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새로운 맛이 궁금하다
겨울 포항 별미 하면 과메기다.
과메기는 냉동 상태의 청어나 꽁치를 겨우내 바닷바람에 일주일 정도 말려 반건조 상태로 만든 거다.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다. 하지만 청어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가 ‘과메기’라고 할 때는 대개 꽁치 과메기를 말하는 거다. 요즘은 청어 어획량이 좀 늘어서 청어 과메기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청어나 꽁치나 기름기 많은 생선인 건 매한가지라 냄새가 강하다. 그냥 두어도 비리고 냄새가 강한 생선을 반건조 상태로 만들어 냄새는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처음 과메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냄새다. 오죽했으면 홍어와 더불어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대표 주자라고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홍어와 비교하기에는 그 정도가 훨씬 덜하다. 제철인 11월에서 2월, 즉 겨울에는 그나마도 훨씬 순해진다. 만약 과메기를 한 번 먹어 볼 생각이 있다면 이때가 적기다.
그래서 과메기를 한 번 먹어 보기로 했다.
나는 평생 과메기라고는 입도 대지 않던 사람이다. 이제껏 입은커녕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번 포항길에는 과메기를 한 번 먹어 볼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그런 건지 단순 호기심인 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건 과메기를 시도해 볼 마음이 들었다는 거다. 마침 겨울이고 겨울에는 맛이 순해진다니 거기에 용기를 얻은 탓도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옆에서 계속 딴지를 걸었다. 겁을 주려는 건지 진짜 걱정을 하는 건지 계속 괜찮겠냐며 비리다고 엄포를 놓았다. 원래 걱정이 일인 사람이라 개의치 않았지만, 소리가 끊이지 않길래 한마디 했다. “한 입 먹어 보고 정 못 먹겠으면 앞으로 안 먹으면 되지. 독약을 먹는 것도 아닌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랬더니 남편 말이 쑥 들어갔다.
우리가 향한 곳은 죽도 시장이었다. 포항에서 가장 크고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시장이니 당연히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다. 과메기가 제철이라 시장 여기저기서 과메기를 팔았다.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어디서 살지 고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실은 고를 필요도 없었다. 어디서 사든 가격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가격은 야채까지 들어 있는 2인 세트가 2만 원이었다. 다 먹기 좋게 포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다가 물어본 상인이 찍어 준 가게에서 과메기 2인 세트를 샀다. 집이 아니라 여기서 먹고 가고 싶다고 하자 가게 아주머니는 건너편 식당에 가서라고 일러 주었다. 약간의 상차림비만 주면 먹을 수 있다는 거였다. 노량진 시장에서 회를 떠 위층 식당에 가지고 올라가 먹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일단 자리를 잡고 나서 포장된 과메기를 풀었다. 한 상 가득 과메기와 야채를 늘어놓고 식당 이모님께 가위를 빌려 과메기도 먹기 좋게 잘랐다. 그러고 나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과메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
인터넷 검색을 하면 과메기 먹는 법이 많이 올라와 있다. 대개 비슷하다. 하지만 과메기를 두고 앉으니 구체적인 사항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본능대로 먹었다. 과메기를 먼저 한 점 입에 넣었다.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본연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였다. 그다음 그리고는 하나씩 하나씩 야채 혹은 미역을 곁들여 먹어 봤다. 이렇게 하면서 내 입에 가장 맞는 조합을 찾아나갔다.
처음 먹는 과메기 맛은, 뭐랄까, ‘먹을 만했다!’ 생각보다 비리지 않았다. 아니, 들은 대로 겨울 과메기라 냄새가 덜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냄새가 아예 없는 것은 건 아니었다. 무언가 찐한 뒷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뭔가 알 듯한 맛이었다. 내가 아는 맛 중에 가장 가까운 맛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보니 ‘마른 멸치 냄새’, 그것도 냉장고 안에 보관하지 않고 밖에 두어서 냄새가 강하게 나는 마른 멸치 냄새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한 점,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았을 때 그랬을 뿐, 다른 야채, 미역 등과 함께 먹으니 곧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면 그만큼 우리 코가 적응력이 강한 걸 수도 있다. 냄새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식감이었다. 반건조 생선을 물컹하면서도 쫄깃한 감촉이 낯설었다. 평소 반건조 식품을 잘 먹지 않기에 더 그렇기도 했다. 만약 혀가 좀 더 예민했다면 나도 모르게 내뱉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것도 첫 입, 아무것도 없이 과메기만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다른 것과 함께 먹다 보니 이 역시 곧 익숙해졌다.
상을 차릴 때부터 소주를 한 병 시켰다. 과메기는 소주와 잘 어울린다는 이유였다. 내가 생각보다 잘 먹자 남편은 안심한 얼굴을 하더니 맥주 한 병을 추가했다. 그렇게, 나는 소주, 남편은 소맥을 말아먹었다. 밖에서 둘이 술상을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남편과 수다 떠는 맛은 좋았다. 심각한 이야기, 심각하지 않은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상이 텅 비었다. 처음 2인 세트를 살 때는 과메기 양이 충분할까 했는데 야채와 함께 먹으니 둘 다 배가 불렀다. 심지어 야채는 다 먹지도 못했다. 사실 그 정도로도 충분했는데 평소 뜨끈한 국물을 찾는 남편을 생각해서 매운탕도 하나 주문했다. 이건 실수였다. 그 매운탕의 장점을 꼽자면 5,000원이라는 가격뿐이었다. 맛이라고 할 건 하나도 없었고 그냥 추운 날 뜨거운 국물을 좀 먹었다는 데 만족해야 했던 매운탕이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먹은 건 좋았다. 과메기 맛 자체는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먹든 식당에서 먹든 똑같았겠지만 사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먹는 흥분은 포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법이다.
처음 먹어 본 과메기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 또 먹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에 올라가도 한 번 먹어보겠다고 하니 남편이 지레 손사래를 쳤다. 서울에서 먹으면 비린내가 더 심하다는 거다. 그건 또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는 나도 ‘과메기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나이가 들어 입맛이 변했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보통 이렇게 말할 때는 노화로 소화 기능이 떨어지거나 치아가 약해져서 예전에 먹던 걸 못 먹고 건강에 좋은 것, 소화 잘 되는 것을 찾게 되면서, 즉 '신체의 노화'를 느낄 때이다. 물론 씹고 소화시키는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걸 느끼는 건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그 대신 그 자리를 대신할 부드러운 맛, 자연 본연의 맛이라는 새로운 맛을 궁금해하고 찾는 건 좋은 일이다. 여전히 호기심이 살아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진정한 노화는 신체에서 오지 않는다고 한다. 더 이상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때 노화가 시작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은 뒤집어 이야기한다면 계속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을 느끼는 한 정신은 청춘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나이 든 사람을 ‘노인’이라고 한 무리로 퉁쳐서 말하지만 노인이라고 다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80이 넘어도 눈빛이 빛난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어 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겨우 50이 넘었는데도 주변에 관심이 없고 매사 무력하다. 과연 어느 쪽이 ‘노인’에 더 가까울까?
나 역시 처음에는 내 입맛이 예전과 달라진 것이 슬펐다. 더 이상 많이 먹지도, 차거나 매운 걸 먹지도 못하는 게 서러웠다. 한마디로 먹방 유튜브들이 쌓아 놓고 먹는 ‘맛있는’ 걸 더 이상 먹지 못하고 소화를 못 시킨다는 사실이 ‘늙음’의 신호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더 이상 20대 시절처럼 먹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그때는 모르던 새로운 맛의 세계를 발견하고 있다. 제철 나물의 슴슴한 맛을 알고 그때는 먹지 않던 생선, 고기의 담백하고 정직한 맛을 본다. 소금 치지 않은 재료 본연의 섬세한 맛을 느낀다. 다양한 부드러운 조리법의 차이를 음미한다.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자극적으로 폭발하는 맛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지만 대신 더 깊고 넓은 맛의 세계를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과메기를 즐긴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아니, 그전에 과메기를 먹어 볼 생각이 섰다는 게 기쁘다. 나는 아직 새로운 것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있구나. 내 몸은 나이를 먹어 가도 내 정신은 여전히 젊고 생생하다. 늙음은 아직 저 편에 있다. 그래서 나는 맛의 탐구를 계속할 거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