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에서 대차게 싸우는 커플을 보고
"오빠는 여전하네, 보기 좋아 늘 한결같은 모습"
"고마워, 잘 지내지?"
"응, 잘 지내고 있어. 오빠도 여기서 약속 있나 봐? 난 기다리는 사람 있어서 이만 가볼게."
"응, 잘 가."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도 반갑다거나 다음에 만나자는 기약을 남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보통은 헤어진 연인이나 헤어진 연인일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방심하고 걷다 우연히 맞닥뜨린 그 삼류 연애 소설 같은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잠시, 짧은 시간 동안 지나간 반가움, 당혹, 아쉬움, 안도 같은 감정들은 몇 마디 대화 속으로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여전하다고? 한결같다고?'
찝찝한 만남을 뒤로하고 머릿속은 하염없이 복잡한 생각들로 뒤엉킨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한 잔 하는 날이었기에 들떴던 기분은 이내 접시에 담긴 경양식집 물티슈처럼 축축이 젖어 힘없이 차분해져 버린 뒤다. 나는 여전하지도 않고, 한결같지도 않다. 누군가가 떠난 자리엔 문을 두드리기 위해 살짝 문고리를 잡은 사람마저도 눈치챌 만큼 큰 구멍 같은 것이 존재한다.
"어, 왔어?"
"뭐야,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오다 똥이라도 밟았냐?"
"와, 나 오다 XXX 만났잖아."
친구가 말없이 내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 셰익스피어가 한 말이다. 놀랍게도 이 말은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꽤 많은 부분들에 맞아떨어졌고, 어느 곳에 사용해도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도 맞는 명제일까 싶은데, 적어도 'XXX'한테는 그랬다.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 한번 형성된 성격과 습관은 쉬이 바뀌지 않고, 바뀐다면 응당 이유가 있다. 심지어 그 바뀌는 이유가 당사자에게 어떤 불이익이나 고통, 안 좋은 영향을 줄 때는 더 크게 바뀌기도 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쉬이 마음을 열고 많은 것을 내주던 한 청년은 'XXX'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가진 걸 내어주고 모든 걸 다 내어주고 나서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으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감정의 여분까지도 슥슥 그러모아 한 톨 남김없이 내어 주었다.
내어준 것이 많아, 가슴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여분이 없던 그 사람은 'XXX'가 쏟아내는 감정의 파도에 한 번, 두 번, 세 번 휩쓸리더니 이내 자신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 감정의 망망대해에서 자신을 잃은 남자는 결국 이별이라는 태풍 속에서 갈 곳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예전의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야 만났으면 만난 거지 눈빛은 왜 이렇게 애절한 건데, 아직도 못 잊었냐?"
"못 잊어서 그랬겠냐. 왜 난 또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멍청하게 물러터진 대답만 했나 싶어서 아쉬워서 그렇지."
"말할 수 있었으면 뭐, 모진 말이라도 하려고 그랬냐?"
"아니, 걔가 뭐라고 그랬는 줄 아냐? 나보고 변한 게 없대, 한결같은 모습이 보기 좋대"
"너 한결같지 한결같이 멍청하고 퍼주니까 여태 그 모양이지."
"아, 마시자"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 그런 관계도 있다. 행복한 순간, 기쁜 순간도 있었겠지만, 그 더러운 끝에 다다르면 함께 한 어떤 순간도 좋은 순간이 아니게 되어 버리는 그런 관계. 그런 관계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기도 한다. 관계에 소극적이고 냉소적이고, 가슴이 공허한 사람으로.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 오늘 하루를 망친 그녀 덕분에 실감했다.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좋은 끝을 맺지 못한 나를 질책하며 그로 인해 생긴 어두운 감정들을 그러안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