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 백송
아들이 인턴 학기를 끝내고 드디어 집에 왔다.
다음 주면 교환 학생 일정 때문에 다시 나가야 해서 아쉽지만, 잠깐이라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시간이 짧은 만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음식에 굶주린 아들을 위해 성탄절 식사 장소를 열심히 찾아봤다.
영국으로 교환 학생 가기 전에 좋은 식당에서 고기나 한식을 먹고 싶다는 아들의 요청에 따라, 내 취향인 뷔페는 일단 접어두고(어차피 예약도 안 되고 비싸기도 너무 비싸다), 거리, 평점, 분위기, 가격 등등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결정한 곳은 청담 백송.
네이버 및 카카오 맵 평점도 좋고, 거리도 마음먹으면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다가 분위기도 고급스러웠다. 고기도 직접 구워주는 데다가 특히 '240 세트'라는 메뉴가 있는데 1인당 115,000원에 여러 부위를 골고루 즐길 수 있어 안성맞춤일 듯했다.
성탄절에 고깃집이라니 조금 안 맞는 조합 같았지만 먹고 싶다는 요청이 있으니 이곳으로 결정하고 시간은 성탄절 낮 12시로 예약했다. 네이버로 예약 가능하고 따로 예약금은 필요 없어서 좋았다.
12시보다 15분 정도 빨리 도착해서 입장했다.
점심치고는 살짝 이른 시간에 예약해서인지 시간을 맞추지 않았어도 앉을 수 있었다.
메뉴를 살짝 고민하다가 '240 세트' 3인으로 주문했다.
1인당 115,000원이니 3인이면 345,000원으로 솔직히 꽤 부담스럽긴 했지만, 처음 생각했던 대로 호텔 뷔페를 갔다면 이 정도 가격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괜찮은 가격으로 느껴졌다.
주문하면 곧 4가지 종류의 고기 곁들임 소스와 소금, 그리고 밑반찬이 놓인다.
서버분은 파김치 맛이 좋다며 권했지만, 파김치보다는 샐러리 장아찌와 겉절이가 맛있었다. 샐러리 장아찌는 샐러리 특유의 향은 약하고 상큼해서 먹기 편했고(그래도 우리 아들은 입에도 못 댔다.) 겉절이는 코앞에서 바로 버무려서 주기에 더욱 신선했다. 그리고 양념도 가벼워 입맛을 돋구었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초딩 입맛이기도 한 아들은 옥수수 샐러드를 열심히 먹었다. 옥수수 샐러드도 일반 옥수수 샐러드와는 달라서 옥수수보다는 양배추 등이 씹혔는데 솔직히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들을 이것저것 집어먹고 있으려니 서비스로 주는 육사시미가 먼저 들어왔다. 육사시미는 처음이지만 색깔이 신선해 보인다. 서버분이 특별 소스와 함께 먹어야 한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다. 기대반 호기심 반으로 소스를 위에 올리고 육사시미를 입에 넣어봤다. 그 맛은?
다들 얼굴이 펴진다.
특히 소스 맛이 환상적이었다. 아들은 계속 소스에 고기를 찍어먹었다. 나 역시도 소스 비법을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아들과 나는 나중에 소스 그릇까지 싹싹 다 비웠다.
내친 김에 남편이 또 다른 서비스인 새우 성게알 감태를 가져다가 입에 넣으려고 하자 서버분이 제지하셨다.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보통 등심을 구워 고기를 싸서 먹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은 젓가락을 거두고 잠시 참기로 했다.
곧 불이 들어오고 무쇠 철판 2겹이 놓인다. 그리고 서버분이 고기를 구워 주신다. 직접 고기를 굽지 않고 편히 맛을 즐기기만 해도 되어서 좋았다.
라드로 기름칠을 하고 드디어 고기를 굽는다.
'치이익~'
고기 구워지는 소리가 좋다. 남편은 집에서 고기를 구우면 항상 불이 약하다는 둥 제대로 굽지 못하다는 둥 잔소리가 많았는데 오늘은 제대로 고운 고기를 먹게 되었다.
다 구워진 고기는 감자와 표고버섯 위에 올려놓고 각자 개인 접시에 하나씩 직접 담아 주시기도 한다.
첫 번째 순서는 안심.
이 맛이지, 안심은!
소금에도 찍어 먹어보고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올려도 먹어봤다.
가족 모두 얼굴이 발그레하게 녹아내린다.
음~ 좋아.
두 번째는 등심.
확실히 안심보다는 덜 부드럽다.
씹는 맛이 있다.
그래도 적당히 기름지고 익숙한 맛이 좋다.
이번엔 홀그레인 머스터드랑 와사비를 각각 올려서 맛을 봤다.
남편은 소금이 가장 조합이 좋다며 소금을 주로 뿌려 먹었다.
서버분이 등심을 새우 성게알 감태쌈 위에 올려주셨다. 쌈을 싸서 입에 넣어봤다.
솔직히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니다. 성게알은 처음이었지만 고기의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크림처럼 감싸주는 느낌이다. 부드러움과 부드러움의 만남.
맛의 새로운 조합에 다들 즐거운 표정이다.
세 번째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안창살, 새우살, 살치살 등이 나왔다.
귀한 새우살을 먹을 때에는 맛을 좀 더 기억에 남겨보려고 혀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안창살도 살치살도 맛있었다.
그 외에 꽈리고추를 구워 주시기도 하고 마늘도 제공된다. 고기 사이의 쉬는 시간 같은 느낌이다.
유일하게 잘 모르겠다 싶은 게 꽈리고추 구이였다. 차라리 파가 낫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 본다.
다 먹고 나서는 육전, 양념 새우 숯불 구이와 짜파게티까지 서빙된다.
난 배가 너무 불러 육전은 먹지 않았지만, 남편과 아들 말로는 이날 제일 별로였던 것이 육전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신선한 고기 맛을 한껏 즐기다가 갑자기 육전이니 맛이 덜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제일 마지막에는 사과, 키위, 케일을 갈아 만든 '케일 주스'가 제공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테이블에서 일어서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카운터에 서서 케일 주스를 마셨다.(그래서 사진이 없다.) 초록빛 색깔이나 '케일'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고기로 느끼해진 입과 뱃속을 개운하고 상큼하게 마무리해주는 후식이었다.
이렇게 세트에 포함된 코스를 다 먹으면 어지간한 뷔페에 간 것보다 배가 부르다.
세트 이름이 '240'인 건 제공되는 고기의 총 양이 240g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240g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는 배가 너무 불러 아쉬울 지경이었다. 아쉬운 이유는 음식은 너무 맛있고 계속 먹고는 싶은데 뱃속 사정이 허락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남편은 '콜키지 프리'인데 술을 가져올 걸 그랬다며 또 다른 아쉬움을 내비쳤다.
대낮인데다가 저녁 약속도 또 있어 끝내 술은 시키지 않았지만 정말 술과 함께라면 환상적인 조합일 듯했다.
단, 저녁에 술과 함께 240 세트를 먹는다면 과식은 따 놓은 당상이다.
다음 날 체중계는 보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
역시 우리 가족은 의지의 한국인!
다들 계속 '배부르다. 배가 너무 부르다. 배가 불러 죽겠다.' 하면서도 결국 파김치를 비롯한 모든 밑반찬을 리필까지 시켜가며 싹싹 비웠다.
성탄절에 고기집이라니 이색 조합이라고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다들 너무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아들을 만나 뱃속도 마음도 충만한 성탄절 가족 식사였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