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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19. 2019

글감은 널려있다

#쉽게 글쓰기 01

글 쓰기 전 일종의 의식 같은 게 있다. 오늘 쓸 이야기를 몇 개의 단어로 추려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쓸거리는 많지만 주제 의식 같은 하나의 단어를 잡지 않으면 나 역시 글을 풀어나가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수강생에게 글 쓸 때 제일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쓸 말이 없어요', '뭐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두 가지 말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우리에 비해 쓸 말이 많은 걸까?


오늘 당신의 글감은 무엇입니까?


생각보다 발에 치일 정도로 도처에 널려있는 게 글감이다. 다만 우리가 그걸 건져내지 못할 뿐. 지금 난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멀리서부터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누구 발소린지, 점점 우리 집 앞으로 가까워진다. 긴장한 상태로 숨 죽이고 그다음 동작을 기다린다. 옆집 남자일까, 우리 집으로 다가올까. 뭔가 익숙한 발자국이었는데. 한숨소리와 함께 비밀번호를 누르는 내 남편의 둔탁한 발걸음 소리였나 보다. 오늘은 어제보다 아이들이 더 말을 듣지 않은 걸까. 그에게 물어보자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발걸음으로 그의 피로도를 파악할 수 있는 난 그의 진짜 와이프가 됐다.


저 담벼락 안에는 어떤 이들이 발자국을 새기고 있을까.


이렇듯 들리는 소리를 상상하며 글을 쓴다. 우리에겐 아주 탁월한 친구인 오감이라는 도구가 있다. 글 쓰기 전에 오감을 깨우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걸 치른다. 커피를 마시며 코를 깨운다. 그리고 연필을 돌리며 사각사각 깎아 내 촉감을 곤두세운다.


펜을 드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대화를 계속하다 공허함을 느낀 사람들은 대부분 일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나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의 문제에 착안하던 것부터 시작해 조금씩 쓰다 보면 사회 문제로 연결되고 그때부터 일기 쓰기에서 진짜 글쓰기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살고 있는 환경과 방식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우린 타인의 삶에 생각보다 관심이 많다. 나와 다른 그들이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혹여나 못 살고 있다면 글을 통해서라도 위로해주거나 위로받고 싶은 게 우리들이다.


대신 조금은 그 글감을 묵혀둬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내게 아주 작고 초라한 글감일수록 관심을 가지고 몇 날 며칠을 지켜보면 아끼는 맘이 절로 생긴다. 그리고 그 애정을 토대로 더 깊이 글감을 붙잡고 질문하고 사유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와 연결된 것, 사회와 연결된 것,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것을 본질적으로 알게 된다.


글감을 정했다면 그를 뒷받침해 줄 '사실'을 찾아본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대화 하나, 날씨 변화 하나도 허투루 넘긴 적이 없다. 예전보다 감각 기관이 더욱 곤두서 있다는 걸 깨닫는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놓쳤을까 땅을 치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지금이라도 뜬 눈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에 감사할 뿐.


글 쓰기 위해서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믿을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독자들은 글을 통해 '배우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내 브런치에서도 유독 '철학'이나 '인문학' 정보가 들어가 있는 글이 공유가 많이 되는 것도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믿을 만한 자료가 충분하다는 것은 나의 글에 자신감과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를 오늘부터 시작해볼까요?


뒷받침할 사실을 찾다 보면 자동으로 연결고리가 생긴다. 매끄럽게 그를 연결하는 방법은 사이에 '나만의 사례'를 넣어주는 것이다. 정보만으로는 충분한 설득이 부족하다. 이제는 나의 감성과 창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사례가 없이는 무미건조한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쓸 순 없다. 그저 글을 써 내려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꾸 붙이고 떼내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 완벽하진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글로 바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 역시 쓰는 것과 동시에 나의 독자들과 소통이 시작됐다. 하나 둘 댓글이 달릴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으로 댓글 다는 것도 까먹고 또 다른 이야기를 던지고 싶어 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매일 글을 쓰지만 매일 올리진 않는다. 며칠 묵혀두다가 글을 보면 잘못된 게 보이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욕심 내지 말자. 글 쓰기의 첫 번째 수혜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글을 쓰며 이미 충분한 고민을 통해 몸부림치는 과정은 자발적인 사유를 시작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도처에 널려있는 글감을 지나치지 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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