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침략자>를 감상하고
<웨딩피치>는 인기 애니메이션 <세일러 문>을 벤치마킹해 제작됐다. 기본적 얼개는 <세일러 문>과 유사하다. 불철주야 평화 수호에 힘쓰는 미소녀들과 눈뜨고는 도저히 그 꼴을 못 보는 마녀 간의 지난한 대결이 주 내용이다. 후발주자답게 <웨딩피치>는 ‘사랑’을 극 전면에 내세워 <세일러 문>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마녀와 최후의 대결을 벌일 때 <웨딩피치>의 주제 의식은 정점을 찍는다. 마녀의 파상공세에 빨피까지 떨어진 피치는 유언인 듯 “사랑의 위대함을 모르는 당신이 안타까워요!”라며 모태솔로인 마녀의 가슴을 후벼판다. 한술 더 떠 연인과 키스까지 한다. 마녀는 갑자기 “두 사람의 사랑에 내가 졌다!” 하며 공격을 중단한다.
<산책하는 침략자>(이하 <침략자>)의 후반부도 <웨딩피치>의 결말과 유사하다. 사랑의 개념을 이해한 외계인은 침략을 멈춘다. <웨딩피치>의 마녀와 같다. 주제 의식을 극대화한 <웨딩피치>의 결말은 유치하지만 자연스럽다. 연속성 때문이다. <침략자>의 결말은 좀 허탈하다. 외계인이 된 신지를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 나루미의 서사는 <침략자>내용의 큰 축이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외계인들의 밑 작업으로 혼란에 빠진 인류와 지구 침략 여부에 이야기의 무게중심이 쏠린다. 사랑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침략을 위해 고생해가며 온갖 개념들을 빼앗았는데 사랑 하나에 허사가 됐다. 허탈할 수밖에 없다.
<침략자>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승부하는 저예산 SF영화다. 특수효과 없이 각종 개념을 외계인이 흡수하는 장면은 뻔뻔하지만 귀엽다. 신지의 굼뜬 언행에선 백치미마저 느껴진다. 반면 무표정한 얼굴로 폭력을 자행하는 아마노와 사쿠라이의 모습은 만화 <드래곤볼>에서 폭력 그 자체를 즐기는 인조인간 17, 18호와 같다. 본격적인 침략은 어떨지 기대하게끔 만드는 장치다. 이 와중에 <침략자>는 ‘자신과 타인’의 정의, 공존 가능성, 자유 의지 상실 등 철학적 질문들을 연이어 던진다. 다소 산재했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들이다. 이렇게 아이디어로 밀어붙이는 작품일수록 결말이 중요하다. 뻔한 결말은 발상의 독창성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안다. 고귀하고 영롱하며, 우아하고 섹시하며, 황홀하고 짜릿한, 그런데도 때론 차갑고 매정하며, 슬프고 잔인하며, 떨리고 초조하며, 처절하기까지 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개념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식의 결말을 그동안 너무 많이 접했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2008)이 대표적이다. ‘지구 침략을 결심한 외계인이 모자지간의 사랑에 감화되어 침략 계획을 취소했다’라는 줄거리는 <침략자>와 비슷하다. 부실한 서사 때문에 결말의 설득력이 떨어져 졸작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이 영화는 제작비만 1,000억 원에 가깝다. 대중성을 고려해 안정 지향적인 결말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시아 영화 산업은 아직 할리우드의 제작비를 감당하기엔 벅차다. 화려한 CG로 무장된 SF영화보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승부하는 SF가 아시아 제작 환경에 적합하다. <침략자>가 그렇다. 애니메이션 실사화나 드라마 극장판으로 점철된 일본 영화계에서 제작된 작품이라 더욱더 반가울 따름이다. 이런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SF 장르의 저변 확대도 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침략자>의 결말이 다시금 아쉽다. 자극적인 결말을 원하는 건 아니다. <침략자>는 원작 소설이 있다. 보수적인 일본 문화를 고려할 때 아예 다른 결말을 만드는 건 어려웠을 테다.
다만 독창성이 살아있는 결말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신지는 침략 직전 사랑의 개념을 이해한다. 침략을 향해 달려온 자신을 후회한다. 사랑의 개념을 까먹은 나루미는 자책하는 신지를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카메라는 이 둘의 대비된 표정을 담는다. 침략이 시작된다. 끝.
여전히 급작스럽지만 적어도 허탈하진 않을 것 같다.
★: 2.5
#산책하는침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