만, 저는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정시파이터였죠. 마침 피아노를 좀 치던 터라 밴드부에 지원했습니다.
어느 날 동아리방에 들어가 보니, 회장 형님이 기타 솔로를 열심히 연습하고 계셨습니다. 무슨 곡이냐고 묻자 형님이 대답했습니다.
“알루미늄. 너도 공연 나가야 하니까 연습해 둬.”
그리고 공연 당일, 형님은 마지막 기타 솔로를 연주하시다가 갑자기 앰프에서 ‘팅’ 하는 소리와 함께 기타 줄이 끊어지는 사고를 겪으셨습니다. 결국 솔로의 마지막 12마디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공연이 끝났죠. 무대 뒤에서 고생했다며 말해주는 형님의 표정은 무척 아쉬워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형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게 부탁했습니다.
“나중에 너도 기타를 배우게 되면 꼭 알루미늄을 연주해 줘.”
그렇게 회장 형님이 졸업을 한 후 제 첫 밴드부는 인원 부족으로 폐부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폐부를 막기 위해 피아노를 치던 저는 기타를 잡게 되었고 기타라는 악기에 재미를 느껴 피아노만큼은 아니지만 열심히 연습을 했죠.
대학에 진학해서도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연습의 성과 덕분인지, 가입하자마자 1군 팀에 들어가 매달 서너 번씩 무대에 올랐죠.
그러던 어느 날, 2학년이 된 저에게 과 학생회장 누나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출범식 무대에서 밴드 공연 좀 해줄 수 있어?”
부학회장이었던 록, 연주부였던 역과 함께 셋리스트와 세션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드럼과 베이스가 비어 있는 상황이라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았죠. 그러다 문득 군대에 가 있는 1년 선배가 중학교 때 드럼을 전공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록은 주저하지 않고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이 맞는다면 같이 공연하자고 설득했고, 다행히 선배가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베이스는 군필 신입생 형님이 군대에서 베이스를 배웠다는 소문을 듣고 바로 모셔왔습니다.
그렇게 운명처럼 멤버를 모으고 없는 시간을 빼서 셋리스트를 고민하고 각자 개인연습을 했죠. 총 3곡을 준비했는데 합주를 해보니 결론적으로 살아남은 곡은 록이 저희의 첫 글에 썼던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뿐이었습니다. 셋리스트를 갈아엎고 있던 그때, 제 머릿속에 알루미늄이 스쳤습니다. 다들 곡을 한 번 듣고는 “이젠 이거밖에 없다”며 이를 갈고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공연 당일, 대학교 야외 공연장에 올랐습니다.
알루미늄의 인트로를 연주하며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고등학교 때 만났던 기타 형이었습니다. 형이 보고 있다고 상상하며 연주를 이어갔죠. 중간중간 왼손이 아려오는 패시지들이 많았지만, 형이 완성하지 못한 솔로를 제가 이어받는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곡이 거의 끝나갈 즈음 등 뒤 앰프에서 ‘팅’ 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마음을 다잡고 보니, 이번엔 제 1번 줄이 끊어진 것입니다. 마지막 고음역대를 연주해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해 바로 위의 2번 줄에서 애드립으로 상황을 넘겼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회장님이 느꼈던 기분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이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저에게는 빛나는 크리스탈 같은 순간이었으니까요. 형이 가졌던 크리스탈과 같은 크리스탈을 저도 손에 넣은 셈이었습니다.
#공연 후일담 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루 : 저도 이건 궁금하네요. 저는 아쉽게도 그때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냥 신디사이저 빌려준 친한 관객? 정도였거든요. 아 근데 록이 저에게 힘든 점을 많이 토로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아무래도 프런트맨과 공연 일정 및 장비를 조율하는 짓은 스트레스가 심하니..
-록 : 지금은 학교에 밴드 동아리가 생겼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가볍게 시작한 취미생활인데 교육과정도 변화하고 음악 교사를 양성하는 과인만큼 다양한 장르를 다루게 하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학교에서도 판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맨땅에 헤딩을 했거든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죠.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미리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지금 학교에서 일하면서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귄 : 저는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기타 줄을 날려먹었잖아요? 심지어 알루미늄은 첫 곡인데 줄을 끊어먹은 거잖아요. 정말 당황했습니다. 첫 곡을 끝내고 록에게 미친 듯이 끊어진 줄을 흔들며 사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줄이 끊어진 기타를 두고 동방으로 뛰어갔는데 동아리 선배님들께서 제가 쓸 수 있는 기타를 미리 준비해서 건네주시는 겁니다. 그때는 정말 선배님들께 감사하고 내가 인생을 나름 잘 살아서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역 : 합주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이 노래가 귄이랑 록에게 들어보니 Eb장조라서 현악기는 반음을 낮춰서 튜닝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전 건반을 잡고 있었으니 Eb장조와 E장조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느라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있어요. 애초에 이 노래를 잘 몰랐었기도 하고.. 그때그때 록이랑 귄이 놓치는 음을 채우는 데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연날 저는 건반을 치고 있다 보니 악보를 확인하면서 곡의 흐름을 보고 있었는데 록이 가사를 너무 지어내는 거예요.. '너무나 차갑고 너무나 차가워'라는 희대의 가사는 아직도 만나면 록을 놀리는 소재가 되곤 합니다. 그래도 3일 만에 어떻게든 해낸 기억 덕분에 여전히 밴드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고 저에겐 처음으로 큰 무대에서 공연을 했던 기억이라서 굉장히 뜻깊은 곡 중에 하나네요.
#알루미늄, 아직도 가끔 듣나요?
-루, 역 : 사실 이 노래는 귄이 갑자기 던지고 록이 신나서 글의 소재가 완전히 바뀌어버려서 오랜만에 들은 거라.. 루의 취향에는 완전히 벗어난 곡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셔플 재생을 걸어두고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래가 나오면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에 빠지는 곡입니다.
-록 : 곡 이야기를 제가 해보자면 음.. 알루미늄 그 자체다? 저는 아무래도 보컬과 리듬기타를 연주하는 프런트맨 포지션이다 보니 가사와 코드 위주로 노래를 듣게 되죠. 그리고 이 노래의 코드는 정말 알루미늄스러워요. 남성적인 사운드를 사용하지만 코드 자체는 1,2번 줄을 열고 연주하는 불완전한 알루미늄 같은 코드를 사용하죠. 저도 약간의 감성을 추가하기 위해 어쿠스틱 기타를 기용했던 기억이 있고요.
가사 이야기를 하자면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누구나 크리스탈이 되고 싶어 하지만 알루미늄에 머무른 사람이 훨씬 많겠죠. 혹은 크리스탈과 같은 관계를 꿈꿨지만 놓쳐버린 것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저희도 빛나는 크리스탈이 되지 못한 차가운 알루미늄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이건 대다수가 그렇기 때문에 노래를 들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명곡이라고 생각해요.
귄 : 곡 이야기를 록이 너무 잘해줘서 제가 언제 이 곡을 듣는지 이야기하면서 오늘은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상하게 이 노래를 들으면 소주 생각이 많이 나요. 우리의 대학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 차가운 알루미늄인 나에 대한 한탄인 건지 이 노래는 참 소주와 어울리는 곡인 것 같습니다.
소주 이야기를 한 김에 다음 여행지를 알려드리려고 해요. 이렇게 과학과 음악을 연결한 1악장 여행은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2악장으로 떠나기 전에 '프롬나드' 주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교육적 소재나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실생활과 밀접한 가벼운 주제를 다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 여행의 첫 번째 프롬나드 주제는 '술안주'입니다. 애주가들이 안주와 술의 페어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음악가이자 애주가인 저희의 페어링을 맛보시고 새로운 관점으로 음악을 들어보는 경험을 가져보시는 것도 재밌는 경험일 것 같아요.
음악과 과학의 연결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음악과 과학, 조금은 친해진 것 같나요? 아니면 친해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