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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는 맛집이 궁금하다

진짜 '맛'이란 무엇일까?

by 크림동동

우연히 수지에 유명한 생선구이 집이 있다는 정보를 온라인에서 접하게 되었다. 맛있는 생선구이 집을 추천해 달라는 글에 달린 댓글에서였는데, 얼마나 맛있는지는 몰라도 다른 곳에 있는 생선구이 집을 말할 때마다 ‘거기와 비교하면’이라는 말이 달렸다. 나도 생선구이를 좋아하기에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내친김에 정보를 검색해 보니 화덕 생선구이 집인데 맛있다는 칭찬 일색이었다. 수지라면 집에서 못 갈 정도로 먼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번 가 봐야겠다 싶었다.


그날이 2주 전 일요일 갑자기 찾아왔다. 아침에 남편이랑 근교에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가 내침 김에 좀 이르지만 점심까지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네비에 주소를 찍고 수지로 향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수상했다.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자동차 줄이 점점 길어졌다. 그때야 맛집은 줄을 선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도 기껏 한 시간 정도겠거니 생각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그 넓은 주차장이 빼곡했고 눈으로 보기에도 빈자리가 없어 보였다. 남편은 나보고 얼른 가서 대기표부터 뽑으라고 했다. 이미 입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번호표를 뽑았는데 번호가 164번이었다. 이 정도면 얼마나 기다리라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화장실이 급해 옆의 대기실로 들어갔는데 대기실이 마치 고속버스 대합실 마냥 사람들로 가득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때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다는 거다. 식당 문 여는 시간은 11시였다. 그럼 100명이 넘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몇 시부터 와서 줄을 섰다는 걸까?


처음 보는 광경에 머리가 어벙벙해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화난 목소리로 번호표를 뽑았냐고, 번호가 몇 번이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지금부터 2시간 반을 기다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주차장 아저씨들이 자리가 없다고 하면서 “지금부터 들어오시는 분들은 2시간 반 기다려야 합니다”하고 외치고 있다는 거였다. 평소에도 기다리는 거라면 질색팔색하는 남편은 이미 차들로 가득 한 이 상황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듯했다.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그냥 나오라고 성화였다. 평소 같으면 고집을 부렸겠지만 나 역시 엄청난 대기 현장에 기가 죽은 터라 순순히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결국 그날 우리는 그 유명하다는 생선구이를 먹지 못했다.

KakaoTalk_20250721_082941410.jpg 과연 얼마나 맛이 있길래 줄을 이렇게 서는 걸까?




요즘 ‘줄’은 맛집의 상징이다. 문 앞에 줄이 늘어서 있지 않은 집은 맛집이 아니다. SNS에는 매일 어떤 신상 카페에, 새로 문을 연 식당에 오픈런을 했다, 몇 시간을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올라온다. 심지어 요즘은 가게가 잘 되어도 일부러 확장하지 않는다고까지 한다. 일부러 줄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거다.


게다가 이런 맛집들은 후기도 화려하다. ‘천상의 맛’이라도 되는 양 극찬이 쏟아진다. 예쁜 사진들과 함께 이런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도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지만 직접 가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맛있을 때도 있지만, ‘생각만큼은 아니다’, ‘맛은 있지만 이렇게 기다릴 정도는 아니다’ 할 때가 더 많다. 그렇다고 좋은 후기를 남긴 사람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 이렇게 줄 서는 맛집들은 도대체 진짜 맛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객관적으로 ‘맛’만 가지고 말한다면 물론 맛있다. 애초에 맛이 없었다면 이만큼 입에 오르내릴 일도 없었을 테니 맛은 기본이다. 만약 내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 가게에 들어갔다면 매우 만족했을 거다. 그러나 일단 줄을 서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대치가 생기는 것이다. 일부러 찾아가기라도 했다면 더욱 그렇다. ‘얼마나 맛있기에 그럴까’, ‘과연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이런 마음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강해진다. 마침내 음식을 먹게 될 즈음에는 그 눈높이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다.


이렇게 올라간 기준점에 어떤 음식이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천상의 양식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맛을 제대로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 맛보다는 기다린 마음에 대한 보상 심리가 먼저 작동한다. ‘대존맛(대단히 좋은 맛)’, ‘미친 맛’이라며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하는 무조건적인 칭찬과 ‘생각보다 별로더라’, ‘맛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줄 설만큼은 아니다’라는 실망이 함께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전자는 기다린 시간에 대한 정당화이고 후자는 그에 반대로 그에 대한 분노다. 어느 쪽이든 객관적인 맛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진짜 음식은 사라지고 음식에 대한 환상만 쫓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줄 서는 맛집에 가는 걸까? 왜 그 긴 줄 끝에 서는 걸까? 아마 이번에야말로 진짜 맛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다른 사람이 느끼는 그 감탄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믿음, 나만 그런 맛을 놓칠 수 없다는 소외되기 싫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맛이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머리와 마음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각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불러들이는 총체적인 감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다시 긴 줄의 끄트머리에 서서 1시간 2시간을 끈질기게 참는지도 모른다.


후일담을 말하자면 1주일 후 일요일, 우리는 다시 ‘산간고’에 갔다. 이번에는 각오를 단단히 한 채였다. 11시 4분 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대기번호는 157번이었고 2시간 20분을 기다린 끝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럼 과연 맛은 어땠을까? 화덕에 구워 나온 고등어는 큼지막하고 껍질은 바삭하면서 속살은 부드러웠다. 짜지도 않았다. 나는 좋았다. 맛있었다. 맛집 인정. 하지만 남편은 맛집인 건 맞지만 반찬 맛집이라고 했다. 생선구이는 자기가 생각한 모양이 아니라며 그저 그렇다고 했다. (솔직히 남편 마음에 드는 생선구이 집은 있기나 한 건지, 과연 있다면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하다.) 결국 같이 기다렸음에도 우리 둘의 의견은 갈렸다. 맛이란 이렇게 미묘하고 힘든 것이다.

KakaoTalk_20250721_082941410_01.jpg 마침내 먹을 수 있었던 귀한 생선구이 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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