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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01. 2019

손편지의 매력

왜 자꾸 아날로그로 돌아갈까

오늘도 기다림에 지쳐 인터넷 창을 껐다. 15초 정도 기다리다가 창이 켜지지 않으면 빠르게 인터넷을 끄는 게 습관이 됐다. 껐다 켰다를 무한 반복하다 이내 다시 들어가는 걸 포기해버린다. 속수무책으로 빨라지는 인터넷 앞에서 난 이미 속도의 노예가 된 지 오래다.


800미터를 거뜬히 뛰던 그 열두 살 소녀는 이제 없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남편과 트랙을 뛰었다. 체력이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열두 살 어린 소녀였던 그땐 800미터를 거뜬하게 뛰던 학교 대표 육상선수였지만, 지금은 400미터 트랙을 2분 뛰는데도 다리가 꼬이고 트랙의 선이 흐릿하게 보였다. 뛰고 있다는 행위를 하면서 더 많은 땀이 흐르고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찰나의 순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느림>에서 밀란 쿤테라 역시,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고 말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가 속도감을 체감할 수 있는 건 세상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류의 도구들이 나의 속도 여행에 동참하고 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정확한 목적지로 향할 수 있는 차를 타고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고, 머릿속에 있는 토시 하나라도 휘발할까 안절부절못하며 종이와 연필 없이 타자기로 글을 쓰며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있음에 안도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진짜 나를 뒤로 하고 속도감이라는 마약에 빠져 진짜 삶의 속도를 무시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속도감에 지쳤기 때문일까? 청년인 우린 미래의 것보다 과거의 것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옛날 옛적 우리 할머니가 쓰시던 컵에 열광하고, 을지로라는 힙스터들의 성지를 만들며 옛날 감성을 향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레트로(Retro)를 넘어서 아날로그 한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영어로 'analogue'란 '유사성이 있는'이란 뜻이다. 물리적으로 보면 디지털과는 반대로 자연적인 신호를 뜻하는데 햇살과 바람, 소리 등을 아날로그라고 한다. 책 역시 우리의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로 청년들이 열광하는 또 다른 지점 중 하나다. 지역마다 독립서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기본 두 시간 이상 깊은 대화가 필요한 독서 모임이 성행한다. 무려 십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며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공유하는데 재미를 느낀다. 더 나아가 그들은 손편지를 쓰며 마음을 위로받고 있다.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며 손편지를 써보자.


그에 대한 방증으로 아날로그식 펜팔 앱이 인기다.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인 '밤편지'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받을 수 있는데 편지를 보낼 땐 꼭 우표를 붙여야 하며, 보낸 편지는 보통 12시간 뒤에 익명의 수취인에게 도착한다고 한다. 레트로 감성의 유행과 속도감에 지친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 사이로 남아있는 좁은 공간에 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우린 점점 소외에 익숙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친한 친구에게 말하기보다 좀 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이 아팠거나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더 편안한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시작은 낯선 두 남녀가 기차에 마주 보고 앉아 통성명을 시작으로 그들의 짧고도 긴 하루 간의 사랑 이야기다. 이방인 둘은 쉴 틈 없이 대화하며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은 점점 사람들이 열광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방인'과 사랑에 빠지고 위로받는 <비포 선라이즈>가 현실이 되고 있다.


생일을 축하하며 손편지를 건네주는 건 나의 평생의 즐거움으로 편지 안에는 그를 생각한 나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게 편지 쓰기의 시작이다. 글자를 꾹꾹 눌러 담으며 나와 그의 추억을 담아놓고 약속을 이야기하고 그의 미래를 염원한다. 손편지를 쓰면서 우리는 과거의 추억을 걸어오고 현재를 살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천천히 길을 걷거나 가만히 앉아 사유하는 시간이 있을 때 진심 어린 말들이 편지 안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느림이라는 삶의 태도는 이렇듯 속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속도를 쫓다가 나를 잊는다기 보다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바쁘고 빠르게 산다고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여유롭게 일하면서도 나만의 철학을 가졌을 때, 그 방향에 따라 일의 능률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나는 굽이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로 강의 한가로움에 말할 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거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끝물의 과일 위에서 있는 대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9월의 햇살을 몹시 사랑한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에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 나는 사람들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나보다 먼저 느림의 가치를 중시하고 삶을 느긋하게 바라본 피에르 쌍소의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림'이 주는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속에서 그가 반복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경쟁 속에서 쉼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간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여행지에서 여행을 하면서 목적지를 찍고 돌아오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함께 여행하는 사람과 대화도 즐길 수 없으며, 여행지의 경치와 계절의 변화 또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피에르 쌍소가 느리게 산다는 것을 사유하게 된 계기는 파스칼의 이 한 마디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휴식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온다.


속도를 포기하자 눈 앞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였던 그 시절에는 앞서 나가는 사람의 발을 채 넘어뜨리고 먼저 달려 나가야 했다. 지금은 사방을 살피다 보니 계절은 단색이 아님을 알게 됐다. 봄은 벚꽃이 날려서 분홍색이고 녹음이 짙은 여름은 초록색일까. 아니, 새순이 돋아나는 봄이 초록일 수도 따뜻한 냄새가 나는 여름이 분홍색일 수도 있음을 이제야 느낄 수 있다.


아주 천천히, 나도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봐야 겠다. 편지지를 한 장 고르고 연필을 깎고, 책상 앞에 앉아야겠다. 찬찬히 나를 떠올리며 털어놓지 못했던 말들을 조금씩 흘려보내야지. 느리게 또 느리게.


가장 보통의 청춘의 경험과 철학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청춘으로 고민했던 무수한 시간에서 제게 철학은 불안함을 해소해준 실낱같은 존재였습니다. 저와 같은 가장 보통의 청춘과 그들을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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