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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Apr 13. 2020

대충 먹고 싶지만 아무거나 먹고 싶지는 않을 때

유부초밥



오늘은 뭐 먹지?


 매 끼 식단 고민을 하다가 한 끼 정도는 간단하게 때우고 싶을 때 선정되는 메뉴 중에 하나는 유부초밥이다. 라면을 끓여 먹자니 건강이 신경 쓰이고 김밥을 싸 먹자니 은근히 손이 많이 가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그때 선택되는 메뉴다. 밥이랑 시중에 판매하는 간편한 유부초밥 만들기 키트만 있으면 된다.







 갓 지은 따끈한 밥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냉동밥이어도 상관없다. 전자레인지에 2분 30초 돌려 따끈하게 만들어 큰 유리볼에 무심하게 던져 넣는다. 유부초밥 키트에 들어있는 조미 볶음 먼저 넣는다. 투명 봉지에 들어있는 작은 알갱이들을 넣으려고 봉지 끝부분을 가볍게 털어 흔들면 초등학교 쉬는 시간마다 굴렸던 살구(공기) 흔드는 소리가 나서 나도 모르게 몇 번 더 털어본다. 다시 정신을 차려 가위로 봉지 윗부분을 잘라내고 흰 밥 위에 빨강, 노랑, 초록, 검정 알갱이들을 촤르르 뿌려준다. 불투명 봉지에 찰랑거리는 소스가 담긴 액체는 뜯자마자 다른 생각 할 틈도 없이 밥 위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대충 넣고 말아도 되지만 젓가락으로 소스를 한 번 더 짜내려 준다. 소스가 흘러내리는 반대 부분을 윗부분으로 치고 젓가락을 벌려 봉지를 사이에 껴서 위에서 아래로 쭉 내려 짜준다. 의외로 많은 양이 남아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면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밥 위로 퍼지는 시큼한 향기를 맡으며 유리볼 안의 내용물들을 포슬포슬하게 섞어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삼각형으로 잘려 겹겹이 쌓인 유부를 한꺼번에 꾹 눌러 스며들어 있는 국물을 짜내고 한 장씩 떼어 그 속에 밥을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유부 속에 밥 넣기 기술이 필요한데 팁을 주자면 숟가락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왼손으로 유부를 잡고 숟가락 뒤를 이용해 유부 속에 밥 넣을 공간을 잡아준다. 그리고 포슬 하게 섞은 밥을 고봉밥같이 가득 한 숟가락 떠서 숟가락 뒷면부터 유부 속에 쏙 집어넣는다. 넣은 숟가락을 빼내면서 왼쪽 엄지 손가락으로 밥이 튀어 나가지 않게 눌러 잡아주면 밥은 유부 속으로 들어가고 숟가락만 쏙 빠지게 된다. 처음엔 밥 양 조절에 서툴러 뚱뚱하거나 홀쭉한 유부초밥이 만들어지다가 유부가 반쯤 남아 있을 때부터는 일정한 모양을 가진 유부초밥이 완성된다.





 그렇게 기술적으로 만들어 냄과 동시에 접시에 가지런히 줄지어 세워주면 간편하게 맛과 모양도 즐기는 한 끼가 완성된다. 물론 만들다가 입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적잖게 발생해서 원래 완성되어야 할 유부초밥 수가 적을 때가 생기지만 앉아서 먹다 보면 몇 개 먹지도 않아서 배가 부르게 되니 양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저 새콤 달콤한 맛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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