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약직이었다"
계약직이었지만,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아니 정규직보다 일에 더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내 열정은 이용당했다.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잠시 맡았을 뿐.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지 채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계약직”이다.
수없이 바뀌는 계약직 직원을 고용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가 항상 궁금했다. 2021년 사람인에서 기업 584개를 대상으로 ‘정규직 축소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답을 알 수 있었다. 51.2%가 정규직 축소를 하겠다고 답했다. 정규직 자리를 축소하는 이유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73.2%로 가장 높았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 장기화로 설문조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도 계약직은 많았다. 결국, 회사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계약직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통계를 내지 않더라도 회사는 돈 때문에 계약직을 고용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출처 : 사람인
많은 정규직 자리에 지원했지만, 정규직으로 일을 하려면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일을 하고 싶었다. 일을 배우고 싶었다. 첫 직장은 계약직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마음을 비우고 계약직을 택했다. 어쩔 수 없는 계약직일 수도 있고, 정규직을 향한 정거장으로 자발적 계약직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일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있다. 간절함으로 인해 우리의 열정은 이용당하게 된다.
1. 취업을 시작하는 단계
- 회사 내규에 따름
- 계약직(정규직 전환 가능), 수습 3개월
- 필수 : 직무 관련 자격증
- 우대사항 : 토익 700점 이상, 직무 관련 경험자, 문서작성 우수자
- 복리후생 : 회식 강요 안 함, 야근 강요 안 함, 자율복장
지금 사람인, 잡코리아 등 취업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해보면 다 이렇다. 내용이 조금씩 다를 뿐 다 비슷하다. 회사는 "돈은 조금 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일 잘하고 스펙 좋은 인재를 원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회사 내규에 따름'으로 정확한 연봉조차 알려주지 않고, 구직자에게 정보마저 주지 않는다. 회사가 돈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도 돈이 제일 중요하다. 계약직을 일하려고 해도 직무 관련 경험자를 원한다. 도대체 경험은 어디서 쌓을 수 있나요? 복리후생 회식도 강요 안 하고 야근도 강요 안 하고 이렇게 좋은 데 왜 똑같은 공고가 계속 올라오는 거죠?
2. 면접을 보는 단계
"돈이 정규직과 차이가 많이 나는 데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어쩔 수 없죠... 정확하게 얼마나 차이가 날까...? 물어봐도 될까?)"
"더 물어볼 거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괜히 물어봤다가 안 뽑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연봉이 얼마일까...)
이렇게 연봉은 끝까지 모르고, 합격해서 출근 한 며칠 후에나 근로계약서를 받아보게 된다. 그때서야 정확한 연봉을 알고 실망을 하게 된다. 만족하지 못하고 나간다면, "일에 대한 열정이 없고, 돈 밝히는 사람이네"라고 회사는 생각할 것이다.
3. 인수인계를 받는 단계
팀장님이 말했다.
"이번에 붙은 분은 이틀 인수인계할 예정이에요."
"네? 붙은 분이 그 날 일정이 있으면 어떡하나요? 정식 출근 전에 돈 받지 않고 하루 나오는 것도 그런데 이틀은 좀..."
팀장님이 답했다.
"일단 물어봐야죠. 강제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내부적으로 인수인계받는 기간을 이틀로 확정 지은 뒤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과연 강제성이 없는 것인가? 돈이라도 주면 모를까 무료로 하루든 이틀이든 봉사를 요구하는 것 또한 열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면 그 정도 열정을 보여보라고. 만약 일정이 안된다고 했으면 전 계약직 퇴사 이후 하루 나와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대가 없이. 이것도 강제성은 없지만 어쩔 수 없다면서.
4.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는 단계
다녔던 곳은 계약직이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던 곳이다. 희망조차 가지지 않았다.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는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희망을 심었다. 회사를 나온 후 2년이 지났지만, 그곳은 여전하다.
채용 문구에 '계약직(정규직 전환 가능)' 단어는 가슴속에 희망이 싹트게 한다. 정규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한 번씩 '이번엔 정규직 전환 가능할 것 같은데?'라는 말로 희망을 계속 심어준다.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회사를 위해 열정을 불태운다. 결과는 알 수 없는 데도 말이다.
배우고 싶었고, 열심히 일하고자 했다. 일에 대한 열정을 수치로 나타내면 처음에는 150%로 100%를 훌쩍 넘었었다. 효율적으로 업무를 바꾸고 싶고, 업무협의를 통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도 시키고 싶어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버틸 수 있었다. 버티고 있는 나를 무너지게 만든 것도 회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치는 나에게 열정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가장 열정적이고, 뜨거웠던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정규직으로 들어갔다면 지금까지 열정이 남아있었을까?라는 물음에 "모르겠다"가 정답이다. 같이 일했던 정규직 직원들을 보면, 열정적으로 일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기 때문에 계약직만큼의 열정을 불태우지는 않는 것 같다.
확실한 건 간절함을 가진 계약직의 열정은 이용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