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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소식지 구르다 2025, 백로 편

by 구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아흔세 번째 장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은

암수로 얽혀 태어난 존재들의 슬픈 유산입니다.

멸망한 백제, 고구려 유민들에게

비겁한 신라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며

미움은 내 삶을 불태우고

원망은 내 눈을 멀게 한다며

원수를 사랑하라던 원효 스님이 그리워지는,

탐욕으로 핏발 선 시대의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미움과 원망은 실체 없는 허상이라서

내려만 놓으면 끝이라 했지만

미움과 원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구월 어느 저녁 어스름 너머로

맑디맑은 이슬(白露) 내리시는 밤이 오고 있습니다.


이 밤 지나 내일 날엔,

그 맑은 이슬에

무거운 미움, 아픈 원망의 불길 꺼지고 씻겨가기를.


차 한 잔 믿음 위에

용서의 꽃이 피기를.






2025년 9월 7일,

정 동 주







당신을 보듬다, 소식지 구르다, rollingtea.net







Gerhard Richter, Abstract Painting (726), 1990

https://www.gerhard-richter.com/en/art/paintings/abstracts/abstracts-19901994-31/abstract-painting-6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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