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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07. 2019

감정은 OO과 같다

수많은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를 낸 그대들에게

시작과 망설임은 뗄 수 없는 짝꿍이다. 무슨 일이던 도전하는 사람을 몇 사람을 제외하곤 시작을 꺼리는 이유는 수 만 가지다. 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타당하기에 결국 다음에 올 새로운 기회를 잡는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난 강좌 수강생을 모집할 때 애초에 기대를 접어뒀다. 다른 강의들은 퇴근 후 시간을 즐기거나 학교를 다니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즐거운 수업들인 반면에 글쓰기 수업은 사유를 확장시키는 ‘고통’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마주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신청한 인원이 서른다섯 명을 훌쩍 넘어갔다는 의외의 소식을 들었다. 다섯이라는 소규모 인원과 항해하고자 마음먹었던 글쓰기 수업이었기에 감사함을 넘어 걱정과 우려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잘할 수 있을까? 기대보다 별로 였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펜을 들기에 앞서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었다. 각각 소중한 개체임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표현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삶의 문장이 울림이 될 수 있고, 그 울림을 나의 것으로 변환할 때 글쓰기가 시작됨을 인도하는 뱃사공이 되고자 수업을 시작했다.


용기낸 그들에게 감사함과 힘을 북돋아 주고자 '큰 박수'로 서로를 맞이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불편함을 마주하겠다고 모인 만큼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 나의 역할은 글쓰기 스킬을 알려주는 것과 더불어 강의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줄' 준비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첫 번째로 '나 관찰'을 시작해야 글쓰기의 왕도로 가는 지름길로 진입할 수 있다. 그리고 강의 안에서는 솔직해져야만 지금까지 느꼈던 불편을 타파하기 쉬울 뿐 아니라 보다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존중하는 태도. 친한 친구에게 아주 어렵게 고충을 털어놓았는데 "그게 왜?"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거나, 생각 없이 대답하는 탓에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수업 시간엔 되도록 상호 간에 그런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표현에 용기를 낸 만큼 배려하는 자세가 수업의 키 포인트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라고 말했듯, 수강생의 무수한 경험들을 늘어놓는 자기소개 시간에 옛날 그 시절이 떠올라 눈물을 지었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지닌 각자의 모습을 돌아볼 시간도 주어졌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랄 때,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끼치는데 그게 바로 내가 된다.

오래전부터 자기소개를 할 때 항상 불편했다. 그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 있는데 질문은 의례 정해져 있고 착실한 답변을 해야 자기소개가 마무리되는 동일한 루트. 뱃사공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순 없었다. 나이나 하는 일과 같이 딱 떨어지는 보편적인 질문이 아닌,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제일 애정 하는 물건과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불편함의 원인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


그들의 자기소개 속에 불편함의 유형은 참 다양하고 무척이나 유동적이었다. 취향에 대해 소개를 요청했지만 엄청 좋고 싫은 게 없어서 아직까지 내가 뭘 가장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는 분이 있었다. 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많은데 속에 있는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도 있었는데 결국 불편함을 토대로 내가 갈구하는 무엇을 찾게 된 우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편했던 사람들이 점점 불편해지기도 한다. 서로 바빠서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누구랄 것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마구 풀어내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이 예전과는 달라짐을 깨닫는다. 그 공간이 너무 불편하다. 침묵을 무리 없이 지나갔지만 이젠 침묵을 견뎌야 한다.


감정은 OO과 같다


음악처럼 글도 변주할 수 있는 음표다. 써져있는 문장을 나만의 텍스트로 변주할 때 또 다른 음악이 탄생하는 것이다. 처음 만난 그들이 어느 정도의 글쓰기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이전에 필사했던 강신주의 <감정수업>의 일부를 발췌해본다.

감정은 용수철과 같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큰 반발력을 갖기 마련이니까.  어느 순간 감정은 마치 자신이 혁명가라도 된 것처럼 자기 위에 군림하려던 이성을 자기 발아래 굴복시키게 된다.
이것이 비극의 순간일까? 아니다. 모든 사회적 통념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지키겠다는 결단은, 주인공을 통념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니까. 사랑을 부정하면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반대로 사랑을 긍정하면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여러분도 함께 적어보세요.

감정은 OO과 같다. 생각치도 못했던 그들의 표현력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가져온 예문보다 훨씬 대단했다. 각자가 심어 놓은 표현의 뿌리로 인해, 우리는 함께 박수를 치며 표현의 가지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동료가 돼 가고 있었다.


"감정은 추출 시간과 같다. 곱씹을수록 짙어지니까.

"감정은 빨래와 같다. 미룰수록 쌓이기 마련이니까.


이렇듯 불편함을 느끼는 계기는 감정의 변화를 통해서다. 그리고 사람은 제각기 본인의 감각을 지녔다. 유형이 비슷할지라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 감각을 적절한 곳으로 발현시키는 도구인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뱃사공으로 지목된 나는 그들의 감각을 씨줄과 날줄로 잘 엮어내어 완결 짓도록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다. 그들의 지독히도 개인적인 경험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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