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를 읽고
이른 아침 현관문 앞에 놓인 신문엔 자극적인 사진과 강렬한 문구가 즐비하다. 하루에도 수차례 접속하는 인터넷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극에 익숙해진 생활 속에 어느덧 우린 이런 환경을 당연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극적인 본능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더 극적인 세계관을 형성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작가는 단언한다. ‘과연 그럴까?’ 싶었다.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란 문제에 주저 없이 50% 미만이라 답했다. 답은 60%였다.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또 어떨까. 무려 80%에 달한다. 극적인 본능 덕에(?) 그동안 부정적 이미지로 점철됐던 내 세계관은 각종 통계와 수치를 동반한 작가의 팩트폭격으로 가루가 됐다.
“사람들은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보기에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할 뿐이다. 내가 이렇게 명확하고 멋진 자료를 여럿 제시해도 세계가 점점 좋아진다는 데 동의하기가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거대한 문제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점점 좋아진다는 말이 마치 만사 오케이라거나 심각한 문제는 없는 척 외면하라는 말처럼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그런 말이 터무니없어 보이고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p.99
“나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세상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 – p.108
작가가 마련한 세계에 관한 13개 문제의 평균 정답률은 33%도 안 된다. 침팬지가 풀어도 이보단 나을 거라고 작가는 개탄한다. 정답률이 낮은 이유는 역시 극적 본능 때문이다. 쉽게 일반화해 단기 해결책부터 내놓으려 하다 보니 결국 근본적 원인 탐구보다 현상에만 매달리게 된다고 작가는 꼬집는다. 본능을 뒤로하고 세계관을 수정하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팩트, 사실에 충실하면 된다.
물론 말은 쉽다. 작가도 처음엔 당신이 틀렸다는 말을 좋아할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되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듣고 고무됐다고 한다. 새로운 지식의 창구가 열렸기 때문이다. 나도 고무된 사람 중 하나다. 다음엔 또 어떤 지식의 창구가 열리게 될지 벌써 기대된다.
19.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