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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20. 2019

열심히라는 틀에 갇혀 있나요

지친 청춘들에게

"언니, 갤 보면 언니가 생각나.


동생은 제일 친한 동기를 볼 때마다 내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3년 동안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부족한 시간을 쪼개가며 대외활동을 하는 동기가 있다고 한다. 동생은 뭐든지 열과 성을 다하는 동기에게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 열심히 말고.


여기서 가만히 멈춰버리면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 무서웠다.


난 열심히라는 지옥에 빠져 아주 오랫동안 조급증을 앓았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었던 이십 대.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살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장 5년을 열심히라는 틀에 갇혀 살았다. 물 마실 시간도 없이 백팩을 메고 서울을 누볐다. 난 주변 사람들 사이에선 열정맨으로 추앙받았다. 대외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할 수 있냐며, 또 새로운 걸 시작했냐는 친구들의 말에, 더 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한 의원의 말에 자조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모르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저분은 내가 몇 시에 자고 일어나는지 알기나 하나.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밤 한시까지 자기소개서를 쓰고 충혈된 눈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닭장 속에 갇혀도 직장인이 된다면 행복할 줄 알았다.


결국 열심히 해서 취업을 했다 치자. 직장에 들어가면 과연 나로 살 수 있을까. 조직에 맞춰 부품이 되라는 강요. 만약 조직의 틀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낙오자로 취급하는 분위기.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열심히의 미덕은 결국 사라지고 포기의 미덕을 이해하게 됐다.


불안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백수가 된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업자 100만 시대. 나 역시 그 안에 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낙오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포 세대, 구포 세대라는 말이 미디어에 많이 나오기 바로 전엔 어떤 말이 제일 많이 나왔을까? 스펙. 한 줄 스펙을 중시하는 기업들은 그에 맞춰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있었다. 토익 900점. 인턴 경력. 다른 사람보다 한 줄이 더 적으면 그 많은 스펙을 쌓았음에도 새로운 한 줄을 찾고 있었다.


열심히 더 열심히.


결국 나의 실체는 정신에서 나왔다. 한 번도 내 삶이 틀리다고 의심한 적이 없었다. 회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행동은 결국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와 반대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코 키토 에르 코 숨, Cogito ergo sum)'라는 명제로 회의의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 생각하는 것으로 실체인 '나'가 만들어진다


데카르트는 자신 이전의 전통적인 철학과 관습을 모두 비판하며 확실한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합리론자인 그는 확실한 인식을 위해서는 인식을 위한 대상이 존재해야 하며 주관 안에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데카르트는 자아 곧,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회의주의자로 불린 데카르트는 신 없이도 본유관념은 나에게 내장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근대 철학에서 주체라는 범주는 가장 중심적이며 근본적인 범주다. 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가 인간의 이성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했다. 곧, 이성의 능력이 바로 자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의 원천임을 주장한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판단해야만 했다. 목적 없는 열심히의 늪에서 나는 얼마나 허우적댔는지 그리고 주체적으로 판단한 게 아닌 타인의 말에 자꾸 휘둘려 하고 싶은 도전을 포기했음을 알게됐다.


프로이트가 갖는 철학적 의미를 새로이 부각한 라캉은 '무의식'의 영역을 개척했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있다.'가 그의 기본 명제다. 무의식이 표현되거나 조직되는 방식은 언어적인 구조와 동일함을 강조한다.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선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언어 속에는 그들의 문화와 삶이 담기기 마련이다. 우리라는 틀 안에서 개인적인 취향을 배제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취향 문화는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틀' 메커니즘 안에 꼭 포함되어야 할까?


무의식 역시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나란 개인으로부터 독립적인 질서와 체계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곧, 무의식이란 타자(Autre)의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타자의 담론으로 요약되는 이 것이 개개인의 질서로 편입되는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열심히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향을 향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방향이 결여된 열심히는 마음의 결핍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물리학에서는 정지와 유지가 무엇보다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브레이크 할만한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에 계속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꾸준하게 한 길을 묵묵히 가기 위해서는 잠깐의 휴식 시간도 필요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해방감은 포기를 선택하며 얻는 것으로, 포기하는 것도 주체적인 삶의 일종이다. 집착해서 얻는 것보다 열등하지 않다. 싯다르타는 영원한 번뇌를 끊어버리고자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출가했다. 그의 출가는 '마하비닛카마나'라고 불리는데 이는 '위대한 출가' 혹은 '위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열심히 살다가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를 노트에 쓰고 뜯어버린다. 쓰레기통에 넣으면 잠시 동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깊게 집중하다 보면 아마 열심히라는 틀을 깰 수 있을 것도 같다.


가장 보통의 청춘의 경험과 철학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청춘으로 고민했던 무수한 시간에서 제게 철학은 불안함을 해소해준 실낱같은 존재였습니다. 저와 같은 가장 보통의 청춘과 그들을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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