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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없으면 차는 이룰 수 없다

소식지 구르다, 동지 편

by 구르다

차와 사람과 이야기 25 : 이야李冶










당나라 8세기에는 걸출한 차인들이 많았는데 육우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야(李冶)는 그중에서 이력이 조금 독특하다. 차문화는 20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오로지 남성의 것이었다. 지금에야 꽃꽂이니, 다도니, 심지어 분홍 같은 색깔 따위도 여성의 것으로 여기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불과 한 세기 전까지는 오롯이 남성성을 상징했다. 물론 정확하게는 드러난 자리에서의 찻자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도 한가로이 집 안에서 차의 풍류를 소소하게 즐기곤 했겠지만, 풍류를 한시로 남긴다던가, 드러내 놓고 외부인들을 한데 모아 차회를 여는 일은 없었다. 차문화가 본격적으로 시대를 풍미하기 시작한 중세부터 이름난 여성 차인을 찾아보라면 제대로 된 인물 하나 손꼽기가 어려운 이유가 그러하다.




이야는 어렸을 적 이자(季疵)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후에는 호로 이란(季兰)이라 불리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이름은 ‘풀무질(冶)’이고 어린 시절에는 ‘흠집(疵)’인데, 커서는 주변에서 ‘난초(兰)’라 불린 셈이다. 나도 어린 시절 주변에서 애정을 가득 담아 ‘개똥이’라고 불러주곤 했는데 옛 속설에 따르면 거친 이름으로 어린이를 불러주면 커서는 반대로 무병장수하고 일이 잘 풀린다고 했다. 그랬던 까닭인지 이 흠집 하나 없이 곱고 빼어난 아이는 여섯 살에 장미에 관한 시를 지었는데,



“经时未架却,心绪乱纵横”

“아직 울타리도 세워지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산란하고 뒤숭숭하구나.”



이에 아버지는 감정이 조숙하고 머리가 지나치게 좋아 박명할 것을 우려해 그녀가 열한 살이 되었을 때 도교 사원에 보냈다. 그렇게 비구니 도사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아주 잘 지냈다. 당시 여성들은 공주에서 귀족, 평민에 이르기까지 도가에 입문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 유행하던 표현이 있는데 재밌다.



“洗妆拭面着冠破,白咽红颊长眉青”

“화장을 지우고 얼굴을 닦으며, 낡은 왕관을 쓰고, 목은 하얗고, 뺨은 발그레하고, 눈썹은 길고 짙다.”



이런 외모를 하고 자유분방하고 낭만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 도사들이 많았다. 세속에서 여성의 성은 족쇄였기에 오히려 도를 닦는다는 명분을 날개로 삼았던 삶이랄까. 그녀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 차인, 호사가들과 교류했고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빼어나고 교양이 풍부한 여인으로 성장했다.




이름난 학자 유장경(劉長清)이 개원사에 이야와 더불어 여러 문인과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일종의 탈장 혹은 생식기 근처가 부어 음기가 아래로 쳐지고 무거워지는 병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을 한자로 음중지병(陰重之疾)이라 하는데 여성들은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되도록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돌하게도 어느 날 유장경이 자리에 나타나자 반갑게 맞이하며 이렇게 말한다.



“山氣日夕佳”

“저물녘이 되니 산의 공기가 참으로 아름답군요.”



이 구절은 도연명의 명시 <음주이십수(饮酒二十首)> 중 다섯 번째 편에 나오는 “山氣日夕佳,飞鸟相与还.” (해가 질 녘 산 공기는 아름답고, 날아가는 새들은 더불어 돌아오는구나) 구절을 장난스럽게 가져온 것이다. ‘산기(山氣)’와 똑같은 발음이 ‘산기(疝氣)’인데 이는 한의학에서 허리 아래 음부 쪽에 오는 병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야가 한 말은 “선생님의 거시기 병이 저녁이 되니 좀 편안하신가요?”가 된다. 유장경은 당대의 문장가답게 이를 듣자마자 이렇게 대답한다.



“眾鳥欣有托”

“새들이 쉴 곳이 생겨 기쁜가 봅니다.”



이는 도연명의 다른 시 <독산해경십삼수读山海经十三首> 중 첫 번째 편에 등장하는 문장 “众鸟欣有托,吾亦爱吾庐” (새들은 머물 곳이 생겨 행복하고, 나 또한 이 소박한 보금자리를 사랑한다오.)를 따 온 것이다. 이야가 말한 원문에서 새들은 아름다운 산으로 해가 질 녘 돌아온다고 했으니,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비로소 아름다운 곳에 나 또한 머물 수 있게 되어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온 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举座大笑,论者两美之)




옛날에는 차 마시는 여성이 드물었고, 특별한 존재였다. 주변과 차를 즐기기 위해서는 남성과 더불어 굽힐 필요 없는 기개나 재능이 필요했는데, 사회가 여성의 재능을 용인하지 않았던 시대이니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흔히 문장이 없으면 차는 이룰 수 없다고들 했는데, 이야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인물이다. 그녀는 시와 다도에 재능이 있었고, 저명한 학자들이나 다도가들과 자주 차를 마시며 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훗날 육우와 만나 그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본인의 지식과 경지가 얼마나 얕았는지를 깨닫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그 이야기를 조금 끄적여 보면 어떨까 한다.








2025년 12월 22일,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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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

Helene Schjerfbeck, Self-Portrait, 1912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90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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