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첫걸음은 진짜 “걸음”이었다.

by 굴러가유

저번주에 등록한 학원, 첫 수업을 들었다.

내 인생 두 번째 연기 학원인데

확실히 첫 학원과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학원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묘하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첫 학원에선

두려움, 설렘, 들뜸 같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정해진 학교 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해 발걸음을 옮기던 그 벅참.

그러나 이번엔 뭐랄까.

한마디로 요약하기 힘들지만,

이제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실함에 가까웠다.


이번엔 내가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채우고 싶었고,

정신 차려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새긴 건

“겸손하자. 겸손, 겸손, 또 겸손.”

아는 내용이라도 처음 듣는 것처럼 배우자고 다짐했다.


수업 전에,

저번 상담 때 받은 숙제를 연습하려고

학원 근처 연습실을 빌렸다.

그동안과 다른 방식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기계처럼 높낮이 없이 대사를 달달 읽으며 입에 붙였다.

그다음엔 걸으면서, 앉으면서, 시선을 고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사를 뱉어봤다.

놀라운 건 어떤 감정이나 높낮이, 심지어 상대가 바뀌어도 대사가 다 그럴듯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맞고, 저렇게 해도 맞네?’


라는 신기한 발견이었다. 그렇다면 더 다양한 스타일로,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대사를 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떠오른 건 음악이었다.

무작정 유튜브 뮤직에 들어가 랜덤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잠자코 듣고, 느껴지는 감정대로 대사를 쳤다.

그리고 끝나면


‘이 음악은 어떤 스타일이었고, 내 기분은 어땠는가’


를 적었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대본과도 어울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꼬박 두 시간을 연습한 뒤, 드디어 첫 수업.

두근두근.. 근데.

오늘 세 시간 수업 동안 내가 한 건 단 하나, 걷기였다.

…아, 하나 더 있다.

수업 도중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과 영화 <클레오파트라> 속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조사해야 했다.

급히 챗GPT에게 물어봤다.


오늘의 수업 주제는 “존재”, 그중에서도 “등장”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인물로 존재하기 위해선 적어도 그에 대한 얕은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두 인물에 대해 조금 알게 되자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 얕은 정보가 상상의 초석이 되어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교실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그 인물이 되어본다는 게,

단순하지만 묘하게 공부가 되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얼떨떨했다.

대망의 첫 수업, 오늘 한 건 걷기뿐.

연습한 대사도 못 쳐보고.

뭔가 수업을 한 것 같지도, 안 한 것 같지도 않은..


그럼에도 이 낯섦을 즐겨보기로 다짐한다.


‘항상 익숙한 스타일로 연기를 배우면 발전이 없지!’


분명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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