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

압구정 사는 이야기-사람들

by 크림동동

아이가 어릴 때는 구축에서 살았다. 이 아파트로 오기 전에는 신축에 살았다. 그리고 다시 구축이다. 구축이라는 말도 사치인 재건축 바라기 아파트다. 이렇게 신축에도 구축에도 다 살아보니 둘의 차이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신축과 구축의 다른 점은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다. 건물 디자인, 층수, 조경, 수납공간, 커뮤니티 유무 등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람도 들어간다. 비단 사는 사람만이 아니다. 아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르다.


신축에 살 때는 사람들이 젊었다. 주민들은 신혼부부나 어린 자녀가 있는 가구가 많았다. 아파트 놀이터는 시끄러웠고 지상에는 자전거가 다녔다. 요즘은 저출산에 인구 고령화라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구축보다는 신축에서 아이들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파트 관리 시스템도 현대화되어 각 동 입구 대신 아파트 정문 옆에 크게 경비실을 하나 두고 거기서 들어오는 차량과 방문객을 한꺼번에 관리했다.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아파트와 계약된 보안 업체에서 나온 직원들이었는데 나이도 젊은 데다 복장도 제복에 조끼까지 차려입은 모습이 꼭 드라마에 나오는 경호원들 같았다. 개중에는 가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얼굴이 섞여 있을 때도 있어서 ‘의젓하다’, ‘멋있더라’는 수군거림이 주부 커뮤니티에 가끔 올라오기도 했다.


경비 외에 청소는 용역 회사가 담당했다. 간혹 미화원 아주머니와 마주치기는 했지만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집에 자잘하게 수리해야 할 일이 생기면 기계실에 연락을 하면 사람이 왔다. 하지만 한참 기다려야 했다. 늘 먼저 들어온 수리 요청이 많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려서 막상 기계실 직원이 와도 크게 도움이 된 적은 그다지 없었다. 이건 아파트 소관이 아니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직원들은 무뚝뚝했고 ‘아저씨’라는 점 이외에 크게 기억에 남는 바도 없었다.


신축에 살다가 재건축 바라기 아파트로 오니 환경 차이가 피부에 확 와닿았다. 아파트에 오니 입구의 경비실부터 나를 맞았다. 아이가 어릴 때 살던 아파트 입구에 있던 작고 네모난 콘크리트 방, 그 모습 그대로였다. 차이라면 그때 아파트 경비실은 너무 좁아서 폐소공포증이라도 걸릴 듯했는데 지금 아파트 경비실은 거기보다는 좀 더 넓다는 거였다. 지금의 경비실은 약간의 여유 공간에다 심지어 에어컨도 있었다. 과거의 그곳에서는 경비 아저씨가 여름이면 하루 종일 선풍기를 틀어놓았다. 그것도 부족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있던 모습이 기억났다. 이 정도의 차이도 발전이라면 발전인 걸까?


KakaoTalk_20260120_060314776_01.jpg 우리 동 경비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경비 아저씨’라는 말은 좀 이상하다. 예전의 구축이나 지금의 아파트나, 심지어 내가 어릴 때 아파트에 살던 기억을 더듬어봐도 ‘경비 아저씨’는 언제나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왜 ‘아저씨’라고 부르는 걸까? 단지 ‘아저씨’라는 호칭이 좀 더 친근해서 붙은 건지 그 이상의 사연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서기 시작했을 때 아파트 경비들은 진짜 아저씨였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아파트가 나이가 들면서 이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 할아버지가 된 거다. 하지만 호칭만은 처음 입에 붙은 그대로 아저씨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엉뚱한 추측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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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비 직원에서 경비 아저씨로의 변화 정도는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충분히 각오했던 바였다. 우리 아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었다는 실감이 확 났던 건 의외로 다른 쪽에서였다. 바로 미화원 아주머니였다.


우리 아파트에서 일하는 미화원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많다. 앞서 경비 아저씨란 호칭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우리 아파트 미화원 아주머니들이야말로 ‘미화원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처음 여기에 이사 왔을 때 봤던 미화원은 바싹 마른 몸매에 척 보기에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솔직히 제 한 몸 건사하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인상도 무서웠다. 오랜 궂은일 탓인지 얼굴에는 짜증이 박혀 있었다. 인사를 드려도 반갑게 맞아주기는커녕 투덜투덜 입에서 불만이 새어 나왔다. 사정이 이러니 나도 그분이 보이면 멀찌감치 돌아오거나 일부러 마주치는 일을 피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분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알고 보니 주민들과 갈등이 쌓여 그만두신 거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새 미화원을 구하지 못했다. 한두 명 새 얼굴이 보이긴 했지만 다들 몇 번 나오다 말고 그만두었다. 그 사이 우리 동 상태는 엉망이 되었다. 복도에는 먼지가 굴러다니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늘어졌다. 보다 못한 우리 동 경비 아저씨가 부탁을 드려서 옆 동 미화원 아주머니가 한두 번 청소를 하러 오셨다. 이분은 기존에 계시던 우리 동 아주머니보다 더 나이가 드신 분이었다. 몸집도 더 작고 마르고 허리가 굽은 데다 머리까지 쪽을 져서 꼭 시골 할머니 같았다. 그 연세, 그 몸에 어떻게 일을 하나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성질만은 카랑카랑해서 예전 아주머니 못지않았다. 오히려 예전 분보다 더 무서웠다. 저 기세로 일을 하시는구나 싶었다.

이렇게 미화원 시장에 온통 나이 드신 분들만 있는 사정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원체 궂은일을 하는 곳이라 젊은 사람들은 애초에 발을 디디지를 않는다. 남아 있는 건 나이 든 사람들밖에 없는데, 그나마 우리 아파트처럼 주민들 연령대가 높고 요구 사항도 불만도 많은 곳은 오려는 사람이 더더욱 적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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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원 시장만이 아니다. 아파트를 관리하는 기관실 직원들도 나이 많은 사람투성이다. 여기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우리 아파트처럼 너무 오래된 아파트는 단순히 기계를 아는 것을 넘어 이런 아파트를 관리해 본 경험이 필수다. 그런데 그런 경험자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는 모두 신축으로 바뀌고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거나 몸이 아파 더 이상 일하지를 못한다. 그나마 보수라도 많으면 괜찮을 텐데 보수도 적고 일은 많으니 지원자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일 수밖에 없다.


그럼 주민들이 합의해서 아파트 관리 직원들 급여를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주민들도 불만이 많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미 내는 관리비도 많은데 거기서 더 내라는 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의견은 급여를 올리는 것보다 새는 관리비를 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다. 직원들한테 가야 할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인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쉽게 누구 편을 들 수는 없지만, 문제는 이렇게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사이에 아파트는 더 낡아가고 일하는 사람은 더욱 없어지고 주민들 불만은 다시 쌓인다는 거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다행히 몇 달 뒤 새 미화원 아주머니가 구해졌다. 이번 분도 나이는 있었지만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주민을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셨다. 절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 역시 “안녕하세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연세에 일하시는 게 힘드시지 않냐고 여쭤봤더니 오히려 불러 주는 곳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했다.


재건축이 모든 것의 해답일 수 있다. 하지만 재건축은 원한다고 앞당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때까지 모든 것은 기다림의 순간이다. 그러니 웃으며 살아야겠다. 같은 일도 다르게 보면 다른 일이 된다. 짜증과 불만이 가득한 얼굴 대신 밝은 얼굴에서 나오는 “안녕하세요” 한마디가 아침을 가볍게 만든다. 우리 아파트는 아직 운이 좋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도 아직 운이 좋다. 새삼 미화원 아주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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