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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01. 2019

다섯 번의 웨딩드레스 투어

내가 원하는 드레스를 입는 건 너무 어려워


웨딩드레스 투어를 다녀온 건 다섯 번째다.


친구들을 위한 투어는 딱 두 번이었다. 그들을 따라갈 때마다 내 감정은 바다 저 심연 끝을 찍고 에베레스트 산 정상으로 올라가며 아래 위로 극심하게 널뛰었다. 그래서인지 드레스를 보고 온 날은 저녁부터 다음 날 오후까지 잠을 자야 체력이 원상 복구됐다.


드레스의 개수에 압도되다 보면 누구나 선택 장애에 빠져들기 쉽다. 보기 전에 항상 예비 신부들을 위한 통과의례가 있다. 약속한 샵에 방문하기 전에 다른 신부들이 입었던 드레스를 토대로 맘에 드는 걸 두 벌 정도 미리 선택한다. 그리고 다른 신부들이 공통적으로 예쁘다고 선택했던 드레스도 두 벌 고른다. 객관적인 선호와 주관적인 마음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뒤이어 샵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나를 짓누른다. 화려한 드레스에 이어 높은 천장과 크리스탈 조명. 안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친구를 기다리며 사방으로 눈알을 굴리다 보면 아름다운 신부로 변신한 친구가 한 층 높은 상단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그녀는 화려한 비즈가 가득 달려있는 드레스, 벨 모양의 풍성한 드레스 밑단, S라인의 몸매가 드러날 수 있게 딱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고 한 바퀴 핑그르르 돌아준다.



그 날은 스물일곱의 어느 더운 여름이었다. 친구의 촬영용 드레스를 보러 홍대 입구로 향했다. 7년 동안 연애한 내 친구는 제주도로 웨딩촬영을 떠난단다. 평일이라 예비신랑은 일을 한다며 나와 약속을 잡았지만, 실상 친구는 집에서 홀로 남아있을 날 배려해 웨딩드레스를 보러 간 것이었다. 배려심 많은 내 친구는 내게도 드레스를 입혀준다. 드레스를 입자마자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아, 너무 예쁘다 너, 누가 보면 네가 결혼하는 줄 알겠어.

"근데 진짜 예쁘긴 하다. 난 언제쯤 결혼할까?


거울 속에 비친 드레스 입은 내 모습을 찬찬히 훑어본다. 앞뒤로 돌아보다가 거울 뒤로 휙 돌아 재빠르게 갈아입겠다고 말했다. 친구 결혼 준비하는데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뒤에서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그녀는 내 마음을 간파한 듯 이렇게 말한다.


"한 벌만 더 입어봐 봐.

"됐어. 너 준비하는데 내가 뭘 더 입어봐.


얼마나 이 웨딩드레스 카탈로그를 많이 봤는지 모르겠다.

그 날 저녁. 기다리던 전화가 울린다. 신호음이 울릴 때부터 자잘한 눈물이 맺혀있다가 전화를 받자마자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눈물에 이어 콧물 범벅이 되더니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던 그는 천천히 묻는다.


"오늘 드레스 보러 다녀온다며. 잘 다녀왔어?

"으.... 으아... 응.... 그냥 잘 다녀왔어. 응 좋았어.

"근데 왜 울어. 좋았다면서. 왜 그러는데.

"모르겠어. 친구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좋았는데. 나는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하고 싶어?


아니라는 대답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두고 침대 옆에 쪼그려 앉는다. 무릎을 껴안고 가만히 앉아 발가락을 바라본다. 구두를 신고 드레스를 입었던 내가 보였다. 앞 발코가 트여있는 구두 사이로 내 발가락이 빼꼼하고 튀어나왔다. 발가락을 최대한 접어 본다. 발이 보일수록 가진 게 없는 내가 보이는 것 같았다. 행복해 보이는 친구 앞에서 한 없이 초라해졌다.


뒤이은 드레스 투어 땐 마음을 집에 고이 접어 두기로 한다. 가진 게 없는 나와 쉽게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 방구석에 꽁꽁 숨겨두었는데도 끈질긴 녀석은 어느새 또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드레스의 화려함은 끝이 없었다.


"예뻐. 너무 예뻐.


그녀들에게 하는 말은 다 진심이었다.

진심이고 말고.


그런데 우린 그렇게 드레스를 몇 벌을 입어야 할까.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우린 드레스를 입어왔는지도 몰라. 얼마나 수많은 드레스를 입었다 벗었다 했을까.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그렇게 살아왔던 것 일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드레스를 입고 싶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화려한 내 모습을 뽐내고 싶었다. 두 번에 걸친 내 친구들의 드레스 투어를 끝으로 내 드레스 투어도 시작됐다.



드디어 그 날이다. 막상 기쁘지 않았다. 이유 불문하고 웃느라 입술 찢어질 줄 알았던 예비신부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드레스샵에 들어오자 샵 실장님은 난리가 났다. 말이 끊길세라 질문하고 예쁜 게 더 있다며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말씀을 하신다. 한 귀에 꽂히고 바로 반대편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증발해버린다.


"많이 피곤한가 봐요.


멍 때리고 있는 나를 보던 그는 몇 차례 내게 말을 건넨다. 그러자 실장님은 드레스를 어루만지며 그의 뒷 말을 이어간다. 신부님은 볼륨감이 있으셔서 탑 드레스가 잘 어울릴 거예요. 벨라인보다는 머메이드라인이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예비 신부의 통과 의례라던 미리 드레스 고르기는 하지도 못하고 그냥 찾아가 그들이 던져주는 드레스 몇 벌만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드레스를 입으면 예쁘기도 하지만 가끔은 못난 부분이 부각되어 보이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공감 능력이 뛰어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반대로 말하면 우유부단하면서도 줏대가 없다는 것이다. 배려가 미덕이라 여기며 살아온 내게 좋고 나쁨을 표현한 적이 손에 꼽는다. 드레스를 보는 날에도 변함이 없었다. 물론 내 잘못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미리 내 취향을 그들에게 정확하게 전하는 게 필요했지만 드레스를 보러 간다는 압박감으로 무언갈 할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일생일대의 순간에도 개인적 성향은 발휘되어 그 틀 안에 나를 가두는 게 익숙했다.


예전엔 그렇게 틀 속 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겠지만, 결혼이라 그럴까 마음가짐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다 화가 났다. 이렇게 많은 드레스를 입었는데 정작 원하는 드레스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권하는 걸 고르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걸 말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입고 싶었던 드레스를 입어서 행복한 모습으로 뒤를 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내 삶도 매일 그랬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드레스 입는 날에도 이래야 했을까.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찮은 인간이라도 분명 선택할 권리는 있는 건데 말이다. 결국 전화를 해 또다시 촬영용 드레스를 고르러 갔다. 정확하게 내 의사를 표시하고 나서야 원하는 대로 드레스가 하나둘씩 차례로 나왔다. 물론 더 비즈가 달려있고 더 예쁜 건 블랙라벨이었기에 돈을 더 많이 많이 지불해야 했지만.


처음 그녀들의 드레스를 보러 갔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었나, 아니면 결국 그 틀로 향하게 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웨딩드레스를 입으면서도 우린 틀 안에서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이어갔다.


드레스를 고르며 온갖 생각들도 점철되었던 내 머릿속은 만족스러운 스튜디오 사진으로 다행히도 부쩍 맑아졌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싶지만 누군가의 시선으로 혹은 당연하게 해야한다는 사회적인 관습 때문에 할 수 없던 것들이 떠오른다. 다섯 번의 웨딩 드레스 투어는 무수히 많은 내 삶의 선택지를 내가 스스로 잘 골라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드레스를 고르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아직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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