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가 지나간 백담사 계곡
어떤 장소는 장소 그 자체보다 특정 이미지와 묶여 기억된다. ‘백담사’가 그런 곳이다.
나는 백담사란 이름을 뉴스에서 들었다. 언젠가부터 9시 저녁 뉴스에 매일 백담사 이야기가 나왔다. ‘000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 이상, 백담사에서 알려드렸습니다.’ 싫어도 텔레비전을 틀면 전직 대통령 이름과 더불어 백담사란 이름이 나왔다. 궁금했다. ‘백담사가 도대체 어디지?’ 하지만 가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쩐지 무서운 전직 대통령의 얼굴과 함께 백담사까지 위험한 곳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교과서에 ‘백담사’가 나온 걸 보고 놀랐다. 심지어 3.1 독립 만세 운동 때 민족 대표 31인 중 한 명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곳이라고 해서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알고 보니 백담사는 무려 신라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절이었을 뿐만 아니라 설악산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까닭에 신자들이 모이기보다는 주로 스님들이 세상과 떨어져 조용히 수행하는 곳이었다. 이 조용한 암자가 전직 대통령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한눈에 받는 떠들썩한 곳으로 변해 버렸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시절도 지나가고 이제 백담사는 다시 고요한 모습을 찾았다. 물론 더 이상 아주 옛날처럼 조용한 암자는 아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설악산의 명소다. 게다가 전직 대통령 덕을 보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가는 도로가 그때 닦였다고 하니, 감사까지는 아니어도 전직 대통령 덕에 절까지 편하게 가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백담사의 원래 이름은 ‘한계사’이다. 이 이름은 ‘한계령’처럼 설악의 ‘한계’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듯하다. 그 후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다가 조선 정조 7년에 ‘백담사’로 정착했다. ‘백담’이란 이름은 절에서 대청봉까지 웅덩이가 100개 있다 해서 붙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첫 이름인 ‘한계’가 ‘차가운 개울에 있는 절’이라는 의미인 데다 지금의 이름에도 물 웅덩이가 들어갔으니 백담사 주변에 물은 예전부터 유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담사 계곡에 가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아니, 사실 아주 옛날에 입구까지 왔다가 길이 언 탓에 되돌아간 적도 있으니 그것까지 치면 세 번째라 할 수 있었다. 백담사행은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여행 둘째 날,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비가 이리 오면 계곡에 물이 넘칠 텐데 그 절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위험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이라면 혹시 계곡물이 너무 불어 셔틀버스가 끊길까 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버스는 정상 운행 중이었다. 오히려 여전히 끄물끄물한 날씨 덕에 관광객이 적어 호젓하게 계곡을 즐길 수 있었다.
백담사 입구에서부터 주차장까지 거리는 7km 정도이다. 버스가 달리는 도로는 계곡을 따라 나 구불구불 나 있는데 원래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는 길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버스를 타고 절까지 올라 간 다음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것이다. 절에서 주차장까지는 거의 내리막이라 힘들지도 않고 길도 데크길이라 편한 데다가 계곡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일석삼조인 셈이었다.
내 계산은 정확했다. 그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경치였다. 호우가 지나간 계곡은 장관 그 자체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소리는 천둥 같았고 우레처럼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동안 여러 곳의 계곡을 다녔지만 이렇게 자연의 힘에 압도되기는 처음이었다. 계곡을 때리며 굽이치며 사납게 몰아치는 물 앞에서 홀린 듯 꼼짝을 할 수 없었다. 포효하며 휘몰아치는 물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멀리 데크 위에 서 있었지만 물의 힘이 느껴졌다. 저 파괴적인 힘은 무시무시했다. 저기에 휩쓸리면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름다웠다. 자연의 거대하고 거친 힘 앞에 인간은 단지 인간은 작고 작은 미물일 뿐이었다.
계곡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광대하고 웅장한 힘을 어떻게 인간이 만든 작은 렌즈 따위가 담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한참 모자란 것을 알면서도 물방울 하나, 소리 한 조각이라도 담기 위해 연신 폰을 들이댔다.
그날 백담사는 속세의 허물을 벗었다. 그때까지 백담사가 나에게 과거 정치, 군사 정권의 그림자였다면, 이제 ‘물의 절’이었다. 처음 이름 지어지고 지금 품은 이름 그대로 물이 많고 물이 아름다운 절. 백담사는 본연의 모습으로 나에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