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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15. 2019

작은 결혼식 어때

알고 보니 작은 게 아니라 큰 결혼식이잖아

내가 알고 있는 보통의 결혼식은 이렇다. 바로 다음 타임의 결혼식을 위해 결혼하고 있는 하객들은 바로바로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후다닥 사진을 찍고 나서 다음 식이 있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하객으로 참 당혹스러웠다. 아름다운 내 친구의 모습을 식장 안에 조금 더 담아두고 싶은데. 식장 안의 담긴 신랑 신부 두 사람의 프레임이 사라지는 순간 마음 가득하던 감동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난 틀에 박힌 결혼식장 결혼을 하지 않을 거야.'라며 다짐했다. <어바웃 타임> 영화를 보고 '난 저렇게 결혼할 거야~'라며 노래를 불렀다.


저도 마당에서 결혼하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나처럼 그들의 결혼식이 로망이었을 테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결혼식. 딱히 바라는 건 없었다. 그저 내겐 충분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어바웃 타임>의 '팀'과' 메리'는 집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한다. 널찍한 잔디밭 앞에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깐다. 그리고 빨간 버진 로드가 천천히 깔린다. 식 도중에 '비가 마구 쏟아져도' 그저 행복하단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고,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만큼은 더욱 특별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더 틀을 깨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났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결혼의 시나리오를 답습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서약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한다니. 설레고 또 설렜다. 나의 로망은 이렇게 작은 결혼식이었다.


이미 남편은 내 뜻을 알고 있었다. 매일 대화하면서 우리는 이미 밑그림을 다 그려 놓았다. 이제 채색만 잘 마무리하면 된다. 다른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오랫동안 잘 펼쳐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순간부터 지자체, 야외 결혼식장, 펜션, 갤러리를 차례로 장소를 물색했다.


작은 결혼식이 아니라 큰 결혼식 아닌가요


처음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식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면서도 크게 탐탁지 않았다. 외부는 크게 꾸밀 수 있는 부분이 없었고, 조금 더 욕심을 내다보면 추가 비용이 들기 마련이었다. 내부는 오래된 공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쾌적하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지자체에선 예비 신혼부부를 빠르면 8개월 늦으면 6개월 전부터 모집했다. 2월을 예정으로 8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리서치를 시작한 우리는 일찍 준비한 신혼부부에 비해 꽤 늦은 스타트를 끊은 셈이었다.


하지만 식장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에 지자체 홈페이지를 다 뒤져봤다. 갈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저렴한 비용만큼 뒤따르는 제약이 많았다. 거주자 우선인 지역이 대다수로 서울의 경우 큰 공원이나 시청 등 개방된 곳이 많았지만 예약이 쉽지 않았고,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은 마땅히 할 만한 곳이 없었다.


사실 진짜 친한 사람들만 불러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던 난 남편과 나의 하객이 150명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비용을 알기 전에 엄마에게 하객이 그 정도면 어떻겠냐 물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그 정도 소규모 식장에서 결혼하겠다는 거야?'라며 반문했고, 옆에 있던 아빠는 '사람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결혼식장이었으면 좋겠다'며 본인의 뜻을 내비쳤다.


소규모로 모이자 생각했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야외 결혼식장부터 갤러리까지 물색을 시작했다. 일단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대관하는 데만 약 8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그 정도 비용으론 딱 '공간'을 빌리는 데만 사용할 수 있었다. 버진 로드를 화려하게 빛내줄 꽃 장식은 따로 또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다. 예측 불가능한 비용이 쏟아지자 식비는 또 얼마나 들지 가늠하고 싶지 않았다. 따로 문의해보니 평균 5만 원선을 시작으로 욕심 내 좋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면 7만 원 정도라고 했다. 150명을 초대하는데 800만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작은 결혼식에 '로망'이 덧입혀진 걸까. 내가 원하는 밑그림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하우스 웨딩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배가 들어가는 예산이 당연하다는 듯 응대하는 웨딩 플래너의 태도에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남편과 카페에 앉아 이면지와 연필을 들고 다시 밑그림을 펼쳤다. 도저히 밑그림에 색칠할 수 없었던 우리는 하나씩 엑스를 그려나갔다.


"우리 작은 결혼식 맞는 걸까? 우리 결혼식에 천만 원 이상 쓰지 않기로 했잖아.

"생각보다 작은 결혼식이 작지 않은 것 같아.


부모님이 원치 않아서 하우스 웨딩을 포기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 같았다. 작은 결혼식이 하나의 시류가 됐다. 돈에 눈먼 사람들은 작은 결혼식의 목적을 희미하게 만들어 프리미엄화 시켜놓았다. 타의에 의해 원하던 것을 포기했고, 결혼 준비를 하며 세상의 쓴 맛을 겪었다.


그래도, 작은 결혼식이긴 해


우린 2월에 결혼하기로 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찾은 웨딩홀은 오히려 하우스 웨딩보다 더 저렴한 대관비를 제시한다. 시기상 비수기여서 웨딩홀 측에 원하는 시간을 요구할 수 있었고, 도리어 웨딩홀 담당자에게 조금 더 신경 써 달라고 목청껏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하나씩 줄어들었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결혼, 참 행복했더라.


작은 결혼식은 내가 한 땀 한 땀 만들어 나가야 했다. 식장 분위기부터 시작해 꽃 장식 그리고 식사까지. 결혼 준비 기간 동안 애석하게 열흘 넘는 부산 출장이 있었다. 두 달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 부산을 찍고, 열흘 동안 행사로 부산에 머물러야 했다. 모든 시간을 회사 일에 투자해야 했던 나는 결혼식 준비를 병행하기 부담스러워졌다. 그렇게 결국 웨딩홀 패키지를 선택하기로 남편과 합의했다.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던 웨딩홀 계약을 하고 온 그 날. 시댁으로 가 결혼식장 계약서를 보여드렸다. 그와 동시에 어머님께 결혼식, 집 외에 다른 부분은 모두 축소하고 싶다는 두 사람의 뜻을 전해드린다. 예물도 예단도 크게 중요치 않았다. 시어머님께서는 가족이 될 며느리에게 작은 가락지라도 주고 싶은데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조심스레 내비치셨다. 죄송하게도 그 자리에 앉은 남편과 그의 형은 동시에 '요즘 사람들은 실용적인 데 비용을 많이 투자한다'며 극구 반대 의사를 밝힌다. 어머님의 표정을 읽은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죄송스러운 맘이 들었다. 그래도 그때,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게 여전히 참 다행이다.


착한 딸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던 난 분명 또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조금 더 돈이 들더라도 그들에게서 독립할 자식들로써 마지막 소망쯤은 들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을 권리가 생긴 이때부터 연인이 부부가 되었음을 인지하게 됐다. 이 시간 이후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그리고 우리 부부가 원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이렇게 또 다른 의미의 작은 결혼식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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