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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22. 2019

인생살이는 언제쯤 익숙해질까

건반을 치며 생각한 인생사

회사를 다닐 땐, 수요일과 금요일의 격차를 절실히 실감했다. 노동 시간이 이틀이나 남아있는 시점과 휴식이 이틀 보장된 그 시점. 평일에서 주말로의 환승이 절실하다. 그렇게 휴식과 노동 사이의 격차가 극대화되던 그땐 근심 없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주말에 감사했다.


현재는 노동과 휴식의 격차가 모호해졌음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근심 걱정은 예고 없이 나를 덮친다. 지금 고용주와 피고용주 온전히 나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된 그 둘 사이에서 자아를 휴식해줄 날이 없음에 좌절하고 있을 때쯤, 작은 방에서 건반 소리가 들렸다.


Last Carnival.


노래는 그대로 <마지막 축제>였다. 내겐 이십 대가 일 년도 남아있지 않았다. 딱 그만큼 어른이 되지도 못했고, 밝디 밝은 시간을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 이십 대의 마지막 축제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그렇게 이십 대의 마지막 시간을 나 자신으로 즐기고자 홀연히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스무 살이 끝나면 인생의 축제가 끝난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축제를 재미있고 잘 즐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지만 관성의 법칙은 무섭다. 축제 기간 동안 온몸에 힘을 빼고 놀아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불안감 속에 살았댜. 이제야 깨닫는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매 순간 Last Carnival인 듯 살아가면 된다는 걸.


나의 이십 대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진심으로 다가간 사람에게 나의 진정성은 온전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인간관계와 하는 일에 주기적인 실패를 경험하며 나날이 무기력이 나를 덮쳤다. 목표가 있는 삶보단 흐릿한 삶이 아니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만 집중해보기로 결심했다. 똑같은 하루가 연주되겠지만 난 충분히 변주하는 능력을 갖췄다. 누군가를 쫓는 삶보다 그저 지금 하루의 내 연주곡이 조금 더 나아져있으면 되는 거였다.


마당에 씨앗을 옮겨 심은 엄마


내 손을 잡고 엄마는 우리 아파트 1층 화단으로 나섰다. 예전과 달리 그녀는 화분을 키우는 데 재미를 붙인 듯했다. 고작 이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서 자라던 화초들은 물을 너무 많이 먹어 죽어버렸다. 정도 없이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던 그녀를 화초들도 견디지 못한 것일까?



그러던 그녀가 지금 달라졌다. 집에 들어온 모든 화분들이 제 궤도를 찾아간다. 외할머니댁에서 가져온 도토리를 주방에 놓아놨을 뿐인데 단단한 껍질을 연약한 새싹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어느새 화분은 줄기를 뻗었다. 더 자라 상수리나무가 될지도 모를 그 새싹을 더 이상 작은 화분에서 키울 순 없었다. 그녀는 한 뼘 조금 더 될 그 화분을 품에 안고 1층 화단으로 나섰다. 뿌리까지 땅으로 단단히 옮겨 심은 그녀는 하루에 한 번씩 상수리나무가 될 그 녀석을 만나고 집으로 올라간단다. 


그 녀석은 이제 자라 땅 속에 뿌리를 더 단단히 내리겠지. 그리고 햇빛을 쬐고 물을 먹으며 엄마가 상상하는 상수리나무로 자랄 테다. 이십 대의 내 방황은 덜어냄과 동시에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엄마의 방황도 나처럼 그렇게 끝났으면 좋겠다고 할 때쯤, 상수리나무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그렇게 미래의 상수리나무를 집 밖 화단으로 옮겨 심었다. 아주 작고 연약한 나무를 옮겨심기까지 내가 알지 못하는 망설임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쑥쑥 자라나는 화분을 보며 놓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미래의 상수리나무가 될 그 새싹을 보며 이제야 먼 거리에서 성장을 응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숫자 그래도 오십이라는 시간을 살았어도 그녀는 자식을 처음 키운 것처럼 화초를 키우는 것도 익숙지 않아 보였다. 사랑을 듬뿍 주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했지만 사랑의 크기와 성장은 비례하지 않았다. 그래서 뒤돌아 상처도 많이 받았고,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기만 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앞으로 새로운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고, 이제 그와 함께 혹은 그녀 스스로 다른 Last Carnival을 준비하는 모습이 기대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참 다행이다 싶다.


어제 쳤던 것처럼 익숙하다


Last Carnival을 치던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그는 나를 건반 앞으로 불러 세웠다. 돌연 할 일을 멈추고 그의 손가락을 따라간다. 그의 손가락과 팔 그리고 어깨가 박자에 맞춰 흔들리고 있다. 멍하니 그의 등을 바라보다 나의 옛날 옛적 피아노 선생님을 떠올린다. 곡을 연주하며 춤추는 그녀의 몸짓을 이해하기엔 열 살 소녀였던 난 너무 어렸다. 이제야 흐르는 선율에 몸을 맡긴다는 서른을 앞두고서야 그 표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연주가 끝나고 뒤이어 나도 건반 앞에 앉는다. 왼손 다음 오른손을 차례로 연습한다. 그러고 나서 두 손을 동시에 두드린다. 더듬더듬 악보를 따라가니 어제 쳤던 것처럼 익숙하다. 흐르는 선율에 몸을 맡기고 나를 내려놓는다.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교훈이 쉽게 잊히지 않듯, 건반을 치는 것도 배우면 쉽게 잊히지 않고 몸이 기억한다. 낮은음 자리표, 높은음 자리표, 그렇게 음계의 적당한 위치를 알고 나면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는 게 건반이다.


건반처럼 인생도 그렇게 익숙했으면 방황을 멈췄을까. 건반과 반대로 나이 든다고 세상이 익숙해지거나 쉬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악보에 동일한 음표가 쓰여 있더라도 나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변주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밑도 끝도 없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길을 잃고 쓰러질 때도 있었다. 무수한 경험으로 내 삶이 익숙해졌다 할 지라도 건반과 인생은 같은 듯 다른 것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오늘도 Last carnival에 산다.





@ 일러스트레이터 insta. kang_e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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