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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Jan 23. 2021

먼저 팔고 떠나라



애초에 이사 갈 마음은 없었다. 지금 사는 곳은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로 여섯 살 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를 다닐 때까지 살아도 될 만큼 이사 갈 이유가 없었다. 사계절을 집에서 느낄 수 있는 단지의 조경이나 주변의 자연환경도 첫 집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연초에 친한 동생의 이사 소식을 들었다.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그쯤이 좋을 것 같다 생각한 아파트였다. 걸어서 호수공원을 갈 수 있고 주변에 상가가 많아서 생활권이 좋은 곳이었다.

"언니~ 언니도 신랑이랑 임장을 한 번 가봐~
가서 보면 확실히 다르다니까~ 그리고 지금 아니면 못가!
나중에 여기랑 거기랑 갭이 얼마나 벌어지겠어?
안 봐도 뻔하지 않아?
일단 1층 가서 집값 올라가면 고층으로 가는 거야~~!"


 혹했다. 언젠가는 갈 예정이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생 말대로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갈 것만 같았다. 부동산 경기를 진정시키겠다던 정책들은 어찌 된 게 전국의 주택 가격을 널뛰기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며칠을 핸드폰으로 매물만 쳐다보다가 관심도 없는 신랑을 데리고 구경이나 가보자며 집을 나섰다.


 다른 아파트 몇 군데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들어선 집은 같은 평수임에도 불구하고 넓어 보였다. 앞에 봤던 집들은 전형적인 a타입으로 지금 사는 집이랑 같은 구조, 같은 평수임에도 거실이 확연히 좁아 보였다. 반면 마지막 집은 c타입으로 길게 뻗은 복도식으로 들어가 거실과 넓은 주방이 펼쳐지는 순간 '오~?' 했다. 거실과 주방이 길게 연결되어 있어 공간도 넓어 보였고 식탁 자리 옆에 있는 팬트리 공간까지 있었다. '괜찮은데~?' 싶은  순간, 안방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쪼끄맣게 보이는 호수공원 뷰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거실도 아니고 안방의 작은 창문에서, 주방 옆 다용도실에서  귀퉁이만큼 보이는 그 뷰에 꽂혀버린 거다.   




"자기야 어떻게 해~ 너무 마음에 들어~ 자긴 어때?"

"나도 이사 가면 좋지~ 심심하면 애랑 공원 가서 산책하고 영화도 보고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아무래도 가격이 문제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 "

"그치? 나도 생각도 안 해본 금액이긴 한데, 일단 계산기 두드려 볼까? 너무 맘에 들긴 하는데~"


 그날 밤,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본 우리는 포기하기로 했다. 너무 큰 금액을 하룻밤 사이에 결정하기에 우리는 대범하지 못했다. 결정을 누구에게 미룰 수도 없었고 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 집을 팔아야 했고, 대출이 잘 될지 몰랐고, 이사 날짜까지 맞아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포기를 선언하고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둘이 마주 앉았는데 신랑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하~ 자기야, 내가 이래서 부자가 못되나 보다~"

"ㅋㅋㅋ 갑자기 무슨 소리야~ 하~ 아쉽긴 하다 그치?"

"응~ 좋은 기회인데 못 잡는 거 같아서 계속 미련이 생기네~ 근데 과연 우리가 준비되어 있을 때는 이런 기회가 올까?"

"그렇지~ 우리가 준비되어 있을 땐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
근데 어쩌겠어~ 아쉬워도 이런 큰 일에는 우리 둘이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아쉬워도 둘 중 하나가 찝찝하면 안 하는 게 맞는 거야!"

"그렇긴 한데~ 하~ 나도 애랑 걸어서 호수공원 가는 상상하면 애가 참 좋아하겠다 싶었는데~"

"보통 나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는 쪽을 택하거든?
근데 이런 일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니까 자기가 중심을 잡아줘서 깨끗이 포기할 생각이 있었어,

지금 자기가 이렇게 아쉬워하니깐 나도 흔들리네~
우리 그럼 내일 부동산에서 전화 오면 고 할까?"

"그럴까? 우리 다음 사람한테 넘긴다고 했는데, 설마 연락 오려나? 연락 오면 우리 집인 건가?"

"그래~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자자~~"


 그렇게 밤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었고 운명(?)처럼 다음 날 부동산의 전화를 받았다. 다음 예약자와 조건이 맞지 않아서 다시 연락을 했다는 거다. 우리 집이 될 집이었나 보다 생각하고 가계약금을 넣어버렸다.  



 그러고 10일이 지났다. 다른 문제는 없는데 아직 지금 집이 팔리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초록창에 '집 잘 팔리는 법'을 검색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1. 집을 항상 깨끗하게 정리한다.
2. 밝고 환한(채광) 모습을 보여준다.
3. 좋은 향기가 나게 한다.
4. 여러 부동산에 내놓아라.
5. 시세보다 조금 저렴하게 내놓아라.


 이런 기본적인 방법을 시작으로 신발장에 가위를 두거나 벽을 문지르며 잘 살았다고 작별인사하는 미신까지 한 상태다. 집을 보러 오는 매수인들에게 집의 특장점을 이야기해주며 필사적으로 노력 중이지만 집이 팔릴 때까지 웃지 못할 것 같다.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오지 않아 평균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다. 그러니 이사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꼭! 꼭!  집을 먼저 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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