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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29. 2019

지금껏 매일 밥을 얻어먹는 사람

엄마와 남편의 밥상

결혼 전 엄마와 동생은 식탁에 앉을 때면 귀 딱지가 앉을 정도로 똑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도 꺼내 먹지 않던 내가 결혼해 끼니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득해진 그들은 연신 ‘할 수 있겠어?'라며 걱정했다. 반찬 하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지만 결혼 준비 때문에 시간 없었던 딸은 결국 엄마의 요리를 배울 수 없었다.


매일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여전히 엄마와 동생은 내 식사 시간을 걱정한다. 그리곤 남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단어를 건넨다. 뒤이어 나를 나무라는 그들. 통마늘을 준다는 엄마는 이 정도면 되겠냐, 많지 않냐 말했다. 그를 보며 ‘알리오 올리오 해 먹자’라고 하자 옆에 있던 동생은 쯧쯧거리며 말을 잇는다.


“언니가 할 것도 아니면서!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처럼 부정을 하면서도 고개를 푹 숙인다. 그래. 결국 또 남편이 면을 끓이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겠지.


29년 내내 결혼 전에 아침밥을 빼놓은 적이 없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죽는 사람처럼 아침은 내게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아침잠보다 밥이 더 중요해서 15분을 일찍 일어나서 꼭 밥 먹어야 했다. 먹지 않는 날이면 책상에 앉자마자 뱃고동 소리가 마구 울리다가 결국엔 두통약을 꺼내 먹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밥을 먹는 건 아침뿐이다. 야근하느라 아니면 남자 친구였던 그와 데이트를 하고 오느라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마다 갓 지은 잡곡밥이 나오는 건 자기 전에 밥을 안쳐 놓는 그녀의 노력 덕분이다. 게다가 꼭 찌개나 국이 없으면 목 막힌다고 얘기하는 세 식구로 인해 그녀는 매주 주말마다 식재료를 사야 했다. 삼일 정도 같은 반찬이 나오면 ‘다른 거 없어?’라고 묻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기름진 차돌박이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여전히 아침밥을 차리는 그녀는 세 식구의 냉장고가 서글프다. 반찬이 줄어들지 않아 좀처럼 새로운 메뉴를 생각하고 만들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집에 가 냉장고 문을 열면 항상 똑같은 메뉴가 있다. 그들이 시켜먹은 치킨과 떡볶이. 그래도 가스레인지 위엔 그녀가 올려놓은 뚝배기가 보인다. 뚜껑을 열어보니 차돌박이 된장찌개가 있다. 다른 것보다 난 기름진 그녀의 된장찌개를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또 집밥을 얻어먹고 있네요


냉장고 안에 해 먹을 재료가 분명 없었다. 몇 번이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다. 이리저리 조합을 해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요리를 하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야 하다니. 다른 건 어떻게든 시도해보겠는데 요리는 둘리처럼 요리조리 노력해서 호잇 하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한계에 봉착하면 결국 냉장고 문을 닫고 식탁에 앉아 돌아올 남편을 기다린다.


딱 그게 우리네 아빠들의 모습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냉장고 문을 열다가 이내 요리를 포기해버리는 아버지들. 나이가 들어서 와이프랑 사이가 틀어지면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산다는데 난 남편이랑 사이가 틀어져서 그렇게 된다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하는 내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다.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만 자존심 허락지 않는다. 모든지 다 잘하고 싶은 와이프인데 요리만큼 한 없이 초라해진다. 먹고 맛보는 건 좋아해서 리액션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데. 리액션하기 전에 무슨 맛인지 어떤 향신료를 썼는지 생각 좀 해볼걸.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 이미 다 지난 일인걸.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인 그는 분명 힘들 테다. 피로에 찌들어 온 몸이 퉁퉁 부은 남편은 문을 열자마자 또 다른 문인 냉장고를 연다. 그리고 채소 칸을 열고 기본적인 재료인 파와 양파를 꺼낸다. 재료가 없던 그 날은 냉장고를 쭉 스캔하고 나선 스팸을 꺼낸다. 양배추는 그가 제일 파, 양파 다음으로 제일 애용하는 재료다. 소화 작용도 도울 뿐 아니라 양을 세 배로 훌쩍 뛰어넘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식재료인 것이다.


그는 내게 백종원 선생님이다. <골목식당>을 보며 왜 저렇게 하면 안 되는지 백종원 선생님이 재료를 선택하시는 이유를 티비보다 먼저 옆에서 말한다. 백종원 선생님보다 그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남편 역시 깊게 파인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먼저 파 기름을 냈다.


그의 비법은 단 하나란다. 맛을 상상한단다. 화면에 음식이 나오면 어떤 맛일지 생각해보고, 요리 안에 들어간 주 재료와 향신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분명 내게도 가능성이 있을 텐데 손 놓아버린 건 그와 나의 요리 속도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똑같은 제육볶음을 하더라도 그는 양념부터 재료 손질 그리고 요리 완성까지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반면에 내 속도는 그보다 기본 두 배 이상 걸린다. 요리를 할 때 핸드폰 배터리가 몇 프로 남아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요리를 시작하기 조차 어렵다. 게다가 주방이 지저분하면 요리도 하기 싫다.


지금껏 매일 집밥을 얻어먹는데요


결혼 한 주변 친구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미혼인 친구들 역시 나를 부러워한다. 집에서 스테이크부터 파스타 그리고 대만 요리까지. 오히려 결혼하기 전보다 세계화된 요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기에 어깨가 한 껏 올라가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자랑하는 나를 위해 그는 신나게 요리했다. 아니, 내가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았던 나의 남편은 ‘와이프가 행복하니 나도 좋아’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녀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즐거움이 없어지고 과도한 책임감만 부여됐다고 했다. 그렇게 매일 반찬을 고민하던 그에게는 의무감과 부담만 생기고 즐겁지 않았다.


5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얼마나 부끄러운 사건인지 깨달았다. 잘하는 사람이 더 하면 된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못해도 계속 시도했어야 하는데 핑계만 늘었다. 바쁘다 그리고 어렵다는 핑계로 가스레인지 앞에 가지도 않았다. 그래, 이제 시작이니까 지금도 늦진 않았다.


그토록 분주했던 엄마의 조리과정


결혼 전까진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과 엄마의 집밥을 동시에 누린 난 이제야 나의 식탁을 돌아본다.


엄마가 차려준 식탁에는 반찬의 가짓수가 많고, 꼭 메인으로 고기반찬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저 얻어먹는 주제에 세 명의 사람들은 꼭 밥 먹을 때마다 한 마디씩 멘트를 덧붙였다.


“오늘은 고기반찬이 없네?

“국이 왜 이렇게 짜?


그리고 난 자꾸 새로운 걸 요구했다. 엄마가 잘하는 요리는 한식인데 자꾸 티비에서 본 걸 말했다. 해 본 적 없던 메뉴도 좀 해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것보다 나가서 먹는 게 더 낫지 않냐며 반문했다. 지금은 그냥 평상시에 했던 엄마의 그 반찬이 너무 그립다.


차돌박이 된장찌개에서 시작해 그녀의 감자전까지. 매우 투박하고 일반적인 재료임에도 맛의 깊이가 달랐다. 결혼하고 남편에게 감자전을 한 번 해준 적 있었는데 식감이 정말 달랐다. 엄마가 해 준건 바삭바삭하고 씹히는 뭔가 있었는데 내 껀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렸다.


한식의 경우, 일단 반찬의 가짓수는 식탁을 가득 채우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나물은 풀 죽지 않고 살아남도록 조물조물 주물러 적당히 간이 맞게 요리를 해 주어야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김치는 또 어떤가. 배추를 절이는 것부터 젓갈까지. 긴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게 한식이다.


엄마와 그의 집밥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의 식탁에는 아주 주요 메인 메뉴 딱 한 가지와 세 가지 반찬을 깃들인다. 차려먹을 여유가 없어 남편이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를 하면 바로 옆에서 엄마와 어머님이 주신 반찬을 차례로 그릇에 꺼내 놓는다. 남편은 소고기 스튜를 시작으로 대만의 향신료가 들어간 지파이를 만들어주었다.


우리 엄마와 반대로 그는 새로운 요리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아직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요리는 도전정신이 깃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앞서 말했던 이유 때문에 한식은 유독 자신 없다 한다.


항상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주방 앞에서 앞치마를 둘렀다.


매일 새로운 밥상을 차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온전히 나를 위해 요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인 가구가 늘어나서 혼자 요리하는 사람이 늘었더라도 함께 먹는 밥만큼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편의점 도시락 개수가 늘어나고 컵밥 광고가 성행하는 이유도 요리는 그만큼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요리하는 건 자신이 아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였다. 아침 식사를 먹고 힘내서 일할 딸을 상상하고, 새롭고 맛있는 걸 먹으며 사진을 찍고 또 행복해할 와이프를 상상하는 그들. 나의 미소를 떠올리며 그 뜨거운 불 앞에서 몇 시간이고 서서 고행하느라 빨갛게 익은 그들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감기 걸린 날이면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다. 기력이 딸리는 날엔 푹 끓인 백숙과 걸쭉한 닭죽을 먹고 싶다. 또 비가 오는 날엔 파전이나 감자전에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난다. 옷차림이랑 비슷하게 요리도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요리를 하기 위해선 이렇게 상대방의 상황과 컨디션을 고려해야 한다. 누군가를 눈 여겨 들여다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도의 행위예술이기도 한 그들의 집밥. 사랑하는 당신들을 위해 나도 이제 행위예술인이 돼보려 합니다.


@ 일러스트레이터 insta. kang_eun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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