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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Sep 05. 2019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완독이 목표는 아닙니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발에 치이는 예쁜 카페들. 심지어 카페 별로 가지각색의 원두가 있어 골라 마시는 재미도 있다. 코 끝에 스치는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지고, 옛 건물을 그대로 살려놓은 공간은 내 눈도 덩달아 즐겁게 만든다. 층고가 높은 카페 위에 달린 샹들리에 아래에 앉아 커피 잔을 들고 있으면 왠지 이 작은 공간의 주인장이 내가 된 것 같은 착각으로 빠져든다.


지금 내게 있어 책 읽는 건 커피 마시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도 내게 있어 책은 커피보다 조금 더 매력적인 무엇임에 틀림없다. 서점에 가면 어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책들이 서점을 빼곡히 채운다. 종류는 또 어찌나 많은지. 에세이부터 시작해서 그림책까지. 무엇보다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아주 작은 독립 서점이더라도 주인장의 특색이 잘 드러나 있으면 또 새롭다. 카페는 공간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독자에겐 어디서 책을 읽든 '책 속 주인공 공간'으로 빠져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저껜 비행기 값도 시간도 들이지 않고 벤치에 앉아 크로와상을 먹으며 프랑스로 다녀왔으니까.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어


커피보다 책을 훨씬 애정 하는 난, 매달 7,900원을 내며 전자책을 구독해 읽고 있다. 그리고 매주 두 권에서 많으면 세 권씩 책을 저장해둔다. 하지만 난 여전히 목마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공공도서관에 방문해 한 사람에게 주워진 5권의 양을 꽉 채워서 빌리고, 남편의 도서관 카드도 함께 가지고 가 책을 빌린다. 분명한 건 다 읽지 못할걸 알면서도 책을 빌려간다는 것이다.


집 안 책 장에도 읽지 못한 책이 여전히 빼곡히 쌓여있다. 시작도 못한 책들이 내게 반짝이는 시선을 보낼 때마다 못 본 척 휙 머리를 돌려버린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눈총이 느껴지면 온 몸이 따가워서 티비를 틀어놓고도 못 이기는 척 책을 가지고 왔다. 후루룩 책을 넘겨보다 이내 책장을 덮어버린다. 지금은 읽히지 않는 친구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것도 그 친구에게 못할 짓이라는 걸 아주 잘 안다.


빼곡하디 빼곡한 내 책장은 아니지만, 저걸 다 읽어야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권에 있는 모든 활자를 다 씹어 먹어야만 책을 완독 했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전체 페이지를 다 읽어야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열 권의 책 중에서 다 읽은 책은 딱 절반밖에 없다. 나머지 절반의 책 때문에 결국 연체를 하고 가방 안에 그들을 들고 반납하러 갈 때마다 책을 차마 내려놓지도 다른 책을 빌리지도 못하며 얼빠진 난감한 표정으로 책장에 서 있는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보는 남편이 꼭 하는 한 마디가 있다. "좀 비워봐." 읽고 싶은 책은 많고 빌려갈 수 있는 책은 또 한계가 있고. 결국 또 연체를 하는 나를 보며 남편에게 짜증을 섞어 한 마디 한다. "어떻게 비워내. 읽어야 할 께 이렇게나 많은데."


읽어 내려가다 보면 또 새롭게 읽을 녀석이 생긴다. 책이라는 녀석이 참 신기한 건, 도미노처럼 한 놈이 넘어가면 다른 놈들도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인용의 인용을 거듭해 정보는 융합되고 짬뽕되어 또 다른 '좋은 스토리'로 재탄생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자꾸 책을 빌리고 그게 안되면 또 책을 구했다.


읽는 데만 강박관념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게 있으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강박관념이란 건 완벽에 대한 갈망이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이다. 사실 2년 전부터 브런치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 컸지만, 묘사부터 시작해 나의 표현 능력이 타인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진다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감 기한을 1분 남겨두고 지원서를 내는 사람이 바로 나다. 지원서에 있는 토시 하나도 잘못되었을까 봐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그땐 왜 몰랐을까. 퇴고라는 건 하루에서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두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살펴볼 때만 그제야 틀린 걸 확인할 수 있다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된 건지. 떡잎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난 6년의 긴 대학생활 동안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용돈 벌이를 했다. 그때도 기획안을 쓰고 고치고 미루고. 그러다가 마감시간을 오분 지나 제출하기도 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쌓고 또 쌓는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 분야에서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는 강박관념이 몸 깊은 곳에서부터 발현하기 때문일까. 회사를 벗어난 나에게 경력보다 더 중요한 건 만들어가는 궤적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면 더 높은 비용으로 선택지는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물리치려고 애써도 내 마음을 거역하고 내가 집착하는 강박관념은 참 무섭다. 어떤 일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르고 그 생각을 계속 떨쳐낼 수 없을 때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쓰는 강박이라는 단어에는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 둘 다 포함되어 있다. 결국 해야 할 일을 다 생각하지 못하는 난 메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메모를 정말 열심히 한다며 엄지를 추켜세운다.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모르고.


이젠,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안다


기자단 활동을 하던 어느 날, 내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해 준 그녀로 인해 내 삶은 180도로 변했다. 처음엔 그녀의 추천에 기분이 언짢아서 서점으로 가지도 않았다. 책을 읽게 되면 삶의 기조가 뭔가 흔들릴 것 같았다. 제목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도 괜찮다뇨?


제목이 너무 발칙했다. 지금까지 나의 신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책임에 틀림없다. 서점에 가서 아주 작고 얇은 책을 보자마자 분노했다. 책을 필 때부터 내가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 노력들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부담감에 한 장을 펼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저자는 역시 책을 많이 읽은 독서 전문가가 아닌 그냥 정신분석학자다. 그는 독서의 목적을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독서'를 지향해야 함을 강조한다. 독서의 수준은 내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닌, 나의 명확환 주장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하며 책을 통해 깨우친 지식을 융합할 줄 능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 저자에서부터 텍스트에 이르기까지-에 걸쳐 연이어 이루어지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망각에 의해, 그 내용들은 들어올 때처럼 빠르게 하나씩 차례로 증발해버린다. 나는 책들을 뒤적거릴 뿐, 그것들을 탐구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뭔가 남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의 판단에 도움이 된 것은 단지 바로 그것, 즉 판단에 영향을 준 그 담론들과 상상력들이다. 그밖에 저자며 장소, 말들과 다른 여러 정황들, 나는 그것들을 마구 잊어버린다.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증명하듯 몽테뉴의 독서도 여느 누구와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가끔 난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독서의 여부조차 망각하니까. 고맙게도 몽테뉴는 자기 자신이 쓴 책도 기억을 망각해버린다고 말했다. 몽테뉴의 글들에서 드러나는 '독서 주체'는 내가 알아볼 수 없는 텍스트 조각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불확실"한 존재다.


곧, 저자는 책은 유동적인 오브제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진정으로 '독서 주체'로 풍요로운 텍스트 안에서 유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강박관념을 버릴 때에만 나를 위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것. 무엇보다 탄력적인 읽기의 장점은 자유 의지로 책을 읽어나가고 그에 따라 무궁무진한 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다 읽지 않는다. 들자마자 집히는 대로 페이지를 펼쳐본다. 그러고 나서 필자의 문체가 내 스타일이거나 최근에 보지 못했던 낱말이라면 한 페이지를 쭉 훑어본다. 집에 가지고 와 그렇게 열 페이지를 드문드문 읽으며 상상한다. 내 멋대로 책을 조합하고 연결하면 나의 이야기가 재탄생한다. 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다 싶으면 더 이상 책을 펼쳐보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얼마나 더 깊이 상상했나 알아보고 싶을 땐 책을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완벽은 침체다.


괜찮다는 걸 안다. 읽는 행위를 넘어서 모든 걸 완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안다. 나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게 바로 강박관념이었다. 강박관념에 걸려 넘어지고 좌절하며 결국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 일쑤였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결국 몸도 마음도 관념에 눌려버리게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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