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나무가 있는 아파트

압구정 사는 이야기-과일나무

by 크림동동

내 생각에 요즘 잘 나가는 신축 대단지 아파트와 우리 아파트처럼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차이점 중 하나는 조경이다. 신축 단지에 가 보면 조경을 어찌나 잘해뒀는지 어지간한 공원 부럽지 않다. 동 사이 간격도 널찍하고 아파트 군데군데 널찍한 공간이 있어 거기다가 분수도 설치하고 정자도 있고 연못에, 구름다리에, 없는 게 없다. 오죽하면 소문을 듣고 외부인들이 일부러 구경을 갈 정도다. 거기 사는 지인은 주말에도 다른 곳으로 나들이 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아파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는 반대다. 조경이랄 게 없다. 동 사이가 좁은 것도 아니고 나무가 어리거나 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우리 아파트 사이에는 공터 같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놀이터도 있고 나무도 많다. 그래도 이상하게 좋다는 생각보다는 지저분하고 잘 정돈되지 않았다는 느낌만 준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에 들어가면 언제나 야생의 숲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나무는 오래되어 키가 크지만 가지는 제멋대로 뻗어 있고 바닥에 풀은 무성하다. 이름 모를 잡초가 여기저기 자란다. 여름에는 모기가 극성이고 겨울에는 낙엽이 수북하다. 관리사무소에서 주기적으로 수목 관리를 하지만 아무래도 아파트가 너무 오래되어 낡은 티를 감추지 못해 그런 것 같다. 그나마 작년에 경비 아저씨들이 모두 달라붙어 ‘수목 정리’라는 것을 해서 지나치게 뻗은 관목은 좀 깔끔해졌다. 하지만 큰 나무들 가지까지 사정없이 잘라내어 버렸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자른 것이겠지만 갑자기 앙상해져 버린 나무들은 전보다 더 볼품없어 보였다.


KakaoTalk_20260112_113138195.jpg 겨울이라 잎이 다 떨어져 더욱 볼품 없어 보이는 나무들

그래도 나무는 나무라서 한겨울을 제외하고 잎이 있을 때는 좀 낫다. 봄에 꽃이 필 때는 제법 화사하고, 여름에 잎이 무성해 나무 밑으로 들어가면 확실히 시원하다. 아스팔트 바닥만 딛다가 나무가 있는 흙바닥을 밟으면 폭신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아파트 나무들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계절은 가을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과일나무가 많다. 누가 왜 심었는지는 모른다. 예전에는 아파트에도 과일나무를 예사로 심었나 보다. 종류도 나름 많다. 감나무, 대추나무, 심지어 모과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과일나무도 있다. 그중 수가 제일 많은 건 감나무다. 시골 초가집도 아닌데, 여기저기 감나무다. 감이 열리기도 어찌나 많이 열리는지 가을이 되면 진짜 가지마다 주렁주렁이다. 커다란 감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는 걸 보면 어쩐지 마음도 풍요롭고 가을이 왔다는 기분이 진하게 든다. 평소에는 낡고 불편한 것 투성이라고 투덜대느라 바쁘지만 감이 열리는 계절에는 우리 아파트도 조금은 예뻐 보인다.


오래된 아파트와 감나무는 어울린다. 옛날 시골에서는 감나무를 많이 심었다. 감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뱀을 쫓는다는 속설도 있어서 집집마다 장독대 옆에 감나무를 한 그루씩 키웠다고 한다. 그렇게 자란 감은 단감, 홍시, 곶감이 되어 아이들 간식이 되고 긴긴 겨울 단조로운 입을 달래줄 군것질거리가 되어 주었다. 열매뿐만이 아니었다. 감잎은 달여 차로도 끓여 마셨고 줄기는 단단해서 귀한 가구의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이래저래 버릴 것 하나 없는 나무였던 셈이다. 감나무가 있는 풍경은 너무 익숙해서 한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일부다. 지금도 서울의 오래된 동네 주택가에서는 감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대추나무도 시골에서 흔한 나무다. 하지만 요즘 대추나무 보기란 감나무만큼 쉽지는 않다. 말하자면 창피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추라고는 빨갛게 말린 쪼글쪼글한 건대추밖에 몰랐다. 파란 생대추가 있다는 것도, 그걸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달다는 것도 몰랐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한테 대추란 과일이라기보다는 ‘제사 음식’이나 ‘약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첫 해 가을, 아파트를 한 바퀴 돌다가 옆동 화단에 열매가 잔뜩 열려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대추나무였다. 변두리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파랗고 통통한 대추가 열린 나무를 보니 신기했다. 대추나무는 잎이 크거나 풍성하지는 않아 볼품은 없었다. 하지만 열매는 많이 열렸다. 대추가 아직 파랄 때는 몰랐는데, 이윽고 익어서 색이 들기 시작하자 나무 한가득 열린 것이 가지와 잎 전체에 우다다다 점을 찍은 듯했다. 나무 밑에는 익어서 떨어진 대추가 가득했다. 그 맛은 어떨까 궁금했지만 차마 넣어보지는 못했다. 아파트 화단에 심어둔 게 맛있기야 하겠나 싶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땅에 떨어진 걸 한 알 주워 우리 집 앵무새에게 줘봤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계하던 새는 잠시 후 다가와 한두 번 콕콕 부리로 건드리더니 이내 신나게 열매를 쪼기 시작했다. 잘 먹는 걸 보니 단 모양이었다. 역시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법이었다.


모과나무도 산책하다가 발견했다. 아파트 뒤 주차장 쪽에 키 큰 나무가 있는데 문득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주먹만 하고 울퉁불퉁한 열매를 드문드문 달고 있는 나무가 보였다. 혹시 싶었는데 가 보니 모과였다. 모과는 먹을 순 없지만 향이 참 좋다. 차 안에 두면 향이 가득 찬다. 감이나 대추는 혹시 맛이 떫거나 없으면 어쩌나 공해에 찌든 거면 어쩌나 싶어 열매에 손 대기가 망설여졌지만 모과는 향을 즐기는 게 위주라서 오히려 욕심이 났다. 손에 닿으면 하나 따고 싶었지만 죄다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딸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함부로 손을 대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 모과가 달려 있는 걸 볼 때마다 ‘저건 향이 참 좋은데...’ 했는데 어느 날 보니 하나도 없었다. 관리실에서 다 따 간 건지 다른 사람이 따 간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내심 허전했다.


이렇게 감나무에 감이 열린 걸 보고 대추 떨어진 걸 줍고 모과 익어가는 향을 맡으니 마치 옛날로 되돌아간 같았다. 나는 과거 예찬주의자는 아니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지나치게 편리해진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불안하다. 마트에 가면 사시사철 싱싱한 과일이 있는 세상에서 요즘 아이들은 ‘제철’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며 산다. 원래 5월이 제철인 딸기는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내어 11월부터 등장한다. 참외와 수박도 1월부터 구경할 수 있다. 다 큰 대학생인 아들한테도 과일 하나를 집으며 ‘이게 지금 제철이다’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일이 부지기수다. ‘제철’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다는 거다. 과일은 양반이다. 봄에는 조개가, 가을에는 큰 새우인 대하가 제철이라고 하면 더욱 어리둥절한 얼굴이 된다. 그래도 아들은 좀 나은 편이다. 쌀이 벼가 아니라 ‘쌀나무’에서 나는 걸로 아는 애들도 있다고 한다.


제철이 사라진 세상에 사는 건 무섭다. 인간의 기술이 단지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작물의 계절을 뒤섞어 놓았다. 그렇게 흐트러진 자연의 질서는 천천히 되돌아와 다시 인간 생활을 묵직하게 강타하는 중이다. 현재의 기후 위기는 단순히 극심한 날씨 변화로 옷을 더 입고 덜 입고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한반도의 기온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원래 나던 산지에서 작물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나오는 수확량은 감소해 소비자의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도 없다. 물가는 오르고 먹거리는 사라진다. 그야말로 우리 입에 들어가는 것부터 걱정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애초에 편리하게 살고자 한 인간이 뿌린 씨앗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기후 위기를 외치지만 이를 어떻게 되돌릴까? 거창하게 각국 정상들의 의견 불일치, 정치인들의 자기 잇속에 따른 말 바꾸기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미 사시사철 나오는 계절 잊은 식재료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입맛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계절의 순리에 따라 열매를 맺고 익어가고 떨어지는 모습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대추가 후드득 떨어지고 모과향이 짙어지면서 가을이 깊어지고 계절이 지나가는 걸 느꼈다.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의외의 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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