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몫

장례식장을 다녀와서

by 롤로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는다. 곧 한 아이가 재빠르게 나의 신발을 집게로 집어 신발장에 넣는다. 조카쯤 될까. 아들은 아닐 것이다. 형제가 꽤 많다고 들었으니 아무래도 조카인 듯하다. 곧 영정사진 앞에 국화를 하나씩 올린다. 사진을 살짝 바라보다가 손을 마주하고 절을 한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옆사람과 속도를 맞춘다. 두 번 절을 한 후 상주를 마주하고 다시 한번 더 절을 한다. 떠나간 사람에게 절을 하는 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애절하다. 슬픔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라고 했던가. 내 앞에 남겨진 사람들이 앞으로 짊어지고 갈 그 슬픔의 몫이 애달프고 가여워 상주와 마주 하는 절이 더 슬프다.


"김 과장님 병원에 꽤 오래 계셨던 거 같아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이제 6개월 정도 됐나. 생때같은 애들 놔두고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지. 원."

"무섭네요. 금방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절을 마치고 마련된 자리에 앉아 장례식장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여전히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두 눈이 붉게 충혈된 그의 부인은 이제 더 이상 울 기력도 없는지 방석 위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영정 사진을 바라본다. 짧게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무슨 말인지 가늠은 안된다. 그녀가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감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남겨진 슬픔의 몫으로 그녀가 95를 가져갔다면 우리 몫은 1 정도 될까'하고 생각했다. 슬픔의 몫에 짓눌린 그녀의 가녀린 어깨와 눈시울이 여간 안쓰러울 수 없었다. 감정도 분배가 가능하다면 여기 다녀간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만 덜어가면 어떨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녀의 옆에 그의 형이 있었다. 둘째 형인지 셋째 형인지 형제가 많은 사람인지라 정확한 관계는 모르지만 그의 모습 또한 슬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슬픔 같아 애처로움이 좀 덜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사랑하는 동생을, 사랑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형을, 사랑하는 아빠를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수많은 장례식장을 다녀왔지만 다행히도 나는 아직 그 감정을 모른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 많은 장례식장에서 슬픔의 몫을 크게 가져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뜻 봐도 굉장히 힘들고 슬프고 고통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들은 몇 살이에요?"

"내년에 유치원 들어간대."

"아이고..."


남겨진 자들에겐 앞으로의 살 날도 오늘 슬픔의 이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보일 때면 더 그렇다. 그의 부인 옆에 모로 누워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본다. 작은 체구에 비해 어색하게 큰 검은색 옷과 상주 완장을 찬 아이의 모습은 정체 모를 슬픔과 장례의 예(禮)로 아이의 그 순진무구함이 덮이고 가려진 것 같아 더 서글펐다. 이 아이는 알고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가 사리분별을 하고 점차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느낄 아버지의 부재(不在)로 인한 슬픔이 작은 체구 때문에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각자의 잔에 술을 따라 접시에 담긴 음식과 함께 먹고 마신다. 우리가 건넨 짧은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추억하는 것뿐인지라 짧은 자리에서 길고도 먼 그의 이야기를 술과 함께 풀어낸다. 우리가 풀어낸 그의 기억만큼 그들이 짊어질 슬픔의 몫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면허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