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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Apr 17. 2020

첫 비행의 불시착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


 얼마 전까지 열광하며 봤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손예진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비행을 하다가 북한 경계선으로 불시착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거기서 현빈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나도 패러글라이딩을 해 본 사람이다. 천지도 모르고 날뛰던 대학교 1학년 시절에 패러글라이딩 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단독 비행을 꿈꾸며 들어간 동아리였다. 그런데 동아리라는 게 늘 그렇듯이 재밌는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면 놀기 바빠서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나마 다른 동아리와 조금 달랐다고 할 수 있었던 건 비행을 하러 산으로 가고 비행 장비들을 싣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전체 동아리들 중에 우리 동아리만 동방 차 (봉고)가 있었다. 그래서 선배들 비행을 따라다니며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많이 다녔고 술도 마셨다. 그렇게 반년 정도 비행 연습은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명색이 패러글라이딩 동아리에 속한 몸인데 한 번은 날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연습에 돌입했다.


 빈 운동장에서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를 하다가 기체를 들어 올리는 연습이 다였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맞바람을 맞으며 기공에 공기를 넣어 기체를 들어 올려야 하는 일이라 생각보다 저항이 커서 바람에 딸려가 넘어지기 바빴다. 그렇게 며칠을 연습하고 능숙한 선배의 비행 가능 판단하에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산으로 올랐다.


 신입생이었던 나는 당연히 개인 기체가 없었고 공용으로 사용하는 기체도 수량이 넉넉하지 않아 다른 선배의 기체를 빌려 타기로 되었다. 먼저 뛰어 첫 비행을 마친 동기들의 도착을 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체크해서 적합한 타이밍에 뛰어야 했기에 차례가 왔다고 바로 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다림도 비행의 과정이었다.  


 드디어 내가 뛸 타이밍이 왔고 산 능선에서 절벽으로 뛰기 시작했다. 무거운 기체가 바람을 맞으며 끌려 올라왔고 뒤에서 선배들의 계속 뛰어, 뛰어, 소리를 들으며 냅다 달렸다. 절벽으로 가기도 전에 기체가 펴 올라가며 다리가 달랑 들렸고 동시에 하네스 깊숙이 엉덩이를 집어넣어 제대로 앉았다. 그렇게 처음 하늘에 날아올랐다.


 하늘 위에서 본 발 밑의 세상은 작은 레고 마을이었다. 나는 그 평화로운 마을에 침입한 거인이 되어 여기저기 S자로 휘젓고 다녔고 딱 좋은 온도의 바람이 온몸을 감싸서 보호막이라도 된 듯 긴장감도 사라져 갔다. 그래서였을까. 코 앞에 착륙 지점을 두고 갑자기 뚝 떨어진 기압에 넘어야 할 기찻길을 넘지 못하고 전깃줄에 걸려버린 것이다.  


  첫 비행의 불시착이었다. 대롱대롱 달린 나를 구하러 저 멀리서 선배들이 달려왔고 당황한 나는 판단력도 흐려져 위험천만하게 안전벨트를 풀고 선배가 뛰어내리라는 쪽으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리고 보니 그 철도 아래는 굴다리가 있어 아파트 5층 정도 높이는 돼 보였고 잘못 뛰어내렸더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나가던 무궁화호 차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걸린 전깃줄에서 한 줄만 더 옆에 걸렸어도 즉사할 정도로 높은 고압이  흐르는 KTX 고압선이었다는 것도 아찔했다. 우리는 모두 코레일 사무실로 따라가 진술서(?)를 썼고 관계자분은 조상이 살렸다며 큰일 날 뻔했다고 몇 번이나 조상님께 감사하라고 일렀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이 없고 기차 운행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그 정도로 넘어갔다. 하지만 선배의 기체는 살리지 못하고 줄을 모두 잘라 걷어내야만 했다.






 그 후로 내 비행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선배의 기체를 구해내지(?) 못한 미안함과 처음 겪어 본 사건이 충격적이긴 했었나 보다. 짜릿하게 기억에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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