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눈치 보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by 마실궁리


아이가 눈치를 본다. 내 입에서 나온 '쓰읍' 소리를 듣고 눈이 마주치자 들고 있던 가위와 테이프를 얼른 내려놓고 어색하게 웃는다. 오른발을 왼발등에 올려 비비적대더니 이내 달려와 내 앞에 서서 우물거린다.

"아니 그게 아니구요, 테이프를 이렇게 잘라서 종이 붙여서 꾸미려고 한 건데에~~"

"엄마가 이제 그만하자고 했을 텐데~"

아이는 요즘 거실 벽이며 창문, 복도 통로를 막론하고 스티커 붙이기에 재미를 붙였다. 붙일 스티커가 다 떨어지자 색종이를 오려 테이프로 붙이기 시작했던 거다. 어느 정도 붙였다가 같이 떼어 정리하기를 반복했기에 웬만하면 그냥 뒀었는데 점점 구역이 넓어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달래어 그만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다짐을 받았지만 아이는 틈틈이 엄마 몰래 붙이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이 또한 놀이가 되었다.


문제는 내 기분이었다. 내 기분 따라 어느 날은 귀엽게 봐주고 넘어가다가 어느 날은 꾸짖었다. 이런 감정 기복이 아이에게 큰 혼란을 준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태도란 무지막지하게 힘들다. 심하게 화라도 낸 날은 또 얼마나 죄책감이 드는지 이렇게 후회할 거면 조금만 더 참지 왜 그랬나 잠이 들 때까지 스스로를 다그친다.


별 일도 아닌 일에, 이를테면 아이가 의자를 끌어오다가 실수로 넘어뜨려 쿵 하는 소리에 놀라 쳐다만 봤는데도 아이는 눈치를 살필 때가 있다. 그 모습에 내 어릴 적 모습이 비친다. 넘어져서 다쳤는데 똑바로 보고 다니지 않았다고 혼나야만 했던 아이. 혼날까 봐 무서워 눈물이라도 보일라치면 더 호랑이가 되어 꾸짖던 아빠.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 꾹 참으며 아프지 않은 척해야 했던 어린 나.

실수와 상처에 대한 위로를 받지 못하고 눈치 보던 내가, 그것이 얼마나 서럽고 억울한지 알기에 내 아이가 꼭 어린 나처럼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린다. 내 아이는 위로받을 일에 눈치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만든 것만 같아 씁쓸하다.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엄마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제 읽은 책의 한 구절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유전율이란 집단 내의 개인차에 관한 개념일 뿐,
한 개인의 변화를 의미하는
변화 가능성과 전혀 관계가 없다.
굿라이프-최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