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를 다녀와서
"일어남?"
아, 이거 이 녀석 정말 미친놈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저는요 사실 무엇을 먹든 어떤 음식을 먹든 상관이 없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또는 일로 어떤 지방을 방문하더라도 그저 배만 채우면 될 뿐, 딱히 맛집을 찾아간다거나 유명한 특산품을 찾아 먹는다거나 하지 않아요. 제주도를 가도 강원도를 가도 그저 때가 되면 배고파서 밥을 챙겨 먹는 것이죠. 어떨 때는 김밥천국을 가기도 하고 숙소 가까운 해장국집이나 기사식당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제 주변엔 맛집 앞에서 한 시간 두 시간 대기해서 먹거나 오픈런을 해서 햄버거를 먹거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사람 빼고요.
"미라야, 7시야 우리 점심 약속 시간은 12시잖아."
"나 너무 설레서 벌써 일어났어. 저절로 눈이 떠지더라니까."
"눈 떠졌으면 다시 자든가 아니면 너만 설레면 될 텐데, 어째서 나를 깨웠을까 미라야?"
"넌 안 설레냐 우리가 오늘 그 유명한 즈즈미 오마카세를 가는 날인데!"
네, 저는 전혀 설레지 않아요. 하지만 저도 돈을 버는 사람이고 쓰는 맛 쓰면서 느끼는 희열감이나 행복함. 소확행이라고 하나요. 그런 걸 아는 사람으로서 이번엔 어떤 걸로 나를 만족시켜 줄까, 이번엔 어떤 씀씀이로 허기진 나의 욕망을 채워줄까 생각하던 차에 미라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죠.
'즈즈미 오마카세 예약 성공! 3월 25일 시간 됨? 같이 가자'
미라의 연락에 바로 오케이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짧았죠. 바쁜 와중에 미라에게 카톡이 왔기 때문에 저는 날짜만 확인하고 급하게 답장을 하고 말았어요. '그래, 알았어 같이 가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널브러져 핸드폰을 하던 차에, 오후에 미라에게 왔던 연락이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즈즈미 오마카세를 검색해 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오마카세 집이었어요. 생각했죠. '오, 맛있는 집인가 보다.' 그리고 가격표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건 제가 생각하던, 지금까지 행해왔던 소확행이랑은 급이 달랐어요. 이것은 대확행이었습니다.
'즈즈미 오마카세 런치 세트 1인 190,000원'
소리를 질렀습니다. 초밥을 19만 원이나 주고 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19만 원짜리 초밥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급하게 미라에게 연락했죠.
"야, 이미라. 나 이거 꼭 가야 되는 거냐?"
"무슨 소리야. 당연하지. 내가 이거 작년부터 예약하려고 시간 날 때마다 들어가 본 거야. 너 무조건 가야 해. 이번에 안 가면 평생 갈 수 있을지 장담 못해."
"아. 이게 그 정도야? 사진 봤을 땐 그냥 초밥인데."
"정신 차려! 너 안 가면 후회한다니까. 그리고 우리 담당해 주실 셰프님은 이제 곧 그만 두실지도 몰라. 여기 예약도 힘든데 이분이 해주시는 오마카세는 더 특별하다니까!"
"알았어. 같이 가자."
"잘 생각했어. 가서 맛있게 먹고 오자. 너 오마카세 처음 가는 거잖아. 원래 처음 갈 때 좋은 곳으로 가야 해. 첫 시작이 즈즈미라니, 내가 너였음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을 텐데."
"그래, 알았어. 그만 자자."
난 네가 아니야 미라야. 난 너를 만나서 그냥 순대국밥을 먹어도 좋고, 해장국집을 가도 좋아. 아니 그냥 안 먹어도 좋다니까. 난 그런 사람이야. 치킨값이 19,000원이 되었을 때 내가 치킨을 끊겠다고 다짐했던 것 기억나니, 근데 19만 원짜리 초밥이라니. 소확행에 빠져 야금야금 월급을 갉아먹다가 의도치 않게 대확행의 선을 넘게 된 저는 너무나 두려웠어요. 그래서 그날이 오지 않기를, 3월 25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하지만 그날은 결국 오고야 말았고, 이른 아침에 미라의 연락도 오고야 말았죠. 어쩌겠어요.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그렇게 맛있다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가려고 줄을 선다는데, 그렇다면 그 맛이 19만 원의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겠죠.
"어 왔어?"
"미라야, 너 얼굴이 왜 이러냐."
"왜, 내 얼굴이 왜."
"너 화장했냐? 아니 나 만날 때 화장한 적 없잖아. 무슨 소개팅 나가는 것도 아니고 풀메를 하고 왔네. 너 왜 그래"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먹어야지, 너 진짜 아직도 감이 안 와? 즈즈미는 그런 곳이라니까?"
"어지럽다 정말. 됐고, 빨리 들어가자."
식당은 정갈했어요. 얇은 코트를 입고 갔는데, 저의 코트를 받아서 옷장에 넣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녹차를 내어주셨어요. 저와 미라가 나란히 앉고 다른 손님들도 6명이 있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었죠. 신기한 세상이었어요. 식사라는 것은 원래 배를 채우는 용도요. 든든히 먹고 일을 하거나 놀거나 공부를 하기 위한 영양을 공급하는 수단이었는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은 그런 눈이 아니었어요. 영양을 채우는 욕망의 눈이 아니라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위한 눈망울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 오신 거 같으니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온통 처음 먹어보는 것 투성이었습니다. 음식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담겨 제 앞에 놓였고, 셰프님은 어떤 음식이고 어떤 식재료가 들어갔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어요. 놀라운 것은 제가 녹차를 다 마시자 뒤에 계시던 스태프 분이 알아서 또 채워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맵단짠이 최고의 음식맛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감칠맛이나 담백한 맛으로 입안을 가득 채우는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음식을 제가 보는 앞에서 바로 조리해 주시는데 그것 또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제법 배가 찼을 무렵 미라가 말했어요.
"맥주 한잔 해야지, 어때?"
네, 제가 진짜로 미쳤습니다. 맥주를 시켰어요. 아주 시원한 아사히 생맥주가 나왔고 남은 코스를 맥주와 함께 완료했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셰프님과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저의 생애 첫 오마카세 경험이 끝이 난 것이죠. 맥주까지 해서 깔끔하게 20만 원을 점심 한 끼 식사에 태웠습니다. 계산서를 받아 든 저는 화장실을 들렀습니다. 화장실에 가글이 있더라고요. 맥주값 만원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두 번 입을 헹궜습니다.
"어때, 너무 맛있지 않니? 생선도 신선하고 음식들도 너무나 정갈한 게 정말 맛있더라, 내가 지금까지 가본 오마카세 중에 3위 안에 든다 진짜. 와 너무 좋았다."
"그래, 맛있더라."
"우리 예약 성공하면 다음에 또 오자! 어때?"
"...."
모든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제 미각 세포는 미라에 비해 뭔가가 좀 덜떨어진 미각 세포들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맛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맛도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언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20만 원짜리 오마카세가 나를 위해 충분히 태울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한 끼를 먹는다고 해서 제가 20만 원짜리 식사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죠. 그렇게 집에 도착해 씻고 누워 20만 원짜리 영수증을 형광등에 비춰 보며 이번달 생활비를 걱정하는 제게 다음번 오마카세는 너무나 먼 날의 약속이 되고야 말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