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루 Jul 02. 2022

남들처럼만 지내길 원하는데

Karu's Story #21

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고3 첫 모의고사, 3월 모의고사는 제 모든 걸 망쳤습니다. 건강부터, 성적까지 싹 다. 제가 이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1학년 두 번째 등교 때부터 저의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고 말씀드렸죠. 아직도 원인을 몰라요. 그나마 짐작이 가는 게 있는데, 스트레스. 그런데 그건 저도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아침마다 속 뒤집어지고 헛구역질하는 건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3년 내내 똑같습니다.


  특히 아침에 속 뒤집어지는 건 이제 체념했습니다. 어느 병원을 다녀도 낫질 않아서. 지금 제 최선의 방법은 극도의 공포로 인한 공황상태에 빠지는 걸 막는 겁니다. 제가 1년에 1~2번 정도 발작을 일으키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모의고사 보는 도중에.


  2교시, 수학 시간이었죠. 종료를 10분가량 남겨두고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숨이 안 쉬어지는 겁니다. 문제는 거의 다 풀어갔는데, 점점 시야가 흐려지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어요. 괜찮겠지, 싶어서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눈에 초점이 사라진 거예요. 들고 있던 식판마저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여하튼 간신히 숟가락을 들었는데, 갑자기 또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울었던 것 같았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됐습니다. 속은 뒤집어지고, 토할 것 같은데 계속 눈물이 나오고, 손발은 미친 듯이 떨리고. 


  그나마 옆에서 절 도와줬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에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도 심각해 보이셨는지, 급식지도 하시다가 제게 와서 제 상태를 확인하고 가시더군요. 얼떨결에 담임선생님께까지 이 소식이 전해지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엉엉 운다는 느낌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져요. 그러다가 또 뚝. 괜찮아질 때쯤 또 뚝.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니까 점점 더 미쳐갑니다. 당장이라도 소리 지르고 싶고. 오히려 기력이 마이너스가 되니까 일어났다가도 또 앞이 안 보이면서 털썩 주저앉고. 친구가 부축해주기 전까지 그냥 주저앉은 상태로 급식실 의자 잡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집니다. 언제 또 이렇게 될 줄 알고. 당장 다음 교시에 또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해야 하는지,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컨디션만 좋아도 정말 모든 걸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안 좋은 생각은 한 번에 겹쳐 일어나죠. 조금 진정됐다 싶었는데 제 손은 그렇지 않더군요. 혹시 그거 아세요? 너무 울거나 기력이 빠졌거나 하면 손이 굳은 채로 미친 듯이 떨리는 거. 급식을 먹기는커녕 숟가락을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괜히 먹었다가 다 토하면 그건 또 무슨 민폐인가. 진짜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20분을 그냥 날려버린 뒤, 어찌어찌 밥을 먹고 올라왔습니다. 마침 담임선생님께서 찾으시더군요. 너무 힘들면 그냥 쉬어라,라고 하시는데 또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 다 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 4모에서 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도 쉴 건가요? 수능에서도 이러면 그냥 수능 안 보고 귀가할 건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나에 대한 학대라는 걸 알면서도, '일반적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강보다 학업이 우선. 우리 사회에선 아픈 게 죄입니다. 


  제발, 나처럼 아프지 말길. 심지어 성적도 모든 과목에서 한 등급씩 내려갔습니다. 수능 최저를 맞추는 것 자체가 불안해집니다. 4모에서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아마 상담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릴 겁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뒤 제 컨디션이 또다시 망가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고 약간 어지럽길래 '아, 또 조금 속이 안 좋은가보다.'하고 넘겼는데, 몇 달만에 다시 헛구역질이 밀려오는 겁니다. 숨도 못 쉬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필 그때가 점호시간이어서 자칫하면 벌점을 받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점호 시간 위반) 그런데 몸이 말을 들어야 나가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프런트까지 가서 점호를 받고 와요. 그래서 그냥 방에 있던 인터폴 붙잡고 거의 반쯤 울면서 사감실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계속 구역질이 나와서 이게 말을 하는 건지 싶을 정도로.


  그래서 간신히 점호를 면제받고, 저는 계속해서 구역질을 했습니다. 당시 시각 8시 10분. 3학년 등교는 8시 20분까지입니다. 3학년 등교 시간은 8시 20분까지입니다. 계속 구토하다 이제 막 진정이 됐는데 10분 만에 준비 끝내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일단 담임선생님께 먼저 전화를 드렸습니다. 사실 9시 전까지만 등교하면 출결엔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8시 40분에 기숙사를 나섰습니다. 빈 속으로 등교하면 더 울렁거려서 급한 대로 인스턴트 죽을 먹었는데, 괜히 먹으면서 또 구역질이 나서 그냥 절반 넘게 버렸습니다.


  고3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괜찮다고 해도 욕심이 생기잖아요. 당연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싶죠.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됩니까. 대학이 사람의 간판이 됩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가 대학 진학 결과만으로 결정됩니다. 이게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입니까?


  제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죠.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남을 밟으면서 느끼는 희열도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남들과 비교해서 자존감을 깎아먹는 일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조차도 그걸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완벽주의 태도를 버리라고, 그렇게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저는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영했던 사진부 FLIP은 제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사라졌고, 다시 살리지도 못했습니다. 매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에 스트레스받다 픽하면 쓰러지고, 매일마다 토하고, 컨디션은 나빠져서 시험은 다 망치고. 그러면서 남들에게 뒤처지는 거에 더욱 속을 썩이고, 그만큼 몸은 더 망가지고.


  거의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예요. 내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온 결과가 겨우 이건가. 모든 게 불안해요. 친구 관계부터, 내 미래까지. 어쩌다가 제가 이렇게 망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있는 친구들도 나를 떠날까 두렵고, 기껏 쌓아왔던 인간관계도 금방 무너질까 봐 무섭습니다.


  발작을 일으키려던 걸 진짜 안간힘을 써서 참았습니다. 수학 II 문제를 풀고 있었어요.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 4모에서 어떻게든 성적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안 풀립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4점짜리 문제가 틀려가는 걸 벼랑 아래 흐르는 폭포 보듯 허리 굽어 보는 기분이 어떤지 아시나요.


  국어도 이상하리만치 문제가 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만 보면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는데, 이런 컨디션이라면 수능은커녕 당장 내신에서도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진심으로 너무 불안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겠어요.


  그냥, 모든 걸 다 던지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내가 못 버틸 것 같아서. 학교생활 즐겁게 보내자는 목표는 이미 포기했어요. 내가 힘든데, 내가 못 버티겠는데. 그냥 졸업만이라도 하자. 수능이고 대입이고 뭐고. 일단 살아서 나가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유독 커져갑니다. 저도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나는 소중한 사람인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잘할 수 있는가?'


  지금 저에게 물어보면 셋 다 '아니요.'라고 답할 것 같아요. 모든 게 무가치합니다. 무기력하고, 힘들어요. 힘들다는 말만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진심으로, 힘듭니다. 평소에도 몸이 축 처지고 무겁습니다. 오늘도 거의 무슨 무게추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몸이 축 처져가지고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그러다 8/9교시 때 미친 듯이 어지럽고 배가 고파서 급식으로 받았던 부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습니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배가 너무 고파서 간식들을 계속 먹어댔습니다. 자존감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들도, 건강을 이유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이 안 되는데,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금 이 상황이 행복해질 수 있는 환경인가요?


  무기력증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같아요. 수업시간에 잔뜩 긴장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확 풀어지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잠만 퍼질러 잘 정도로. 진짜 누가 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어딘가에 틀어박혀있다면 좋을 텐데.


  제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도 불안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행복해지는 걸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그게 제 소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