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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Dec 04. 2020

낯가리는 도시

france - paris


 다시 만난 파리는 낯설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따가운 햇살을 내리쬐던 여름의 날씨를 기억하던 나는 5월의 파리가 스산하기만 했다.


 비가 왔었는지 축축하게 젖은 바닥과 어둡게 낀 먹구름, 옷깃을 한껏 여미고 빠르게 지나치는 파리지앵들이 우리 가족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 못내 섭섭했다.  



 숙소를 찾아 걸어가는 길 양 옆으로 고풍스러운 건물들만이 10년 세월을 비껴가고 있었다. 그에 걸맞게 한 칸 한 칸 섬세하게 심어져 있는 바닥의 보도블록은 유모차를 끌고 가는 나에겐 고역이었다. 블록과 홈 사이의 단차로 유모차 바퀴가 빠지고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양 손에 힘을 한껏 쥐고 유모차를 핸들링하는 바람에 손바닥이 벌겋게 된 걸 숙소에 와서야 발견했다.



 우리 부부와 유모차에 탄 아이, 큰 트렁크만으로도 꽉 차는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착한 방은 패션의 도시 파리에 왔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톤 다운된 자주색 벽지와 모던한 가구, 어둑한 방을 밝히는 두 개의 조명, 밖에서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고 들어가 밟아야만 했던 카펫까지 모든 것이 세련되고 이국적이었다.


 사진을 찍기만 하면 작품이 나올 것 같았던 공간은 곧 아이의 장난감과 짐들로 그 느낌을 잃었지만 우리가 머무는 동안만큼은 낯가리는 도시에서 가장 포근하게 우리를 안아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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