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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04. 2019

스물아홉 부부의 상반기 결산

우리 잘 살고 있는 거 맞겠지?


이번 연도 초는 우리 부부도 가족들도 숨 가쁘게 달려온 상반기였다. 평생 함께 살기 위한 전초전이자, 살던 자식들을 내보내는 부모님들에게는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다가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결혼식이 4개월이나 지나갔고 벌써 우리는 7월을 맞이하고 있다.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우리 둘은 부모님들에게 프리랜서 선언을 했고, 그저 자식들의 행복만을 빌던 그들은 어떠한 한 마디 언급도 없이 그저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시기로 하셨다.


계산기를 때리고 또 때려봐도 역시 '꾸준한 수입'은 회사일수밖에.


읽고 쓰는 여자는 이렇게 한 마디로 상반기를 결산했다.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로 살기 위한 여정"


읽고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회사를 그만뒀다. 아는 지인의 회사에 잠깐 들어가 일을 도와주며 사업을 시작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출근 시간이 30분 늦어지자 아침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다짐하에 강박적으로 책을 한 권씩 들고 다녔다. 책을 읽는 게 끝이 아니었다. 메모지에 적어놓은 페이지를 다시 펼쳐 마음을 건드린 멘트를 옮겨 적는다. 내 문장으로 만들기 위해 똑같은 멘트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적어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렇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됐다.


하나.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에 이틀에 한 번 글을 쓴다. 매일 글감을 모으고 있다. 쓸 내용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무색하게 할 얘기가 많이 쌓여있다. 작가의 서랍에는 내가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다. 더러 할 말이 없는데 스트레스 받으며 글 쓰고 있는 건 아니냐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내게 글 쓰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편이다. 먹고사는 문제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시간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졌다. 매일 오전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지만 이제 난 일정이 유동적인 프리랜서다. 어쩔 수 없이 이동시간에 글을 구조화시키는 연습을 해 보려 노력한다.


매일 쓰는 게 버겁다. 아니, 매일 잘, 쓰는게 버거운 것 같다.


둘. 강의를 한다. 글로.

부족한 나에게도 글로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초등학교에서 그림책을 실감 나게 읽어주고 아이들의 선입견을 깨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독서토론 선생님을 한다. 이와 더불어 중학교에서는 역사 교육을 하기도 하고 함께 사회 문제를 바라보며 글쓰기로 책을 만든다.  


더 감사할 일은 청년들과 교류할 계기가 생겼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던 계기는 '글쓰기' 덕분이었다. 불편함을 지나치지 않고 포착해 내 마음을 다독이는 단어들을 나열해줬을 때, 세상에 대한 시선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불편함을 마주하는 글쓰기> 수업을 기획했고, 7월 말 함께 에세이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 글쓰기로 치유하고 싶은 청년들은 짧은 2개월의 여정을 <불편함을 마주하는 글쓰기>에서 나와 함께 걸어 나가자.


셋. 드디어 요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을 땐 몰랐지만, 하면 할수록 요가는 나와 찰떡궁합이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평정심이었다. 우울감이 나를 덮쳐오면 절벽 앞으로 빠르게 뛰어가는 나를 붙잡아 준 게 바로 요가의 동작(아사나)을 하나하나 할 때였다. 깊은 명상을 하면 할수록 내가 겪었던 아픔들을 토대로 사람들을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 순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요가 자격증은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그렇지만 잘 해낼 수 있겠다는 나를 향한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선율을 그리는 남편은 이렇게 한 마디로 상반기를 결산했다.

"부부의 삶, 돈 버는 데 급급했던 아쉬웠던 날들"


대중교통비로만 거의 40만원 가량 지출했던 내 남편. 정말 수고 많았어.


하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회사'에 입사하다.

입사는 작년 말에 했다. 그는 혼자 결혼 자금을 마련하고, 모은 돈 모두를 준비에 쏟아붓는 예비 신부를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회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조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친구를 매 순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십대 중반의 그는 나와 매일 말다툼을 했다. 왜 그렇게 회식은 늦게까지 하는 건지, 제시간에 퇴근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시간이 오래 지나서야 그는 예비 신부가 된 그녀를 짧은 회사 생활을 통해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이 시간 덕분에 '직장인'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게 됐고, 음악에 직장인의 삶을 녹여낼 수 있게 되었다.


둘. 부부가 되어 돈 버는 데 급급했다.

연애 때는 돈 버는 족족 다 썼다. 나는 그를 소비의 제왕이라고 부를 만큼 소비는 그의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인 그에겐 기타도 필요하고, 엠프도 그리고 이펙터도 필요했다. 좋은 도구가 더 나은 소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나서부턴 중고나라에 기타 용품을 올리기만 할 뿐, 새 친구를 집으로 들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늘도 그런 그에게 미안함을 느낄 뿐이다. 그런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은 돈을 벌기 위한 치열한 전초전을 치렀다. 그만둔 한 달은 아무런 수입이 없었다. 학교마다 직접 방문해 서류를 넣어야 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며 있는 힘없는 힘 다 뺏기 때문이다.


셋. 역시 강의한다. 음악으로.

남편은 내게 단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고 했다. 매일 요리하던 그가 최근에는 주방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고 한다. 벌써부터 외식을 자주 하러 가는 우리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나. 퇴근하고 와이프의 식탁을 책임지던 남편은 그렇게 피로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인건지 아침 7시에 출근하는 남편은 예전보다 출근이 3시간 늦춰졌다. 여전히 직장인처럼 일주일 중 5일을 학생들의 밴드부 선생님으로 강의를 나간다. 그리고 그 역시 청년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포착해 <비트 메이킹>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가 된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한 마디로 상반기를 결산한다.

"아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이번 상반기는 결혼 전의 우리와 결혼 후의 우리의 삶으로 정확히 구분된다. 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내며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 부부는 결혼식 때 그 다짐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 결혼을 하면서 느꼈던 건, 생각보다 우리 부부의 관계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결혼을 말했을 때 의아해하기보다 온 마음을 담아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낭만부부다.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서로를 더 열렬히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그래서 하반기 목표는 어떻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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