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 1호점이 섰던 곳

압구정 사는 이야기-압구정 사람들의 프라이드

by 크림동동


“압구정에 맥도널드 1호점이 선 것 알아?”

남편이 말했다. 그 표정엔 묘하게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남편은 압구정 출신이 아니다. 강남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어릴 때 강남으로 이사와 쭉 살아 결과적으로 강남 사람이 된 거다. 그러니까 강남 사람은 맞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서 여전히 압구정 사람은 아니다. 지금이야 주소지 상으로 압구정 사람은 되었지만 압구정이 자기가 나고 자란 동네도 아닌데 저렇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을 일이 뭐가 있는지 나는 이해가 잘 안 된다.


시댁은 남편이 이사 왔을 때의 주소지 그대로다. 그곳은 강남과 서초의 경계선으로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기도였다. 그곳은 시댁이 이사오기 전에 서울에 편입되었는데 그 후로도 서초구에 들어갔다가 강남구에 들어갔다가 하며 주소가 여러 번 바뀌었다. 지금은 강남구로 정착한 지 오래되어 서울로 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남편이 어릴 때만 해도 주변엔 주택과 공터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편이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곤 하던 골목길은 식당과 빌딩이 가득 찬 곳이 되었고, 남편의 어릴 적 친구들은 하나둘씩 모두 동네를 떠났다.


‘강남’ 하면 다 같은 강남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강남도 다 같은 강남이 아니다. 압구정이 틀리고 대치, 반포, 다 다르다. 강남 중에서도 압구정은 ‘찐 강남’으로 치는 분위기다. 사람들의 인식을 보면 강남 개발사를 알 수 있다. 한강 이남, 압구정에서 시작해 서서히 내려오는 모양새이다. 일례로 남편은 반포를 ‘신도시’라고 부를 때가 있다. 서울 시내 안에 있는데 어떻게 ‘신도시’냐고 물었더니 남편 어릴 때 반포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다는 것이다. 그런 땅을 어느 날 닦더니 아파트 단지가 잔뜩 늘어섰다고 했다. 길도 반듯반 듯, 아파트 단지도 반듯반듯, 자기들이 살던 동네와 틀렸다고 했다. 남편의 친구들은 그 새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갔고 남편과 동네 사람들은 그곳을 ‘신도시’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울 안에 ‘신도시’라는 개념이라니 상당히 신선했지만 당시 사람들 눈에서는 정말 반포가 요즘 신도시 같은 곳이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만큼 반포는 새 땅이었다. 그에 비해 압구정은 조선 시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동네였다.


‘압구정은 찐 부자들이 많아 아이들을 다 유학 보내고, 대치는 고소득 전문직이 많아 학원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압구정이든 대치든 반포든 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지만 여전히 압구정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부자가, 대치와 반포는 신흥 부자가 많다는 구분 짓기가 있다. 동네 분위기도 틀리다. 대치동에는 학원이 많고 압구정에는 유학원이 많긴 하다. 하지만 소득의 면에서 보자면 더 이상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압구정, 대치, 반포 어디든 부자가 많다. 요즘은 반포에 신고가를 경신하는 신축들이 들어서 옛 대장, 압구정의 자리를 넘보는 분위기다. 하루는 압구정에서 오래 산 동네 지인 어르신이 반포 주민이지만 재건축 기간 동안 잠시 살 아파트를 알아보기 위해 압구정 쪽으로 나온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이 ‘압구정도 살 만하네’라고 하더라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셨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집값이나 주민들의 소득 면에서 보면 이제 더 이상 압구정, 강남, 대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압구정에는 강남의 다른 동네에는 없는 게 있다. 바로 ‘첫 번째’였다는 프라이드다.


90년대는 압구정의 전성기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햄버거 매장, 미국 문화의 상징과 같은 맥도널드 1호점이 압구정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커피 전문점 1호인 ‘쟈뎅’도 압구정에 첫 번째 점포를 열었다. 거리는 새로운 것, 트렌디한 것을 쫓는 패션 피플로 넘쳤다. 압구정 패션 거리는 미국 베버리힐즈의 로데오 거리에서 이름을 따와 ‘압구정 로데오’로 불렸다. 신문에서는 압구정에서 비싼 차를 굴리며 흥청망청 돈을 쓰는 젊은 세대를 비난하는 글을 실었다. 사회는 이들을 ‘압구정 오렌지’라고 불렀다. 수많은 과일 중에 ‘오렌지’라는 서양 과일을 골랐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압구정 맥도널드.jpeg 출처: 헤럴드 경제 신문 사진

이제 압구정은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 젊음의 중심지는 강 건너편으로, 새롭게 고층 아파트가 선 곳으로 옮겨갔다. 유명 브랜드도 다른 곳에서 먼저 선 후 압구정으로 들어온다. 잠실, 반포, 여의도가 고급 복합 쇼핑몰로 새 단장을 할 동안 압구정은 90년대 그대로 낮은 상가 거리다. 힙한 감성이 깃든 작은 가게나 역사가 깃든 골목길도 없는 압구정의 현재 모습은 전성기였던 9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하지만 압구정 사람들은 여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표정에는 프라이드가 있다. ‘맥도널드 1호 매장이 선 곳’이란 자부심은 그들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그들의 자부심은 이해할 만하다. 시대는 변하고 새로운 것은 계속 나오지만 ‘첫 번째’는 오직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 어느 사진 책에서의 글귀처럼 ‘최초의 순간은 영원하다.’


남편의 뿌듯한 얼굴은 강남 변두리에 살던 자신이 동경하던 동네에 마침내 들어왔다는 자랑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단지 경제적 여건만이 아니라 역사와 자부심이 있는 ‘찐 강남’ 말이다. 나는 그런 남편의 자부심이 아직도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가 강남에 대한 동경을 가져보지 못한 지방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끝끝내 강남 사람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반쯤 외부인의 시선을 가지고 강남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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