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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22. 2019

엄마의 빈 방

닫힌 문을 보며, 왜 그랬을까 후회한다

엄마는 원래 그랬다. 서운함을 먼저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나의 분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엄마는 바뀐 게 너무 많았다. 먼저 연락하지 않던,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던 나의 엄마는 이제 말하기 시작했다. 딸이 바쁠까 봐 미안해하지만 유동적으로 자기 시간을 쓸 수 있는 나에게 내심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나의 엄마와 아빠가 내게 대놓고 서운하다 표현했던 시기는 어렴풋이 십삼 년 전 어느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밤새 핸드폰을 만지던 그 날부터 내 방문은 굳게 닫혔다. 연애를 시작하던 고등학교 일 학년부터 나의 자발적인 단절이 시작되었다. 베프의 갑작스러운 절교선언 마냥 나의 부모님은 몇 날 며칠을 앓아누우셨고, 그들의 절망스러운 표정을 애써 모른척했다. 그 당시엔 역정을 내는 그들에게 서운한 감정만 생겨났다.


그땐 몰랐다. 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건지 사람이라는 동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표면적으로 그들의 역정 내는 행동만 보였을 뿐이다. 그 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결국 제삼자의 입장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옛 기억을 복기할 수 있다.


딸의 방문이

굳게 닫힌다는 것은


한 번 굳게 닫힌 문을 다시 열기란 쉽지 않다. 처음엔 문을 두드려서 열리던 문이 나중에는 소리를 질러야 하고, 급기야 부셔야만 열리기도 한다. 활짝 열린 문으로 나의 안부를 묻기를 바라던 그들로부터 한 발자국씩 뒷걸음질 치는 자식은 마음의 문을 점차 닫아갔다.


엄마는 방문을 보며 얼마나 많은 시간 망설였을까.


꽁꽁 숨기던 나의 마음 탓일까? 애정 표현을 무탈하게 하던 아빠와 나는 대면한 사이가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문고리를 잡고 열까 말까 했던 그들을 마주한 건 한 광고 때문이었다. 친구가 메신저로 보내며 ‘이거 봐봐’ 했을 땐 애써 무시했다. 내 눈물샘을 맹신할 수 없었다. 입술을 꾹 깨물어도 적립해뒀던 눈물이 쏟아질 걸 알았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에서 샘이 기울어졌다. 옆에 앉아있던 못난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너도 저랬어?”


그래. 나도 그랬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때는 똑같았다. 빨지 말랬는데 빨아서 줄어들어버린 블라우스를 던지며 활짝 문을 열고 소리를 지른다. 밖에서 잔소리하는 그들을 향해 포호 할 때도. 아르바이트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돈 문제가 있을 때. 나쁜 것들을 쏟아내는 순간만 금단의 구역이 열렸다.


입시보다 더 한 고통이 있을 줄 그땐 몰랐다. 취업 준비생 시기, 몇 번이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내 울었을 때 그때마다 광고 속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몇 번이나 망설였을 거다.


"우리 딸 안 뽑으면 지들만 손해지."


그대로

남겨진 내 방을 바라봐


하나둘씩 방에서 내 물건들을 빼 갈 때마다 그 뒤편에 항상 엄마가 있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왜 다 가지고 가냐고 말하며, 읽을 책들을 놓고 가란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책을 찾아다니는 내가, 혹시 집에 있는 책을 가지러 한 번이라도 올까 봐 무심히 던지는 한 마디는 내 마음에 콕 박힌다.


이제 내 방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를 보러 집에 갈 때마다 문고리는 제자리에 머물러있었다. 침대도 책상도 옷장도 심지어 화장대도. 그냥 방의 주인인 나만 없어졌을 뿐이다.


지난주 엄마에게 전화했다. 부쩍 학교 출퇴근으로 바빠진 엄마와 약속 잡기도 힘들어졌다. 주기적으로 엄마와 글을 쓰고 싶었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을 던졌다. 하지만 내 스케줄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에게 던진 말을 주워 담기까지 벌써 이주의 시간이 흘렀다.


식구들 다 같이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러 갔을 때 자연스레 사위에게 한 마디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온다고 하더니, 요즘 바빠서 안 오더라고. 그냥 그러려니 했어." 내 눈을 피해 사위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하는 그녀의 말의 속내는 광고의 마지막 말처럼 아마 이런 거였겠지.


자주 놀러온다더니.


“기지배, 자주 놀러 온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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