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과 울버린>은 과연 마블의 구세주가 될 것인가?

<데드풀과 울버린>을 감상하고

by 롤린스

2008년 <아이언맨>으로 포문을 연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2024년 현재까지 장편 영화만 무려 서른 편이 넘는 방대한 시리즈가 되었다. <어벤져스>(2012) 개봉 당시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2>,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까지 ‘영화 한 편 보자고 무려(?) 다섯 편씩이나 봐야 하냐?’라는 불만이 많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다 보고 <어벤져스>를 보는 관객들이 있는가 하면, <어벤져스>만 본 관객들도 있었다.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마블 영화가 트랜드의 중심에 자리 잡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벤져스>가 불러일으킨 흥행 바람은 그 후 7년이나 이어져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역대 흥행수익 2위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엔드게임> 이후 5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가. 마블이 트랜드의 중심인가? 트랜드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는 흥행성적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이언맨>부터 <엔드게임>까지 평균 수익은 9.3억 불에 달하지만, 그 이후 개봉작들의 평균 수익은 7.7억 불로 낮아졌다. 역대 스파이더맨이 총출동한 끝에 MCU 장편 영화 흥행 수익 3위에 달하는 19억 불을 벌어들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의 선전이 없었다면 격차는 더욱 벌어졌을 테다.


트랜드의 중심에서 멀어진 이유로 무리한 외연 확장이 공공연하게 꼽힌다.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출시한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향후 공개될 MCU 시리즈와 극장 개봉작 간 연계를 선언하면서 <엔드게임>까지 한껏 높아졌던 MCU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트랜드를 따라잡기 위해 마블 콘텐츠를 가끔 소비해 왔던 산토끼는 ‘이젠 지친다’라며 진즉 떠났고, 집토끼인 MCU 팬들마저 쏟아지는 콘텐츠를 받아들이기 바빠 지쳐만 갔다. 시리즈를 보지 않으면 그다음에 개봉하는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됐다. 마블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어떤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지,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보다 ’<0000> 꼭 봐야 하나요?’란 질문이 각종 커뮤니티에 도배된다. 당장 이번 <데드풀과 울버린>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그래서 <로키> 봐야 함?’이란 질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시리즈마다 천차만별인 완성도 또한 그나마 남아있던 MCU 팬들마저 등 돌리게 했다. 슈퍼히어로 장르는 CG와 불가분 관계다. CG 퀄리티가 재미를 결정하는데 유독 큰 요소로 작용한다. 그만큼 제작비도 많이 투입된다. 그러나 마블 시리즈들은 할리우드 최고의 CG 팀과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준비됐지만 시청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정해진 공개 일정 쫓기 바빠 돈은 돈대로 들여놓고 정작 CG 기술은 졸속으로 구현됐다. CG만 그랬나. 신규 캐릭터 성격 규정도 허술하기 그지없다. 신규 캐릭터를 차분히 소개하기보다 등장시키는 데에만 집중했다. 단편적인 요소로만 설명을 끝낸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신규 캐릭터들에게 정이 가지 않게 됐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에 등장했던 아이언 하트가 대표적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MIT 캠퍼스를 거닐던 학생이 어느새 슈트를 입은 채 살인을 일삼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싸이코가 돼버렸다.


소개할 시간은 부족한데, 신규 캐릭터는 계속 투입하고 싶은 욕심에 마블은 단숨에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을 섭외하려 노력하고 있다. <블랙 위도우>의 플로렌스 퓨가 그런 경우다. 허나 마블 명성이 예전만 못한 지금, 새 캐릭터마다 명배우를 캐스팅하긴 어려워졌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마블의 위기를 초래하고 지금까지 이어졌는데 <데드풀과 울버린>이 단숨에 이를 극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상업적으론 그럴 것 같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봉한 마블 영화 중엔 압도적으로 높은 초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용적으론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캐릭터는 카산드라 노바와 갬빗 정도다. 카산드라 노바는 빌런이고 빌런은 재탕하는 경우가 적으니, 새롭게 대중에게 선보인 캐릭터는 갬빗 뿐이라 봐도 무방하다. 블레이드나 엘렉트라 등 다른 캐릭터들은 이미 알기에 갬빗에게 자기 소개할 시간이 충분히 할당됐다. 이마저도 팬서비스 차원의 일회성 캐릭터로 소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원작 훼손, 밸런스 붕괴, 복잡한 멀티버스 따윈 신경 쓸 필요도 없어졌다.


이러한 내용적 구조에 힘 입어 <엔드게임> 이후 새롭게 재편된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가 극장을 찾아 흥행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으로 추정한다. 새롭게 재편된 집토끼는 원작 코믹스 팬들이다. 원작 팬들은 어떤 콘텐츠가 나와도 계속해서 소비할 것이다. 그러나 원작 코믹스 팬층이 아무리 두껍다 해도 이들만으로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회수는 불가능하다. 산토끼를 잡아들여야만 한다. <엔드게임> 이전까진 마블 입문자가 산토끼였다면, 지금은 나처럼 <엔드게임> 이후로 MCU에 예전만큼 관심 두지 않는 사람들이 산토끼다. 나 같은 사람들만 잡아도 흥행 초대박까진 불투명하나 시리즈 명맥을 이어갈 만큼의 수익은 벌 수 있을 테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흥행 성공은 어디까지나 디즈니의 20세기 폭스 인수 이후 내놓은 첫 MCU 영화로서 세계관 통합의 마중물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엑스맨이 MCU에 대거 편입된다고 해서 마블 입문자들이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진입장벽만 더 높이는 꼴이니 신규 유입은 도리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데드풀과 울버린> 내용 중 멀티버스에 대한 마블의 반성이 들어가 있긴 하나 이미 멀티버스 판을 벌일 만큼 벌려놨는데 갑자기 대폭 축소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동안 흥행 실패를 거듭하면서 향후 제작 방향을 전면 재조정하고 해마다 선보이는 콘텐츠 수도 줄이겠다고 선언했으나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결국 마블의 구세주는 데드풀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아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차근차근 청사진을 그려낼 수 있는 인내심과 결단에 마블의 운명이 달려있다. 그래, 너 말이야, 케빈 파이기. 잘 좀 해봐라, 응?


#데드풀과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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