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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Sep 10. 2019

의도적인 연습으로 글쓰기 프로가 되는 법

<1만 시간의 법칙>과 <아웃라이어>의 싸움, 그리고 결말

글 쓰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글에 더 욕심이 났다. 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단어로 문장을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다. 욕심이 배가되는 건 주변 사람들의 칭찬도 한 몫하지만 아쉬운 목소리도 이따금씩 들리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나와 생활하는 남편은 말할 때는 그렇게 좋은 단어를 연발하면서 글로 풀어낼 때는 그보다 덜한 수준의 어휘 구사력을 보인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내가 가진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내비치며 지금 해오던 글쓰기와 접근 방식을 조금 달리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저 충분하게 양적인 시간을 투자하면 더 나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썼던 글을 읽고 또 읽기 시작했다.


언제쯤 프로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프로는 아무 때나 붙이는 단어가 아니다. 수 십 년 동안 같은 일을 지속한 장인 혹은 한 분야에서 특출 난 결과물을 보여준 이에게 붙이는 칭호 같은 단어다. <아웃라이어>의 저서 맬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을 통해 "무엇인가에 대해 전문가(프로)가 되려면 1만 시간을 그것에 투자해야 한다"라고 정의 내렸다.


대다수의 대중은 <아웃라이어>의 1만 시간의 법칙을 선봉 하다시피 온갖 매체에서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저 같은 일을 1만 시간 이상 한다고 해서 과연 프로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이를 닦는데도  치과를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꼼꼼히 닦으라며 잔소리를 듣는 마당에 프로는커녕 기본도 되지 않았음을 안다. 그러던 도중에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의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었다.



무조건 수 만 시간의 투자를 한다고 해서 최고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주변에서도 이를 여실히 증명하는 건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의 기간 차이다. 무언갈 성취하기 위해 본인의 자리에서 누구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공무원 시험 합격 발표가 나왔을 때, 내 주변에 오랜 기간 준비한 한 친구는 아쉬움에 고개를 떨궜고, 고작 6개월을 준비한 동생은 미소로 내 연락에 화답했다. 그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던 건 더 열심히가 아닌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공부하는 짧지만 확실한 여정을 그려왔음을 알게 됐다.


<1만 시간의 재발견> 저자 안데르스 에릭슨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논하며 맬콤 글래드웰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꾸준한 연습이 어느 정도의 실력 향상에는 도움을 줄지 몰라도 최고 전문가인 프로가 되는 것과는 상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만으로도 프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에릭슨은 '의도적인 연습(deliberate pracetice)'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1만 시간을 투자했을 때 물론 편안함을 느끼는 경지(comfort zone; 컴포트 존)에는 오를 수 있으나, 최고에 이르는 경지까지 오르는 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목적의식이 있는 '의식적인 연습'을 했을 때만 고도의 효율성이 개발된다.


이 정체기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있을까


글쓰기는 무척이나 외롭고 고단한 수행의 과정이다. 매일 새로운 글감은 끊임없이 생각나고, 낱말들은 마구 떠오르는데 그를 연결할만한 힘이 없을 땐 그 날 써야 할 내용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노트북 화면을 닫아버린다.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글을 쓸 수 없는 시간이 오는 것 같다. 이 죽일 놈의 정체기. 글쓰기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에도 정체기가 있다. 살이 빠지는 과정에는 감량기에서부터 정체기 그리고 유지기가 있다고 한다. 억눌린 식욕이 여러 차례 폭발하는 탓에 지금까지도 다이어트 정체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자꾸 듣다 보니 딱 한 가지 원리는 이해하게 됐다. 혀가 좋아하는 맛인 '탄수화물' 이 탄수화물은 쉽게 내 몸에 저장된다. 빵을 끊는다는 건 내게 그만큼 가혹한 일이다.




철저한 식단 조절이 필수이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늘어놓은 글감들을 철저히 계획적으로 써 내려가는 게 필요했다. 브런치에 있는 작가에 서랍 안에 풀어놓은 글감만 백 개를 훌쩍 넘어가지만 그냥 그대로 남겨두게 되면 결국 맛있는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변해서 몸 안에 쌓이기만 한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자신들 글의 팔 할은 '필사'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학습하여 단순한 필사만 했을 때, 문장 구사력이 두 단계쯤 훌쩍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복사해놓은 필사 노트는 마음의 뿌듯함만 남겨둔 채 글쓰기 기술의 화학적 작용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에릭슨의 말처럼 '의도적인 연습'을 시도해야 함을 정체기에 들어서 알게 됐다. 어린아이가 언어를 깨우치는 단계에서 감각적으로 다른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듯, 미묘하게 다른 단어를 생각하고 더 나아가 나의 단어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곧, 쌓은 지식보다 감각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당신도 '프로'일지 모른다


이미 이 방법을 안 필자라면 당신도 쉽게 프로가 될 수 있다. 필사 한 문장에 틈을 두고 필사 문장을 조금 다르게 변형해보는 것이다. 음악도 글도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다.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공감했다면, 그 순간이 '의도적인 연습'을 시도할 때다.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았다고 해서 '프로'라고 자만하지 말자. 절대적인 기술이 숙련되고 있음을 의미할 뿐 제대로 된 피드백이 없다면 투자한 시간은 헛된 것이다. 글쓰기의 기술이 지금 있는 만큼 다량의 책을 읽고 내 것으로 탈고하며 이를 나만의 기량으로 만들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량이 늘어남에 따라 당신의 글쓰기 감각도 눈에 보이진 않겠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퇴고하는 당신, 필사를 나의 것으로 바꾸는 당신, 이미 프로 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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