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소만 편
줄리언 반스는 <levels of life>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한 인간의 삶이란 거기서 거기일 거라 생각하곤 한다. 하루 세 끼 밥을 먹을 때도 대부분의 메뉴는 거기서 거기라 무얼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고,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도 머지않아 거기서 거기라 곤욕스러울 때가 찾아온다. 환상적인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처음 그녀를 사귀었을 때의 모든 경험이 따져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재탕, 반복, 번거로움, 지루함 따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차원으로 바뀐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삼차원의 공간이 되는 마법. 무언가를 만나 인생의 한 점이 선으로 바뀌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현실과 마법의 접경선에 서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차를 사랑하는 당신은 차에서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 나의 삶을 해로 나누면 마흔 조각이 되고 그 조각의 절반은 찻물이 묻어 있다. 더러는 묻었고, 더러는 절여졌다. 희미한 백차의 연노랑에서 흑차의 검정에 가까운 색까지 내 인생의 절반은 차와 함께였다. 이십 년여 전의 인사동 어느 골방 같은 두 평 남짓한 컴컴한 차실에서, 환하고 텅 빈 정갈함을 뽐내는 청도의 어느 차실까지,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다른 삶의 조각들을 마주했다. 짧지도 않지만 전혀 길지도 않은 차의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차가 만들어내는 갓길 너머의 조각과 풍경을 수없이 목격했다. 천 년 전의 돌무더기에 앉은 납설의 물자국이 전하는 이야기. 사백 년 전 겨울 한복판을 수놓는 푸른 소나무 사이로 조심스레 걷던 게다의 발자국 소리. 이백 년 전 제주도에서 한스러운 세월을 보내던 선비의 빨갛게 언 손가락 끝에 묻은 먹물. 더 빨갛게 피어나는 숯불 연기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차 연기. 차를 공부하고 이야기하며 나는 수천수만의 삶을 보았다.
동장윤다는 그 모든 삶의 조각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만을 천으로, 천을 백으로, 백을 스물다섯 조각의 이야기로 담았다. 멀리서 보면 점이요, 가까이서 보면 보듬이 스물다섯이니 그것 모두가 우리가 담고자 하는 억조창생의 차 이야기다. 우리가 만든 올해의 동장윤다 안에는 여러 개의 삶의 층위가 포개져서 출렁인다. 켜가 쌓여 한 통의 차가 만들어졌다. 화갯골의 서북쪽 끝에서 남동쪽 끝까지의 대지의 켜, 곡우에서 입하 전까지의 하루하루가 만들어내는 기후의 켜, 누이가 차를 만들며 흘린 땀방울 십 리터가 방울방울 떨어지며 켜켜이 쌓이는 고난의 켜, 저 머나먼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누군가의 공덕을 지탱하던 절간의 기둥이 세월과 함께 장작이 되어 소신공양하며 좋은 차에 이바지하길 바라는 소망의 켜가 이 차 안에 쌓인다. 둘을 하나로 합친다고 해서 몇이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당신의 삶은 간단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삶 안에 쌓이는 하나의 층이 되고 의미가 되니,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의 동장윤다는 그런 맛이다.
2025년 5월 21일,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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