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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by 크림동동

얼마 전에 지인 모임이 있었다.


지인 중 한 명이 최근에 시술을 받았다고 해서 모임 내내 시술이 화두였다. 다른 한 명도 과거 몇 차례 시술 경험이 있다며 둘은 열심히 정보를 나누었다. 간간이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 단어들이 언뜻언뜻 오갔다.


시술 덕인지 둘은 확실히 젊어 보이긴 했다. 우스운 건 처음에는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당사자가 말하고 나니 눈에 보이더라는 점이다. 이렇게 조금씩 해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거였다. 과연, 최근 시술을 받았다는 이가 보여주는 전후 사진을 보니 차이가 엄청났다. 나도 돈만 있다면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젊고 예쁜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이 두 가지는 여자에게는 특히나 민감한 주제다. 나 역시 겉으로는 초탈한 척 하지만 당연히 할 수만 있으면 예뻐지고 싶다. 하지만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한다는 건 어렵다. 단순히 돈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관리하고 가꾸어야 한다. 그렇게 돈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젊어지기는커녕 기껏 노화를 늦추는 게 고작이다.

make-up-4541782_1280.jpg 출처: 픽사베이


사람들 말로는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써도 피부과에서 관리 한 번 받는 것만 못하고 관리를 아무리 받아도 시술 한 번만 못하다고 한다. 어쩌다 팩 한 번 하는 게 고작인 나로서는 힘 빠지는 이야기다. 시술 비용을 들어보니 어차피 내가 발 담글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여우의 신포도 격일 수 있지만 내가 시술을 생각하지 않는 건 단지 금전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 주변에 시술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 번에 만족하는 경우가 없다. 항상 무언가 아쉽다며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내 눈엔 괜찮은데도 말이다.


궁금하다. 다른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게 목적이라면 정작 그 다른 사람은 구별하지도 못하는데 왜 당사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얼굴에 손을 대는 걸까? 진정 만족시키고 싶은 대상은 타인의 눈인 걸까 아니면 자기 자신인 걸까? 어쩌면 진짜 바깥세상에 있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이다. 본인이 스스로 옥죄고 있는 셈이다. 즉, 자기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한 시술의 굴레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영원한 굴레를 감당할 정신적인 에너지도 경제적인 능력도 없다. 그래서 아예 시작도 않는 거라고 변명해 본다.


길게 썼지만 사실은 돈이 없어 시술을 못 받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내가 포기한 건 시술이지 ‘예쁨’이 아니다. 단 그 예쁨의 차원이 다를 뿐이다. 다행히 요즘은 ‘고잉 그레이(going grey)’도 유행이다. 고잉 그레이는 원래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는 걸 말하는 걸 말하는 거다. 나는 염색은 하지만 피부에 관한 한은 ‘고잉 그레이’다.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기게 두는 거다.

ai-generated-8441498_1280.png AI 생성 이미지

솔직히 아무리 시술을 받는다고 해도 세월의 흐름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시간이 가면 누구나 나이 먹고 절세 미모도 시들기 마련이다. 그럼 마지막에 남는 건 무얼까? 남는 건 인상밖에 없다.


주름은 내가 평생 만들어 온 얼굴의 도장과 같은 거다. 평소 표정 짓던 대로 주름이 생긴다고 한다. 화를 잘 재는 사람은 화난 표정대로, 잘 우는 사람은 우는 표정인 채로 얼굴이 주름이 생겨 굳어 버리는 거다. 그러니까 기왕 주름이 생긴다면 웃는 표정으로 주름이 생기는 게 낫지 않을까?


예쁜 얼굴은 처음에는 보기 좋지만 결국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인상 좋은 얼굴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또 만나고 싶고 연락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모두 둥글둥글 잘 웃고 인상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늙고 싶다. 예쁜 할머니보다 인상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오늘도 웃어봐야겠다. 그게 내 피부 관리의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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