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구산성지
구산성지는 하남에 있다. 강남 기준으로 도로 정체가 심하지 않다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성지들이 모두 서울 근교이긴 하지만 구산성지가 가장 접근성이 좋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너무 멀지 않아 자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의외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구산성지의 첫 느낌은 마치 요새 같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은 대부분 비어 있는 너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판석을 켜켜이 쌓아 올린 벽을 따라가면 성문처럼 생긴 입구가 나온다. 위로는 ‘하남시 유적 4호’라는 푯말이 보인다. 안쪽으로는 소나무가 심겨 있는 정원과 돌담이 보인다. 성벽 같은 담벼락에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흙과 나무의 풍경에 이내 아늑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성지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왼쪽으로 한국적 미를 한껏 드러내며 다정하게, 그러나 청아하게 서 계신 마리아상이 신자들을 맞이한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예수님 상이 한껏 팔을 벌린 채 서 계신다. 예수님 상 뒤쪽으로는 기와집 안채로 들어가는 마냥 솟을대문이 있고 그 너머로 성당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기와집처럼 보이는 성당은 흙과 나무로 지어져 있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성지 전체가 그런 느낌이다. 마치 시골 마을에 들어온 듯하다. 성지 주변의 높은 담은 마을을 구분하는 경계이고, 그 안에 과거 모습 그대로 간직한 신자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정겨운 돌담길, 옹기를 굽던 가마, 그리고 그 앞의 무덤 봉분까지. 성지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200년 전 신앙이 이곳에 뿌리내리던 때로 되돌아간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천주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신앙을 키워나가고 생활하고 발각되어 박해받고 끝내 순교까지 당했으나 신앙을 버리지 않고 지켜온 곳. 그 정신은 생생히 살아 있어 그 후손들은 3.1 운동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흙 한 줌, 풀 한 포기처럼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 땅, 우리 천주교 신앙의 선조들의 모습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