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회사 이익을 위해 계약직을 고용한다. 간절함을 가진 계약직의 열정은 이용당한다. 그렇다면, 나도 내 이익을 위해서만 일할 것이다.
"받는 만큼만 일합니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1년을 생각해보면,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나는 신입이니까 모든 지 다 해야 하고, 회사도 돈과는 상관없이 막내니까 추가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였다. 기본적인 내 업무 이외에 대리, 과장의 업무에 수시로 지원을 나갔다.
당시에도 '내 업무는 도와주지 않으면서 나는 왜 주말까지 반납하면서 도와야 하는 거지?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라는 의문이 가득했다. 처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아는 게 없다 보니 주는 일은 다 했다. 다른 분들 업무를 도와주다가 야근을 하게 돼도, 주말에 출근을 해야 해도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일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한다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복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업무들을 준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하지만, 이미 자리 잡혀 버린 내 이미지를 깨트릴 자신이 없었다. 1년 동안 꼼짝없이 말도 못 하고, 열정을 쏟아부었다.
간절하지만, 더 이상 회사에게 내 열정을 이용당하기 싫다
두 번째 회사로 이직 후, 담당업무를 진행하면서 같은 팀 직원의 업무를 가져갔으면 한다는 요청을 받았다. 내 열정을 이용당하기 싫었지만, 고민이 된 것은 사실이다. 열정이 없어 보일까 봐도 걱정이었지만, 일하는 분야가 좁다 보니 어디서 만날 지 모르고, 추후 다른 회사에 어떻게 말을 전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다.
추가 업무를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담당업무 또한 1명이 맡기 무리인 업무이며, 월급보다 과한 일이었다. 단순히 '경험하면 좋으니까'라는 이유로 업무를 넘기려고 했다. 업무분장으로 봤을 때, 분명 1명은 과한 업무, 1명은 업무시간 중간중간 30분 이상씩 자리를 비울만큼의 그렇게 바쁘지 않은 업무였다. 그럼에도 업무를 넘긴다는 것은 본인들의 손이 많이 가는 업무를 줄이려고 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못하겠습니다
신입에게 금기어처럼 되어 있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무슨 일이 크게 날 것 같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수없이 고민이 될 것이다. 힘들지 않은 일인데 나만 힘들어하는 건 아닌지? 업무를 추가로 받지 않으면 일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닌지? 업무가 많다고 느끼는 것, 월급보다 과한 일이라고 느끼는 것에 대해 나와 팀장님, 직원들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하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크더라도 방 전체를 고르게 채운다. 인간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 고통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 영혼과 의식을 가득 채운다. 고통이란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 한 구절이다. 고통이란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면 별로 힘들지 않은 것 같은 데 "힘들다"라고 이야기하는 동료가 있다. 그 동료는 정말 힘든 것일 수 있다. 고통이란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니까.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느끼는 게 중요하다.
단, 받는 만큼만 일하려면 '책임감'은 필수다. 두 번째 회사를 들어오기 전에 있던 계약직 직원은 주어진 일을 미루고 하지 않아 다음 계약직인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계약직 직원은 회사를 그만두는 날 회사에 나오지도 않고, 남자 친구를 통해 퇴사 통보를 했다.
급여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을 수 있다. 이해는 하지만, 본인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힘들다고만 말할 자격은 없다. 받는 만큼만 제대로 일하면,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다.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무시할 수 있다. 받는 만큼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받는 만큼은 일하고 있기 때문에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받는 만큼만 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