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성 여행

남한에서 금강산에 오를 수 있는 곳

by 크림동동


“엄마, 아빠, 내일 금강산에 간다.”


아들과 통화하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동했다.


“예?”


놀란 아들이 되물었다.


“북한에 가는 건 아니고….”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정말 북한에 간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북한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는 거긴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강원도 고성, 남한의 최북단이었다. 심지어 고성은 한때 진짜 북한 땅이기도 했다. 지금은 휴전선이 남북을 가르고 있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이 한반도를 갈랐다. 그때는 개성은 남한 땅이었고 철원과 고성은 북한 땅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한때이긴 하지만 북한 땅에 간다는 말이 영 틀린 건 아닌 셈이었다.


고성 여행은 처음이었다. 이 여행 전까지 고성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았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동해안을 돌 때 화진포까지 간 적은 있지만 너무 희미한 기억이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성은 먼 곳이었다. 거리상으로뿐만 아니라 심적으로도 멀었다. 고성의 가장 대표적인 볼거리를 검색하면 ‘통일전망대’라고 나왔다. 한자로 ‘고성’이라는 지명은 ‘높을 고(高)’자를 쓴다. 즉, ‘고성(高城)’은 ‘높은 곳에 있는 고을’을 뜻한다. 하지만 나는 ‘고성’의 ‘고’자를 멋대로 ‘외로울 고(孤)’자라고 상상했다. 그만큼 고성은 나에게 멀고 춥고 외로운 고장이었다. 가장 최근에 고성이라는 이름을 들었던 건 몇 년 전 아들 유치원 동창이 고성에 있는 수색 부대로 차출되어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그때 아들은 고성이 최전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몇 달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금강산 1코스가 고성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금강산을 남한 땅에서 갈 수 있다고?’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침 남편과 여름 휴가지를 찾던 중이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당장 고성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출발 전날까지, 아니 가는 내내 남편은 몇 번이나 말했다.


“내가 살아서 금강산을 밟을 줄이야!”


그만 좀 하라고 타박했지만 나도 어느 정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금강산 1코스는 화암사에서 시작해서 신선대로 올라가는 길이다.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기 전 먼저 화암사부터 둘러봤다. 화암사의 정식 명칭은 금강산 화암사다. 금강산에 있다는 팔만 아홉 개 암자 중 첫 번째로 통일 신라 시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화암(禾岩)’이란 이름은 ‘쌀 바위’라는 뜻인데 ‘화암’ 바위 옆에 지은 절이라 해서 ‘화암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절 바로 앞에 ‘수(水)바위’로 더 잘 알려진 ‘쌀바위’가 보였다. 사찰 자체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 불에 타고 무너져 옛 건물은 없고 근래에 다시 세운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사찰을 둘러보는 대신 전망대와 미륵전 쪽으로 올라갔다.


KakaoTalk_20250820_140235757_04.jpg '화암사'의 이름을 따 온 '화암' 바위.(정식 명칭은 '수바위', 혹은 '쌀바위'라고도 불린다.)
KakaoTalk_20250820_140235757_06.jpg 수능 기원을 담은 작은 연등이 알록달록 가득 달려 있던 화암사 경내


전망대를 향해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하늘이 더 커지고 넓어졌다. 마침내 전망대에 서는 순간 가슴이 탁 트였다. 동시에 숨이 막혔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한반도의 맥이었다. 한반도의 등뼈. 태백산맥이 그 거대한 줄기를 천천히 바다를 향해 뻗고 있었다. 그 푸르고 긴 자연의 손가락이 땅을 기어가다가 마침내 바다를 잠기는 곳, 그곳이 동해였다. 푸르른 동해는 다시 하늘과 맞닿아 있었는데 그 경계가 아스라해서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을 가득히 채우는 초록과 푸르름의 향연에 한갓 인간은 말문이 막히고 단지 바라보고 또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늘과 바다, 산, 그사이 평평한 곳에 속초 시내가 보였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문명은 자연의 틈새 속에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여 기이한 기분을 더했다. 마치 차원의 틈새라도 엿보는 듯했다.




KakaoTalk_20250820_140235757_21.jpg 화암사 전망대에서 바라 본 속초 시내 전경과 동해 바다
KakaoTalk_20250820_140235757_08.jpg 수바위 너머 태백산맥 줄기와 속초 시내가 아스라이 보인다.


전망대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미륵불을 볼 때 절정에 달했다. 미륵불은 파란 하늘을 이고 홀로 고요히 서 있었다. 미륵불의 얼굴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바람에 따라 빠르게 피어나고 지는 하얀 뭉게 구름은 마치 극락에라도 온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라도 그곳에 서서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갈 곳이 있었다. 금강산에 오르는 길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미륵불의 차분한 미소를 마음에 새긴 채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50820_140235757_12.jpg 신비한 분위기의 미륵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금강산 1코스는 쉬운 코스로 통한다. 거리도 짧고 길도 험하지 않아 올라가는 데 기껏해야 1시간 30분, 설렁설렁 가도 1시간 4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말이다. 남편과 나처럼 산을 타는 것보다는 보는 걸 더 좋아하고, 산이래야 기껏 계절이 바뀔 때 한번 가는 게 고작인 사람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게다가 우리가 출발한 시각도 이미 11시가 넘은 때였다. 제대로 산을 탄다면 오르는 게 아니라 이미 내려왔어야 하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왕 마음먹은 것,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더웠다. 역대급이라는 7월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여름 정오의 온도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 화암사가 이름을 따 온 수바위까지는 금방이라 별문제 없었지만, 시루떡 바위, 그리고 이어지는 신선대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가팔랐다. 1시간 반 안에 오르기는 진작 포기했다. 더위를 참으며 꾸역꾸역 올라가는데 몇 년 전 갑상선암 수술 뒤 부쩍 더위를 타는 남편은 몇 번이나 앓는 소리를 했다. 어림짐작했을 때 신선대는 바로 위였다. 남편에게는 쉬엄쉬엄 오라고 말한 뒤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신선대에 올랐다.


실은 고성을 이번 휴가의 목적지로 정한 데에는 금강산에 오르는 것 이외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요즘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신선대에서 조망한 울산바위’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울산바위야 잘 알고 있었고 몇 번 가까이 가서 보기도 했지만 그런 사진은 처음이었다. 산줄기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울산바위의 자태는 너무 신비스러워 차마 우리나라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꼭 신선대에 올라 그 풍경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에 섰다. 장관이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폰을 꺼내들고 수없이 사진을 찍었다. 한 장면이라도 더 그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울산바위를 왜 ‘바위’라고 부르는 걸까? 저 정도 규모라면 바위가 아니라 봉우리라고 해도 충분했다. 그런데 왜 바위인 걸까? 전설에 따르면 울산바위는 금강산의 봉우리가 되고 싶어 울산에서부터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바위가 너무 크고 무거운 까닭에 너무 느려 결국 미처 금강산에 도달하기도 전에 금강산 봉우리가 다 찼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낙심해서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 지금의 설악과 금강의 경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울산바위는 감히 금강산의 봉우리를 꿈꿀 정도로 웅장하고 수려했다는 이야기다. 다르게 말하자면 금강산에는 이 위풍당당한 울산바위조차 봉우리가 아니라 바위로 보이게 할 정도로 수려한 봉우리들이 일만 이천 개나 된다는 소리도 된다. 그러니 금강산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


어느 순간 나는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모든 모습을 다 담기란 불가능했다. 대신 울산바위를 바라봤다. 지긋이 바라보며 그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 햇볕은 온몸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지만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찬 바람 때문에 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KakaoTalk_20250820_140235757_20.jpg 울산바위
KakaoTalk_20250820_140235757_18.jpg 구름이 만드는 하늘 그늘과 울산바위. 자연 앞에 절로 숙연해졌다.


그곳은 다른 세계였다. 신화와 현실이 겹치는 곳, 현실과 비현실이 맞물리는 곳. 신라가 멸망했을 때 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마의태자는 결국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금강산의 끝자락에 서 있던 그 순간에는 그 전설도 어쩐지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금강산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사랑받고 가장 친근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곳. 그 금강산에 나는 서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상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