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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 Oct 11. 2022

입시의 고통: 이상과 현실의 괴리

Karu's Story #22

환영합니다, Rolling Ress의 카루입니다.


  우주상향, 또는 스나이퍼자신의 성적보다 과도하게 높은 학과나 대학에 지원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안 될 걸 알면서 무리하게 상향 지원하는 건 수시러들 사이에서 일종의 모험으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물론, 뻔히 안 되는 게 눈에 보이면서도 지원하는 건 미련한 행위일 뿐입니다.


  관심 대학 1순위는 당연히 서울대학교입니다. 모두가 그럴 겁니다. 고양국제고에 입학할 때만 해도, '서울대 가자!'를 목표로 삼고 들어온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SKY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고3이 되면 사회는 매정하리만큼 단호해집니다. 현실의 벽은 전혀 낮지 않습니다. 특히나 저희는 특목고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신이 4점대 이하일 겁니다. 상위권이면 2점 초에서 3점 극초반 정도 나올 테고요. 사실 이 정도 등급대면 이점이 많습니다.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넣으면 웬만해선 다 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 같은 중위권 학생들은 문제가 생깁니다. 수시로 가자니 힘들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정시를 준비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미 결정된 내신을 바탕으로 최고의 대학을 선택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본인 성적에 비해 대학을 과소평가한다는 겁니다.


  한 선생님께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성적에 비해 중경외시(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를 너무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일침을 날리셨습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인서울 대학 중에서 꽤 상위권에 속합니다. 상위 10개 학교에 속하니까. 중경외시를 낮게 본다는 말은, 서성한 위로 상향 지원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모두 떨어지고, 재수하는 게 일반적인 케이스라고 하십니다.


  진로 선생님께서도 한 마디 하셨습니다. "6 상향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고. 마음 같아서는 다들 중경외시 라인에 '하나쯤' 보험으로 넣어두고, 나머지는 전부 SKY와 서성한에 몰빵해서 상향을 치고 싶어한다는 것, 선생님께서도 충분히 이해하신다고 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고요. 문제는 '그' 중경외시가 안 뽑는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겁니다. 중경외시를 떨어지는데 그 이상을 붙을까요? 힘들 겁니다. 


  아무리 우리의 실패가 이르면 이를수록 좋고, 물이 없는 수영장에 우리를 뛰어들게 할 다이빙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고 하더라도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에이, 6광탈하면 재수하면 되지!"라고 간단하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2024학년도부터 입시가 또 바뀝니다. 이제는 자소서가 전면 폐지되고, 독서/봉사 내역이 대입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각종 수상실적조차 전송할 수 없습니다. 특목고로서의 메리트가 더더욱 떨어지는 셈입니다.


입시의 고통, 그리고 도전


  제가 고양국제고를 준비하던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수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특히 10월 경에는 '내가 이 학교를 지원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해야 하는가'와 같은 생각이 저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한때 지원을 포기하고자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제가 지원하는 대학 중 KAIST와 DGIST는 자소서를 빨리 받습니다. 반면 중앙대학교는 다음 주 중반이 마감일 정도로 제출 기한이 넉넉하죠. 서울대/연세대/고려대는 원서 마감이 대부분의 다른 학교들보다 하루 빠른 목요일인 건 물론, 자소서마저 그다음 날에 칼같이 마감합니다. (고려대는 자소서를 폐지했지만, 서울대와 연세대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일정 정리에서 실수를 하면서 KAIST 입시 준비에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분명 서류 마감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인데, 자기소개서 마감이 이번 주 금요일까지였던 겁니다. 이걸 수요일에 알아버렸습니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심지어 KAIST 자소서를 쓰고 있던 상황도 아니었어요. 중앙대부터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서둘러 자소서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원하는 대학 중 절반은 이공계고 절반은 인문계입니다. KAIST는 이공계 쪽에 가깝죠. 정보 선생님께 자문을 구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정보 선생님께 받고, 첨삭은 작년 담임선생님(국어 선생님)께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교실에 있으면 도저히 자소서가 안 써집니다. 저는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편하게 글을 쓰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정보 선생님께 조심스레 여쭤봤습니다. 


  "선생님, 저 내일 하루 종일 입학홍보부에 있어도 되나요?"


  입학홍보부는 2층에 있는 조그만 교무실로, 입학홍보부 소속 선생님 두 분(미술, 정보)께서만 계십니다. 학생 상담용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자소서를 쓰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선 흔쾌히 수락해주셨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3학년 생기부와 상담 확인증을 챙겼습니다.


  고양국제고는 정말 학생 중심의 개방적인 학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틀 동안 교무실에 있으면서 선생님들과 라디오를 같이 듣고 잡담을 하며 자소서를 작성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선생님께 자소서를 보내드리면 선생님께서 출력하셔서 같이 봐주시고, 마치 무언가 업무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교무실에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긴 했습니다.


좌절의 연속


  정보 선생님께선 이틀 동안 20시간 가까이 제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말 하루 종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해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사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선생님께서 저를 위해 해 주신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믿음을 저버리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저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제 바람과는 달리 자소서를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앙대 자소서도 마찬가지긴 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걸려 고민했으니까요. 오히려 작성은 금방 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도 "너무 고맙다. 다른 학생들(자소서 상담/첨삭 시간)에 비해 10분의 1도 안 쓰는 것 같아."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선생님께서 국어 교과를 담당하시고 글을 칼같이 점검하신다는 점을 보면, 이건 엄청난 칭찬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문장이 좋고 서술이 풍부해도 주제가 맞지 않거나 저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 자소서는 백지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훌륭한 활동 소재와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자소서의 깊이가 부족한 경우, '~했습니다.', '기뻤습니다', '뿌듯했습니다'와 같은 문구가 종종 보입니다. 결국 모두의 자소서가 비슷해지고, 이러면 '나만의 자소서'라는 타이틀이 깎이기 시작합니다.

  공통 문항인 2번, 3번 문항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그런데 1번, 4번 문항이 저를 유독 괴롭혔습니다. '질문을 제시하고 질문을 하게 된 이유를 기술하라.' 그리고 '지원 동기와 입학 후 비전을 제시하라.' 질문을 보면 타 대학의 3번 문항을 몽땅 갖다 쓰는 느낌입니다. 일단 KAIST가 저와 계열이 맞지 않고 제겐 엄청나게 상향이라는 것을 알기에, 정공법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보통 면접이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자소서/생기부로 1차를 본 뒤, 특정 배수를 선발하여 면접평가를 통해 최종 선발을 진행합니다. 서류가 부족하다면 그걸로 탈락이기에, 생기부에서 나오지 않은 나만의 독특한 개성과 장점을 풀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상담이 계속될수록 점점 지쳐갔습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지쳐가고. 선생님 말씀이 점점 귀에 안 들리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하품을 하느라 눈물도 계속 나오고. 그런데 계속해서 노트에 필기를 하며 제 생각을 어떻게든 끄집어내고자 했고,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소서 글감 준비를 했습니다. 이를 위해 부모님께 서둘러 책 주문을 하고 점심시간에 받아온 뒤 빠르게 읽고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 초인적인 능력까지 발휘할 정도였습니다.


  정보 선생님과의 상담은 무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되었고, 중간중간 자소서 담당 선생님과 첨삭을 하며 고쳐나갔습니다. 특히 수행이나 지필로도 늦게 자본 적이 없는 저로선 자소서로 새벽을 버틴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미술 선생님께서 과학기술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작년에는 합격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고. 그리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DGIST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배 중에 DGIST, UNIST에 합격하신 분이 계셔서 선배님께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현실의 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술 선생님께서도 중앙대와 경희대에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과학기술원은 그냥 보너스라고 생각하라고. 과기원 입시 때문에 제가 정말 중요한 다른 걸 놓치고 있진 않는지 저를 굉장히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힘이 빠져버렸습니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오전만 해도 의지가 불타올랐는데, 그 힘이 모두 소진됐습니다. 더 이상 자소서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고, 제가 이걸 마무리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어졌습니다. 그만두고 싶어졌습니다. 목표를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왠지 좀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울컥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제 분위기를 읽으셨는지 바로 당황하시며 달래주셨습니다. 면접 신경 쓰지 말고, 자소서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쓰라고. 면접은 합격 발표가 난 뒤의 일이니까, 너무 벌써부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애써 웃는 척을 하며 용기를 내는 척을 했습니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


  괴짜. 광기. 너드. 저를 설명하기에 매우 적절한 단어들입니다. 저는 남들과 다른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걸 좋아합니다. 뭔가 파고들다 보면 꼭 마치 집착을 하면서 매달리고, 전혀 상관없는 두 분야를 엮어다가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이러한 실험과 도전정신이 저의 성장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문과에서 이과로의 교차 지원은 쉽지 않습니다. 과학고/영재학교 학생들에게는 상대가 안 됩니다. 계열 때문에 저희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저희에게 심화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계열 과목과 국제 계열 과목들이 있듯이, 과학고에서는 심화 수학 및 고급 과학, 각종 실험 과목들을 통해 생기부를 채워나갑니다. 생기부를 보고 뽑는다면, 국제고 학생을 이공계 대학에서 받을 이유가 없죠.


  그래서 저는 그냥 '미친놈'이 되기로 했습니다. 저의 광기를 살려서. 저만이 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기술과 인문학 모두에 미친 진정한 광기. 선생님께서도 "괴짜처럼 보여야 승산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만큼, 제가 그 괴짜가 되고자 합니다. 대학에서 궁금해서 미치겠을 정도로 만들어서 저를 부르게 하겠습니다. 후회할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요일 새벽까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초안을 완성했습니다.


끝을 향해 달려가다


  금요일이 왔습니다. 이제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들은 분명 서울대와 연세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일 겁니다. 서울대는 오후 6시, 연세대는 오후 5시에 자소서가 마감됩니다. KAIST 자소서도 오후 5시에 마감되었습니다. 노트북에 타이머를 띄워놓고 자소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7시간에서 6, 5, 4,... 숫자가 줄어갈 때마다, 점점 제 마음은 불을 켜둔 양초처럼 타들어갔습니다. 중간에 북카페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소서를 쓰기도 했는데, 일반사회 선생님께서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셨습니다.


  워낙 급하게 쓰느라 금요일에만 세 번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래도 내용이 크게 바뀐 건 아니라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는 않았습니다. 파일 이름에 '최종'이라는 글자를 넣을 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간의 힘들었던 기억이 깡그리 날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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