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 빚이나 갚게

소식지 구르다 2025, 소서 편

by 구르다

차와 사람과 이야기 15

: 추사 김정희 金正喜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살이하던 당시 친구 초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편지를 보냈지만 아직 답장이 없구려. 분명 산중에는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닐 터인데 혹시 나같은 속인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뜻인가요? 나는 이처럼 간절한데도 그대는 그저 묵묵부답이구려. 생각해 보면 늙은 나이에 갑자기 이처럼 하시니 우스운 일입니다. 둘로 갈라진 사람이 되어도 좋다는 것인가요. 이런 일이 과연 수행하는 사람에게 합당한 것인가요. 나는 그대를 보고 싶지 않고, 또 그대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차로 해서 맞은 인연만은 끊어지지 못하고 또 쉽게 부숴버리지도 못하여 다시 차를 재촉하는 것이니 편지도 필요 없고 다만 지난 두 해 동안 밀린 차 빚이나 한꺼번에 갚되, 다시는 지체하거나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조의 꾸지람이나 덕산의 몽둥이를 맞을 것이니, 이 꾸지람과 회초리는 비록 백천 겁이 지나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모두 뒤로 미루고, 늙은이가.”


有書而一不見答。想山中必無忙事。抑不欲交涉世諦。如我之甚切而先以金剛下之耶。第思之。老白首之年。忽作如是可笑。甘做兩截人耶。是果中於禪者耶。吾則不欲見師。亦不欲見師書。唯於茶緣。不忍斷除。不能破壞。又此促茶進不必書。只以兩年積逋並輸。無更遲悞可也。不然。馬祖喝德山棒。尙可承當。此一喝此一棒。雖百千刦。無以避躱耳。都留不式 老迦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 선생의 소개로 한양에서 처음 만났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괴짜와 촉망받는 특이한 승려의 만남이었다. 추사는 관심 분야가 넓고 깊었다. 차는 유력한 집안 출신에 고관대작의 아들이었고, 젊은 나이에 벼슬길에 오른 데다 문장, 글씨, 그림뿐 아니라 금석학(金石學)과 불교 경전에도 박식했다.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다녀오면서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고증학자들에게 사사 받았고, 거기에서 차를 배웠다. 후대가 평가하기로 추사 김정희는 그 영향으로 실학파와 개화파 사이를 잇는 교두로 역할을 했다.



초의도 비범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양 사대문 안으로 승려가 출입하지 못하던 시대에 금기를 깨고 사대부들의 부름을 받아 한양을 출입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이미 교학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강진의 다산 선생을 흠모하며 학문의 세계를 넓혔다. 그의 재주는 문장과 그림, 서예뿐만이 아니었고 19세기 불교 교리 논쟁의 선두에 서서 조선 후기 불교의 개진(改進)에 앞장섰다. 물론 그의 뒤를 추사가 든든히 받쳐주었던 것도 빼놓을 수는 없다. 초의가 특별한 점은 차에 대한 그의 관심이 그저 취미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도(道)의 영역으로 뻗어 나갔다는 것인데, 그는 승려로서 취해야 할 개인적인 수행의 방법론 중 하나로 차를 생각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다시 저 위의 편지로 눈을 돌려보자.



겉으로만 보았을 때 추사가 초의를 대하는 태도가 자못 불손하고 거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막역한 사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친구에게 저렇게 문자 보내지는 않을 테니 다른 이유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 편지글을 참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추사의 저 삐뚤어진 사랑을 잘 알기 때문이다. 괴짜에 거칠고, 툭툭 내뱉지만, 사실은 연약하고 한없이 기대게 되는 사람을 향한 애정결핍의 마음 같은 것 있지 않나. 알고 보면 추사는 외향형 E이고, 초의는 내향형 I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둘이 참으로 잘 맞았던 것 보면 초의가 지닌 마음의 넓이가 마치 어머니 같아서 추사에게 딱 맞아떨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추사는 제주도 유배를 떠나기 전에 특유의 오만함으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줬는데, 제주 유배살이 십여 년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이를 크게 뉘우치고 사과했다. 그는 제주살이 동안 아내를 떠나보냈고, 머리를 뚫어내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선화 다발을 벗 삼아 외로움이라는 병마와 싸웠다. 겸손하지 못한 천재가 역경을 통해 대가의 길로 접어드는 한 편의 성장 영화 같은 이야기 속에 저 편지가 있다. 그는 아내에게 반찬 투정하는 편지를 적어 보냈다가 어미가 사망했음을 알리는 아들의 답장에 오열하고 크게 마음을 앓았는데, 일찍 여의 어머니와 첫 번째 아내, 그리고 장년에 접어들어 잃어버린 두 번째 아내를 통해 어쩌면 아직 제대로 크지 못한 어린 김정희의 마음을 초의에게 기댄 것은 아닐까 싶다.



차는 마음을 이어준다고 했던가. 아니 그 전에 차는 부처님 불 세계를 지상에 구현하는 성물이라 했던가. 부처의 금강이 곧 보리의 마음, 깨닫는 마음을 뜻하니 초의는 친구를 위해 차를 챙겨 제주로 떠났고 추사는 마음의 안식을 얻어 세상을 위한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 딸내미 읽는 동화의 끝 구절처럼 모두 모두 행복하게 되었다.







2025년 7월 7일,

정 다 인








당신을 보듬다, 소식지 구르다, rollingtea.net









위 그림

Sakamoto Hanjirō, Kami-no-minato Bay , from the series Japan Scenery Prints 1918, woodblock print in colors.

https://pages.uoregon.edu/jsmacollections/home/artists/sakamoto-hanjiro-1882-1969/kami-harbor-from-the-series-five--4c06f5ec274f0bd5.html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