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구르다 2025, 망종 편
차와 사람과 이야기 13
: 이인로 李仁老
고려 중기의 문신 두 명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규보와 이인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 선후배 사이였지만 길은 서로 달랐다. 이미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있었던 이인로보다 한참 어렸던 이규보는 열아홉 살에 이인로와 여러 지인이 모여 만든 죽림고회라는 모임에 불려 나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볼썽사나운 선배들의 치기를 비꼰 것으로 유명한데 아마 그 후부터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지 않았나 싶다.
두 사람은 삶의 모양새도 아주 다르다. 이규보는 대기만성의 전형이다. 급제하였음에도 젊은 날 대부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광인처럼 살았다면, 중년이 되어서 죽을 때까지 이규보는 무신정권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에 반해 이인로는 부모를 아주 일찍 여의었지만, 큰아버지가 화엄종의 승통이었던 까닭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스물여덟에 장원급제하고 장인을 따라 금나라에 사신단으로 다녀오기도 했고, 기록물을 담당하는 문관으로서는 중요한 사한직에 거의 14년간이나 머물렀다. 오래 근무했다. 당대 모든 이들이 이인로의 글솜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나 생각보다 관직 생활을 잘 풀리지 않았는지 결국 고관대작에 이르지는 못하고 죽었다.
당시 정치인으로서의 이인로를 설명하는 문장은 이것 하나로 족하다. <고려사>에 이르기를 “성미가 편벽하고 급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거슬려서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지극히 나쁜 험담에 가까워 보이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 처지에서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어 보인다. 천재적인 작가나 뛰어난 예술가가 성격이 다소 치우치고 모난 것이 무어 문제가 되겠는가. 게다가 사람들에게 거슬려서 크게 쓰이지 못했다고 하니 입도 바른편이어서 올곧은 소리도 곧잘 했나 보다. 당시는 최 씨 무신정권 시절이었으니 성격 모난 천재 시인이 상사들에게 이쁨받지 못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사실 이인로의 정치적인 처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인로와 이규보는 둘 다 시문에 탁월한 인물들이었고 동시에 차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둘 다 여러 차시를 남겼는데 하나하나가 귀하고 읽을 만하다. 특히 둘 다 차를 곱게 갈아 쓰기 위한 차맷돌(茶磨)에 관한 시를 남긴 점도 재밌다. 두 사람의 시는 주제가 겹쳐도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 읽는 맛이 참 좋다. 이인로의 문법을 ‘당대 용사(用事) 중 으뜸’이라 한다면 이규보의 문법은 ‘신의(新意)’라고 해도 좋다. 용사(用事)란 한문 시 짓기에 있어 전고(典故)를 인용하는 수사학적 방법론이고, 신의(新意)란 말 그대로 새로운 뜻을 담은 새로운 말이라는 뜻이다.
20세기까지 유행했던 용사는 그야말로 한시의 기본이었는데, 사대부는 용사 없이 입을 열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용사는 내 의견을 옛 성현의 말씀을 빌려 슬그머니 드러낸다는 의미로 겸손이기도 하고, 동시에 반대로 내 독서 수준이 이 정도로 깊고 학문이 박식함을 드러내는 자랑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용사는 그 나물에 그 밥 수준이었는데 이인로는 용사를 직접적이기보다 간접적인 은유의 형태로 더 세련되게 잘 드러내 보였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을 닫고 들어앉아 황정견과 소식 두 사람의 문집을 읽은 뒤에 말이 굳세고 운이 맑을 소리를 내게 되었으며, 시 짓는 지혜를 얻었다.”
이에 반해 이규보는 용사가 탐탁지 않은 쪽에 속했다. 그는 이런 편지를 친구에게 적었다. “전이지여, 해마다 과거의 방이 붙은 뒤 올해도 또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왔구려.” 이에 대해 <보한집>을 엮었던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 최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같은 문으로 들어가 다른 문으로 나온 것이다.”
사실 이인로는 지나친 용사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그저 그런 용사라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소식과 황정견이 이상은을 본받았어도 조어(造語)가 더욱 공교롭게 되어 마치 용사 한 흔적 없는 절묘한 경지였다.”라는 말을 보면 그의 수사학의 길을 엿볼 수 있다. 결국 수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의 문장에 대한 자부심은 이 문장 하나로 이해하기 충분하다. “천하의 일 중에 귀천이나 빈부로 높고 낮게 할 수 없는 것은 오직 문장일 따름이다.”
이인로가 과거시험에 3등으로 합격하여 아쉬워하는 지인을 위로하는 시 한 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신의 군사 깃발 푸른 강을 등졌는데
제와 조의 성벽이 일시에 무너졌네
논공에선 비록 소하와 장량 뒤였으나
국사는 본래부터 짝 있기가 드물었다네.*
*한신은 <초한지>로 유명한 유방과 항우의 천하 쟁탈전에서 유방의 수하로 들어가 전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전설적인 명장이다. 유방의 본격적인 성공 가도는 한신을 영입한 이후부터 가능해졌는데, 그는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약소 세력의 주인이었던 유방을 황제로 등극시켰다. 천하를 통일하고 치르는 논공행상에서 정치와 내정을 다스렸던 소하가 1등, 책략과 전략의 귀신이었던 장량이 2등의 공을 받았다. 한신은 3등이었으나 사실 소하와 장량 모두가 이는 표면적인 일일 뿐(한신을 유방에게 추천하고 이끌었던 이가 소하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한신 바로 당신이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위로하고 추켜세웠다. 이 시는 이번 과거 시험에서 비록 3등을 했지만, 친구인 지인의 재능이 가장 훌륭하고 높았음을 세상 모두가 결국 알게 되리라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있다.
2025년 6월 5일,
정 다 인
당신을 보듬다, 소식지 구르다, rollingtea.net
위 사진
Floor mosaic depicting birds, from the House of the Faun (VI. 12. 2), Pompeii, Italy, Roman peri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