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대화를 다녀와서

어둠속의 대화를 다녀와서 쓴 글(헬렌켈러 3일만 볼 수 있다면)

by 롤로

"지현아! 이제 일어나야지. 회사 늦겠다."

"지현아! 26살이나 먹은 딸을 아직까지 아침에 깨우는 엄마는 나밖에 없을 거다."

"지현아! 그만 일어나!"


"나 깼어!"


오늘따라 일어나는 게 몹시 아쉽다. 엄마가 날 깨우는 소리는 진작부터 듣고 있었지만, 간밤에 꾼 꿈이 너무나 달콤해 그 꿈을 되새기느라 한참을 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전날 술을 마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 회사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이 꽤나 즐거웠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굉장히 즐거운 꿈을 꾸었다.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3일 치 꿈이라니.


첫째 날

어릴 적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나는 꽤 늦게 알아챘다. 힘들었고 많이 울었다. 점점 예민해져만 갔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은 계속 커져 벽을 쌓고 사람들을 밀어냈다. 작은 원 안에 웅크리고 앉아 누구도 그 선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계속해서 밀어냈다. 그런 나에게도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큰 이벤트가 찾아왔고 그곳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여전했던 나만의 둥근 운동장을 선생님은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파도처럼 천천히 자연스럽게 무너뜨리기 시작하셨다. 우습게도 그 원 안에 웅크리고 있던 소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세상을 무너뜨려줄 존재를 갈망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주었고, 소녀는 그렇게 다가가는 방법을 배웠다. 친절, 겸손, 우정 내가 선생님께 배운 것들이다. 꿈속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밝게 웃는 선생님의 얼굴. 한참을 바라보고 울고, 껴안고 이야기했다. 다가올 수 없는 다음을 기약하며.


둘째 날

자연을 선망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 바람에 흩날리는 풀잎과 흔들리는 나뭇가지,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와 아련히 반짝이는 밝은 별빛 같은 것을 나는 선망한다. 꿈속에서 나는 낡은 텐트 안에 누워있었다. 일출 시간에 맞춰 둔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이미 오래전부터 깨어 있었다. 밤이 낮으로 바뀌는 순간, 일출의 순간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차가운 바깥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텐트 밖으로 나섰다. 저기 멀리 새끼손톱보다 작고 붉은 무언가가 산 언저리에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보게 된 일출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 새라 머릿속 잡념을 다 지워냈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을 마치 사진 찍듯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욱여넣었다. 풀을 만지고 나무에 기대고, 숲에 누워 정오의 햇살이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를 뚫고 내리쬐는 모습과 에메랄드 빛 바다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 낮이 밤으로 바뀌는 순간과 칠흑 같은 어둠 속 별빛의 황홀함을 눈에 담았다. 내겐 익숙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셋째 날

나의 세상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조금은 작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작은 집과 일터로 향하는 출근길, 그리고 친구들과 자주 가는 카페와 도서관, 작은 술집. 이 작은 원이 아등바등 넓혀온 소중하고 작은 나의 세상이다. 온 힘을 다해 조금씩 넓혀 온 나의 작은 세상들. 꿈속에서 나는 출근길에 항상 이용하는 카페의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느릿한 나를 위해 매번 오랜 시간 기다려 주신 다는 것을 안다. 꿈속에서 그 고마움에 답례하는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늘 밝게 인사하는 옆집 아이도 만났다. 예상했던 대로 맑고 선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늘 나의 작은 세상 속에 넣고 싶었던 영화관에 갔다. 남들처럼 팝콘과 콜라를 양손에 쥐고,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아름다운 저 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내 작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길 바라며. 이렇게 달콤한 꿈의 세 번째 날이 저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보통의 날일 뿐인 순간들이 나에게는 꿈, 기적 같은 순간일 때가 많다. 지난밤 나에게 찾아온 세 번의 낮과 밤은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 같은 순간이었고 늘 바라왔던 순간이었다. 아름답고 아쉬웠던 그 꿈을 곱씹으며 그런 꿈을 다시 또 꾸게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쯤 나의 소중한 일터에 도착했다. 체험객 명단을 확인해 보니 오늘 만나서 안내해 드릴 분들은 총 일곱 분이었다. 기분 좋은 꿈, 늘 바라던 아름다운 꿈을 꾼 날이니. 오늘은 더 밝고, 아름다운 웃음으로 체험객분들을 맞이해야겠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을 안내해 드릴 어둠 속의 대화 로드 마스터 지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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