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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Jun 16. 2020

아빠도 그랬을까

선풍기


 날씨가 더워지니 수납장에 넣어뒀던 선풍기를 꺼냈다. 넣어 둘 때 분명히 분해를 해서 날을 씻어 닦아 넣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리고 먼지가 들어갈세라 봉지로 한 겹 더 싸서 보관해 뒀는데도 선풍기 날개엔 먼지가 희끄므리하게 쌓였다.


 집에는 여름철에만 꺼내는 몸집이 큰 선풍기 말고 핸디형 선풍기도 있는데 말 그대로 작고 편리성이 좋아 사계절 내내 꺼내 쓰기 좋은 곳에 배치되어 있다. 크기는 작은데 그 성능이 날쌔서 5월 중순의 반짝 더위 때부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특히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아이의 땀을 전용으로 날려주고 있는데 지금이야 작동법도 능숙하고 위험하면 조심하는지라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구강기 시절 아이에게 상처를 줬던 선풍기라 볼 때마다 조심시키게 되는 물건이다.




 그때도 푹푹 찌는 날씨에 큰 선풍기는 손가락이라도 집어넣어 다칠까 봐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두고 그나마 작은 크기에 간격이 촘촘해 손가락이 들어갈 염려도 없는 핸디형 선풍기를 장난감 삼아 놀라고 쥐어줬다. 그게 그렇게 입으로 들어갈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다. 아이 물건이나 옷가지에 아이의 침이 범벅되어 단내로 가득했던 집 안이었는데 어찌 그걸 잊고 쥐어줬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더 멀리 생각하지 못함에 질척인다. 입에 넣은 선풍기 날은 연하디 연한 아이의 입술을 날카롭게 긁었고 동시에 떨어지는 빨간 피에 놀라고 아이의 쨍한 울음에 더 놀랐다. 당장 병원 응급실을 가자는 나를 진정시키고 신랑은 119에 전화해 응급 처치 방법을 듣고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아이에게 선풍기를 들려준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만 같아서 한참이나 미안했다.





 여섯 살 쯤이었나. 명절에 사촌 언니, 오빠들을 따라 뛰어다니다가 대문이 닫히지 말라고 받쳐둔 시멘트 벽돌에 넘어져 인중을 처박았다. 당연히 살이 찢어져 피가 철철 났고 아빠는 급하게 가까운 응급실에 데리고 갔지만 촌뜨기 돌팔이 의사에게는 귀한 딸내미 시술을 맡길 수 없다며 소독만 하고 말았다. 명절이 지나고 집으로 와서도 깁지 않아 찢어진 살 사이로 새살이 차올라 그냥 그대로 자랐다.


 그렇다고 크면서 상처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겼던 것도 아닌데 엄마와 나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빠한테 책임을 돌렸다. 왜 그때 깁지 않아서 흉터 지게 만들었느냐니, 거기도 병원인데 무슨 돌팔이 의사라 핑계를 댔었냐느니 농담처럼 말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물끄러미 내 인중을 보며 유명한 성형외과에 가서 표시가 하나도 안 나게 치료해야 한다고만 했다. 성인이 되어 얼굴 면적도 더 이상 넓어지지 않게 되었을 때쯤 아빠는 신문 광고에서 본 레이저 성형술을 보여주더니 이걸로 해야 한단다.





 아빠도 그랬을까. 내가 선풍기를 볼 때마다 아이에게 느끼는 미안함보다 훨씬 큰 미안함을, 내가 자라는 내내 흉터를 보며 자책했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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