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김치 담근 이야기

이제 겨우 진짜 주부가 된 것 같다

by 크림동동

집에 김치가 똑 떨어졌다. 급히 만든 무말랭이, 시장에서 사 온 고들빼기로 몇 주를 연명하다가 결국 어제 시장으로 출동했다. 친정 엄마에게서 받아 온 맛있는 김장 김치는 진작에 안녕을 고했다. 진작에 남편의 아쉬움을 가득 안고.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리면 금방이라도 김치를 내어주시겠지만, 문제는 김치만 주시는 것도 아니고 설령 김치만 주신다 해도 먹을 만큼만 주실 리도 없다는 거다. 틀림없이 주렁주렁 잔뜩 딸려 올 텐데 그러면 감당이 불감당이다. 김치를 주문해 먹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은 김치를 돈 주고 사 먹는 게 양심에 찔린다. 고상하게 주부의 자존심 운운하면 좋겠는데,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 온 김치로 찌개를 끓이고 국을 하자니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애초 양도 얼마 안 되는데 그걸로 이것저것 요리를 하려니 금방 없어진다. 그래서 참고 안 먹게 된다. 희한한 건 그렇게 아껴 먹는데도 금방 없어진다는 거다. 처음부터 양이 적은 건지 아니면 생각보다 김치를 많이 먹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결론은? 직접 김치를 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요리 솜씨가 젬병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막 결혼했을 무렵에는 진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국도, 찌개도 내가 만들면 무언가 창의적인 맛이 났다. 친정 아버지는 내가 만든 북어국을 보고 '이게 국이냐 찌개냐' 하셨고 시어머니는 내 김치 찌개를 맛보시고는 그래도 '시원하다'고 애써 칭찬해주셨다. 그런 사정이었으니 당연히 김치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다. 시어머니 김치만 줄창 받아먹었다. 그러다가 덜컥 홍콩으로 주재원을 가게 되었다. 해외에 나갔더니 늘상 먹던 김치가 귀하신 몸이 되었다. 사 먹기도 비싸고 한국에서 날아오는 걸 먹자니 아까워 이것저것 팍팍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다. 할수 없이 조금씩 조금씩 김치에 도전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 만든 김치를 잊을 수가 없다. 홍콩에서였는데 시장에 나가 배추를 한 포기 사다가 레시피를 보고 얼기설기 담궜다. 다 만들고 나니 그럴 듯해 보여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홍콩 배추는 한국 배추와 모양만 비슷하지, 크기도 작고 물도 많이 생기고 쉽게 무른다는 걸. 한마디로 한국 배추에 비해 여러모로 맛이 없었다. 게다가 처음이라 딱 기본적인 소금, 고춧가루, 멸치액만 넣었다. 그랬으니 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남편과 아들은 ‘대단하다’,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면서도 ‘맛있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뒤, 어느날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더니 홍콩 동료가 우리집 김치를 좀 먹었으면 한다는 거였다. 당시 홍콩은 아직 사스(SARS)의 기억이 생생하던 때였다. 사스가 퍼졌을 때 한국만이 환자가 적었는데 그 이유가 한국 김치에 들어있는 마늘과 유산균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졌었다. 그 이후 한국 김치 인기가 올라 마트에 가면 비싸긴 해도 김치를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의 동료는 그런 김치가 아닌 ‘한국 사람이 직접 담근 진짜 김치’를 한번 맛보고 싶다는 거였다. 마침 시어머니가 보내 주신 김치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귀한 김치를 나누어 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대신 내가 만든 김치라도 괜찮다면 좀 줄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반색을 하며 충분하다고 했다. 작은 병에 담아 남편한테 줄 때는 솔직히 양심에 찔렸다. 그래서 그 동료에게 처음 담근 거라고, 맛은 기대하지 말라고 말해 주라고 몇번이나 신신당부했다. 남편은 괜찮다를 연발하며 그 김치를 가지고 출근했다. 그 이후 그 동료에게 두번 다시 김치 부탁을 들은 일은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일취월장이다. 아직도 잘 담근다는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석박지, 동치미, 무생채, 봄동 겉절이 등, 김치 형제 정도는 뚝딱이다. 배추 김치도 알배기 배추로는 몇 번 시도해 봤다. 배추 크기가 작아 그런지 걱정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맛도 제법 괜찮았다. 이젠 제법 배짱을 부리며 시어머니 김치를 튕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넘지 못한 산이 있었다. 바로 포기 김치 담그기다.


사실 일반적으로 ‘김치를 담근다’고 하면 떠올리는 게 바로 이 포기 김치 담그는 모습이다.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큰 배추를 반으로 썩 갈라 소금에 팍팍 치고 벌건 양념으로 무치는 김치. 그게 우리 기억 속 김장이고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다. 그걸 못하면서 내가 진짜 '김치를 만든다'고 할 수 있을까? 비단 김치만이 아니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다 그랬다. 한식의 기본인 나물 반찬은 아직도 어려워 쩔쩔 매면서 한그릇 일품 요리는 척척 해냈다. 일품요리가 쉬워서만은 아니었다. 기교를 부릴 여지가 많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이런 건 이래야 한다는 맛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만 해도 잘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본 반찬은 그렇지 않았다. 도라지 나물, 고사리 나물, 멸치 볶음, 이런 건 누구나 먹어오고, 주부라면 누구나 만들 줄 알았다. 그래서 제대로 하지 못한 건 단번에 표가 났다. 그렇지만 내가 나물을 볶으면 물이 생기거나 짜거나 싱거웠다. 멸치볶음은 딱딱해졌다. 쉽지만 쉽지 않은 것, 그게 바로 기본 반찬과 김치였다. 내가 아직 김치와 나물을 어려워하고 피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여전히 주부 노릇을 하면서도 기본을 제대로 배우는 건 겁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기회에 한번 해 보기로.

경동 시장에 가서 배추를 샀다. 고작 한 통인데도 엄청나게 크고 무거웠다. 해남 배추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그 '해남 배추'라니. 나도 이 배추를 가지고 김치를 담근다는 생각에 나름 감격했다. 하지만 감격은 거기까지, 배추를 쪼개고 소금에 절이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소금에 절이는 게 문제였다. 둘이 사는 살림이라 큰 통이 없어서 4쪽으로 나눈 배추를 두 통에 나누어 담고 소금을 뿌렸는데 통이 작아 배추가 푹 잠기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겉의 두꺼운 잎이 숨이 죽지를 않았다. 밤새 주방에 가서 배추를 뒤적였지만 마찬가지였다. 아침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져 소금을 뿌리고 또 뿌렸다. 행여 뻣뻣한 김치를 먹게 되면 어쩌나, 소금에 덜 절여저서 맛 없거나 빨리 쉬게 되면 어쩌나 싶어 소금으로 잎을 문질렀다.


과유불급. 그렇게 소금을 넣었으니 김치가 짜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김치 첫 맛을 본 남편 얼굴은 미묘한 침묵만 흘렀다. 그러더니 잠시 후 입을 열어 ‘괜찮은데’ 했다. 안심하려던 찰나 남편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배추가 좀 짜다?'. 그리고선 내 눈치를 보며 한마디 더 얹었다. '많이 짜.'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래?' 했더니 용기가 났던지 그때부터는 '양념이 달다’, 톡 쏘는 맛이 있는데 이게 뭐냐? 혹시 사이다 넣었느냐?'하며 줄줄 말을 뱉어내었다. 사이다 이상은 더 들어줄 수가 없어서 '사이다는 무슨 사이다? 사과와 양파를 갈아 넣은 거다'고 쏘아 붙이고는 서둘러 남편을 출근시켜 버렀다. 그리곤 냉장고 안의 양파를 몽땅 꺼내 숭덩숭덩 썰어서 김치에 넣었다. 양파가 배추의 짠맛을 빨아들여 주기를 바라며. 저녁에 퇴근한 남편은 수육과 김치를 먹으며 ‘이제 안 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짰던 김치를 어떻게 이렇게 안 짜게 만들었냐며 놀라워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첫 김치는 다행히 먹을 만한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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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숙제를 끝낸 느낌이다. 후련하다. 당분간은 김치를 만들진 않을 것 같다. 여름까지 버티다가 그때 김치가 떨어지면 이제는 다른 김치를 사 먹어볼까 싶기도 하다. 이제 나도 김치를 만들 줄 아니 다른 김치에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긴 기분이다. 세상사가 다 그런 것 같다. 내것이 확실할 때 다른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긴다. 거꾸로 말하면 나에 대해 자신이 없을수록 주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거다. 잘 하든, 못 하든 이제 나도 김치를 담글 수 있다. 그 자신감이 중요하다.


김치를 담그며 이렇게 인생 공부를 할 줄은 몰랐다. 역시 기본이 중요하다. 이제 겨우 진짜 주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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