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구르다 2025, 입추 편
차와 사람과 이야기 17
: 타케노 조오 武野紹鴎
무로마치-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차인 타케노 조오는 스승을 바꾸었다. 그것도 같은 문파의 서로 다른 선생을. 지금으로 따지면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의 서로 다른 교수 두 명을 오간 셈인데,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여기에는 학계의 좁은 세계관에서 서로 따지는 일종의 도의 문제가 얽혀 있는데, 종교나 여타 다른 영역에서도 다소 열렸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비슷하다. 만약 내가 A라는 교수 아래에서 공부하다 보니 눈과 귀가 조금씩 열려 심도 있게 공부해 보고자 하는 바와 A가 맞지 않다고 여겨 B로도 갈 수는 있지만, 그것도 A와 B의 관계도 혹은 계보를 살펴 골라야 한다. 하지만 만약 A와 B의 전공이 같고 심지어 두 사람이 같은 스승 아래서 배운 맞수라면? 이것은 두고두고 회자할 인성의 문제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사실 삼자 처지에서 보면 무어 그리 대수인가 싶다. 저 옛날 선종 불교에서는 모두가 부처의 제자이니 이 사람에게 배웠다가 후에 심지어 추천까지 받아 저 사람에게 배우러 떠나는 일도 많았다. 혜충(慧忠)은 7세기 말에 태어나 8세기를 주름잡았던 승려인데, 그는 남종선을 세운 육조 혜능(慧能)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신수(神秀) 대사의 가르침을 받아 국사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신수의 아래서 배워 후에 혜능에게 인가를 받았는데, 두 사람의 사후 남북 종통 화합을 주도하며 남종선 중심으로 북종선을 받아들였다. 혜능과 신수가 모두 홍인(弘忍)의 제자고, 홍인은 달마로 시작하는 선종 계보의 5조이니 사실 스승을 바꾸는 일이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타케노 조오는 늦깎이 차 수강생이었는데 퇴역 무사이자 꽤 돈을 잘 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재능을 뽐내 사업체를 크게 일구는 중이었다. 그가 차에 손을 댄 것은 이미 무라타 주코가 죽은 지 한참 후의 일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주코가 죽은 해에 조오가 태어났으니 아무리 이른 나이에 차를 배우고자 했어도 직접 주코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었다. 다만 조오가 생각하기로 당대 무로마치 막부 교토에는 재능 있는 차 선생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별나고 본새가 아름다운 것이 무라타 주코의 차였기에 처음에는 그의 제자 후지타 소리(藤田宗理)에게 배웠다. 그러나 대 명물 꽃병 ‘학의 한마디(鶴の一声)’를 소장하고 있었던 부유한 재력가였던 그에게서 주코의 참맛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이내 스승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무라타 소슈(村田宗珠)는 당시 교토에 살던 차인들 중 스키(數寄)로 제일이자 산중 은자로 유명했다. 주코의 제자들은 소리나 소슈나 모두 다다미 네 장 반을 쓰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오가 깊이 눈여겨본 것은 이를 채우는 재료가 형식미와 맞아떨어져 일관성이 생기느냐 아니냐였던 것 같다. 주코와 마찬가지로 차에서 도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조오는 기물에 있어 기준은 조금 더 엄격하고 결과적으로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했던 소슈를 택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18세기의 간행물 《주코어록(珠光語録)》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宗珠法師は珠光の奥義を守り、簡素を極めたり。器は素朴を貴び、心は豊かなり。」
“소슈 법사는 주코의 깊은 뜻을 지켜 간소함을 극치로 삼았다. 도구는 소박함을 귀하게 여기되, 마음은 풍요롭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일이다. 살아생전 만나볼 수 없었던 사람, 그것도 나의 생과 그의 삶이 겹친 적도 없던 인연을 만나 그의 사고를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좋은 스승을 살아서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죽었어도 나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언제든 스며들 준비가 되어 있나 보다.
2025년 8월 7일,
정 다 인
당신을 보듬다, 소식지 구르다, rollingtea.net
위 그림
Nagasawa Rosetsu (長沢芦雪,1754–1799), Slug, 18th-century (Edo peri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